맥주·식혜 부산물로 만든 ‘리너지가루’
밀가루보다 싸고, 고단백·저열량 식자재
식물성 부산물부터 업사이클링 시작
버려지는 식품 없어지는 사회 꿈 꾼다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가 보리 부산물로 만든 에너지바를 들고 있다. [박해윤 기자]
채식도 마찬가지다. 뿌리채소나 줄기채소는 독이 없다면 요리해 먹었다. 곡식도 껍질 빼고는 전부 먹어치운다. 먹는 방법도 다채롭다. 낟알을 익혀 먹거나, 가루로 빻아 국수나 빵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남은 곡식은 술로 빚어 먹는다. 이 때 남는 찌꺼기도 빵이나 떡으로 가공해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경과 목축, 유통의 발달로 음식이 남게 되자 버려지는 부산물이 생겼다. 상대적으로 맛이 없거나 식품을 만들고 남은 부분은 가차 없이 버려졌다. 리하베스트는 이처럼 식품이 버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 나섰다. 식료품 부산물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식자재를 만들고 있다. 2019년 말 창업과 동시에 처음 손을 댄 식품 부산물은 식혜, 맥주를 만들 때 쓰이는 보리다.
맥주나 식혜를 만들려면 보리가 필요하다. 먼저 영양성분 활성화를 위해 보리를 3일간 햇볕에 내놓아 싹을 틔운다. 싹이 트기 시작하면 보리를 삶아 여기서 당분과 탄수화물을 짜낸다. 이렇게 짜낸 액체에 쌀을 넣어 발효시키면 식혜가 되고 효모를 넣고 발효시키면 맥주가 된다. 짜고 남은 찌꺼기는 ‘맥주박’ ‘식혜박’이라 부른다. 이 찌꺼기는 대부분 음식 폐기물이 돼 버려진다.
밀가루보다 나은 리너지가루
보리 부산물로 만든 식자재 ‘리너지가루’와 이를 이용한 에너지바. [박해윤 기자]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난 민명준(36) 리하베스트 대표는 만나자마자 리너지가루로 만든 에너지바(곡물, 견과류에 물엿 따위를 넣고 한데 뭉쳐 막대 모양으로 만든 간식)를 권했다. 맛과 향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리하베스트는 지난해 ‘리너지바’라 부르는 이 제품을 펀딩사이트 ‘와디즈’에서 판매했다. 리너지바는 ‘선한 소비’에 관심이 많은 젊은 소비자의 이목을 끌며 1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다음은 민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리너지가루는 밀가루와 영양성분이 비슷한가?
“곡식으로 만든 가루이니 기본적 영양 성분은 비슷하다.”
-가격 외에는 차별점이 없나?
“세부적으로는 두 가루의 성분이 다르다. 리너지가루는 밀가루에 비해 30% 열량이 적고 단백질은 2배, 식이섬유는 21배 많다. 리너지가루는 당류도 없다. 당뇨 환자용 대체식이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남은 식품, 버리지 않고 다시 쓴다”
-리너지가루는 어디서 생산하나?“현재 맥주박은 오비맥주, 식혜박은 식혜를 만드는 서정쿠킹과 협약을 맺고 원료를 공급받는다. 이 원료를 각사 공장 안에서 리너지가루로 만든다. 공장 안에서 작은 공장을 꾸리는 방식이다. 설비 투자 및 유지에 드는 비용이 줄어드니 더 저렴하게 리너지가루를 생산할 수 있다. 맥주와 식혜를 생산하는 회사에서는 부산물 처리비용이 줄어드니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다.”
-빵, 파스타, 에너지 바 외에 리너지가루로 어떤 음식을 만들 수 있나?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대부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레스토랑 ‘디스팅트’, 오비맥주가 운영하는 브루하우스 ‘구스아일랜드’와 손을 잡고 리너지가루를 사용한 치킨과 피자도 내놓을 예정이다. 리너지가루의 주원료가 보리라 같은 재료를 쓰는 맥주와 궁합이 좋다. 20여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맥주와 먹었을 때 과반이 밀가루로 만든 제품보다 리너지가루로 만든 제품이 맛있다고 평가했다.”
