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수상자 ‘0명’ 한국이 노벨과학상 배출하기 위한 4가지 방안

[Focus] ① 젊은 학자 배려 ② 장기 연구 센터 확충 ③ 국제 네트워크 구축 ④ 원로 학자 활용

  • 권대우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장·한양대 교수

    입력2024-12-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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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상’ 이어 ‘문학상’도 나왔건만…

    • ‘과학상’은 중국 6명, 일본 25명, 한국 0명… 왜?

    • 소수 집중 지원으로 과학상 받겠다는 어설픈 생각

    • 과학입국(科學立國) 기반 마련이 선결 과제

    • 기초과학 연구소 늘면 과학계 ‘한강’ 나올 수 있다

    10월 17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뉴스1]

    10월 17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뉴스1]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위원회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다. 이는 한강 개인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체에 대한 엄청난 경사이자 축복이다. 필자 역시 유럽에서 수학한바, 노벨상이 가진 무게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로 받아들였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높은 작품 수준이 출발점이 됐을 듯하다. 다음으로는 훌륭한 번역을 통해 작품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을 것이고, 작품이 과거 국제적 상을 다수 수상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BTS, 블랙핑크 등 K-팝을 널리 퍼뜨린 아이돌 그룹, ‘오징어 게임’ 등의 K-드라마, 기생충 등의 K-필름까지. 한국 문화의 세계화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그간 노벨상위원회 주변에서 거론 및 평가됐던 한국문학계의 깊이와 너비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러한 주변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가능했던 이유의 핵심은 하나다. 한강의 작품 세계가 노벨문학상 위원들에게 큰 감동과 의미를 줄 만한 수준이라는 것. 이 점이 널리 인정돼야 하며, 그러한 수준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국에선 왜 노벨과학상이 나오지 않을까

    올해 여름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갈 기회가 생겨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하이델베르크대를 방문했다. 대학 박물관과 고색창연한 옛 강당이 있는 건물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총장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깜짝 놀랄 만한 전시물을 발견했다. 하이델베르크대 출신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인 하이델베르크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이델베르크대는 홈페이지에서 자대 교수였던 사람 11명, 조교 혹은 객원연구원이었던 사람 3명,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얻은 사람 5명, 학부생 출신 11명, 명예박사 4명, 연구소 출신 10명, 하이델베르크 학술 아카데미 회원 13명 등 57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 가운데엔 스위스 사람도, 일본 사람도 있지만 노벨의학상, 노벨화학상, 노벨물리학상 등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많은 수상자가 하이델베르크대와 산하 연구소를 거쳐간 학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1명도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했는데, 독일 전체도 아닌, 하이델베르크대와 연구소 및 아카데미로 구성된 하이델베르크 학문 공동체가 50여 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성과다.

    눈을 돌려 우리나라의 이웃 나라들을 보자. 노벨과학상 부문에서 중국은 6명, 일본에서는 25명 등 상당히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은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점을 생각하면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감정을 넘어 이러한 현상엔 분명히 어떤 원인이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물론 복잡한 요소가 많이 얽혀 있고, 우리나라 학계에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훌륭한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대 학문 공동체나 일본 학계에 비하면 그 너비나 깊이가 충분히 넓고, 깊지 못하다는 점도 사실일 것이다. 또 한국 학계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적 발견이나 연구를 내놓았다는 평가를 노벨상위원회로부터 아직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노벨과학상은 단기·소수 집중으로 얻을 수 없어

    대전 유성구 구성동과 서구 만년동을 잇는 카이스트교에 우장춘, 장영실, 최무선 등 우리나라 대표 과학자 흉상 조형물이 조성돼 있다. 빈자리는 앞으로 우리나라 최초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위해 남겨둔 자리다. [뉴스1]

    대전 유성구 구성동과 서구 만년동을 잇는 카이스트교에 우장춘, 장영실, 최무선 등 우리나라 대표 과학자 흉상 조형물이 조성돼 있다. 빈자리는 앞으로 우리나라 최초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위해 남겨둔 자리다. [뉴스1]

    이 문제에 대한 방안을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일단 1명이라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한시바삐 배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고민해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입국(科學立國)의 어느 정도 성숙한 기반하에서, 다른 과학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기초과학 국가로 성장한 다음,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를 다수 배출, 한국 과학계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안의 방법으로 쉽게 떠오르는 것은 대표선수를 선발해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구비 지원 성향을 보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보다는 응용과학·공학 분야에 대한 지원이 유달리 높고, 사회의 기초가 되는 사회과학이나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문과학에 대한 지원은 극히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장기 투자’하기엔 재원이 부족하니, 노벨과학상에 대한 투자는 ‘가시권에 있는’ 학자 몇 명으로 한정하고 싶다는 의지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생각은 노벨과학상 관련해선 조금 어설픈, 어쩌면 실현 가능성이 제한적인 생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노벨과학상은 과학 발전에 근본적 진전을 이룩한 새로운 발견, 혹은 매우 중요한 이론적 진전을 성취한 연구를 한 학자들에게 주어진다. 대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구 해 온 원로 과학자들에게 수여되는 상이기도 하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존 홉필드(John Hopfield·91) 프린스턴대 교수만 해도 1982년경부터 해온 인공신경망 연구를 통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에 대한 기여가 수상 업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연구 초기부터 얼마나 혁신적 아이디어였는가 △얼마나 오랜 기간(적어도 수십 년간) 해당 이론(혹은 모델)에 대한 확장 및 보완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는가 △그 이론(혹은 모델)을 바탕으로 한 파생 연구가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국제적으로’ 진척됐는가 △연구자 스스로가 아직 건강하게, 후속 연구를 하는 젊은 연구자들과 연구 결과를 공감하며 연구 내용을 논의하는 상황이 유지되는가 등의 기준으로 평가됐다.

    반면 우리나라 학계에선 선도연구지원제도를 통해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연구자들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왜 몇몇 연구자에게만 특별하게 지원을 하는지와 관련된, 선택의 공정성에 대한 논의 △어느 정도의 인적·물적 자원이 지원돼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이론·모델로 성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원 정도 기준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해 연구 결과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윤리적·학술적 소명감을 가지고 있는지, 또 국제적 활동을 통해 이론·모델의 보편타당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등이다. 여기에 대상자 선정 실패에 대한 책임 논박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젊은 학자 배려, 장기 연구 센터 건립해야

    물론 제한된 분야라도 성취된 과학기술의 진전은 우리 학계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위에 밝힌 이유로 노벨상 수상자 몇 명을 배출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학술 지원을 통해 한국 과학계가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야 그 과실로서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최고 수준 과학자를 많이 갖게