-부산물로 만든 제품인데 소비자들의 반발은 없나?
“친환경이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은 거부감이 없다. 외려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부산물을 사용한 식자재나 음식을 구매하겠다고 나선다. 반대로 부산물을 재가공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소비자층도 있다. 거부감을 줄이고자 음식점에서는 ‘리너지’라는 이름 대신 ‘보리로 만든 피자’ ‘보리로 만든 치킨’ 같은 명칭을 사용한다.”
-보리 외에 다른 부산물을 재활용할 계획은 없나?
“다른 부산물 재활용도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업계에서 부산물 재활용이 가능한지 문의가 오고 있다. 최근에는 생선 통조림 업계에서 생선뼈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묻기도 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다양한 분야의 부산물을 재활용 할 예정이다.”
국내 최초 식품 업사이클링
-1년 기준으로 식품 부산물이 얼마나 발생하나?“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 289개를 꽉 채울 정도다. 이를 전부 재활용한다면 432만 명에게 1년 간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어쩌다 식품 부산물 재활용에 관심을 갖게 됐나?
“국내에서는 아무도 업사이클링(Upgrade+Recycling)에 도전하지 않은 분야가 바로 식품이었다. 폐플라스틱, 폐타이어 등을 가공해 옷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식품 분야에서는 재활용에 나선 국내 업체가 없었다. 경쟁사가 없으니 국내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봤다.”
폐기물관리법은 각각 폐기물의 처리 방법을 소각, 매립, 재활용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에 관해서는 처리 방법이 재활용뿐이다. 법 15조의 2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는 업장은 직접 폐기물의 수거‧운반 및 재활용을 담당하거나 이를 위탁업체에 맡겨야 한다.
-음식물쓰레기나 식품 부산물은 전부 재활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음식물쓰레기는 비료로 재활용하고 부산물은 보통 사료로 재활용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재활용하는 업체는 리하베스트 뿐이다.”
-원래 식품 관련업계 경험이 있나?
“아니다. 사업을 하기 전에는 전략 컨설턴트로 일했다.”
-언제 식품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18년 초에 대장에 종양이 생겼다. 몸무게가 120㎏에 육박했으니 종양 말고도 건강이 전반적으로 나빠진 상태였다. 휴직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을 가지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에만 몰두해 건강을 잃어서는 본말전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요양을 마친 뒤 전공을 살려 창업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 때 관심을 가졌던 게 식품 관련 사업이었다.”
민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3세다. 대학졸업 후 다국적 컨설팅 회사에서 일해 왔다. 2009년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에 들어가 컨설팅 업무를 맡으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개발도상국 굶지 않게 나선다
-왜 하필 식품이었나?“식품 사업이 시장성이 있다는 것은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선진국은 식자재가 남지만 개발도상국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잘 산다고 알려진 인도네사아도 음식이 부족해 굶는 사람들이 많다. 식품 부산물을 사용해 저렴한 식자재를 만든다면 해외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개발도상국 식품지원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 되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저렴하고 영양가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업 시작단계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뒀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
“한국에서 성과를 내야 해외진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식문화가 다른 나라에 식자재를 파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식자재를 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리너지가루 등 업사이클링 식자재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유통시켜 성과를 낸 뒤,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이미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리너지가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 성과가 있었나.
“다양한 제안이 왔고 이를 검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같은 이슬람 국가는 단백질이 귀하다. 양, 닭 등 종교가 허락하는 고기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성 단백질로라도 부족한 양을 보충해야 하는데 리너지가루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지 업체를 만나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셈중소기업친환경혁신센터(ASEIC)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과 협업해 보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리하베스트는 국내에서는 협력사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해외진출을 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나?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해당 국가의 기업이 가진 공장 내부에 생산 시설을 만들면 된다. 아예 한국에서 관련 생산 설비만 개발해서 판매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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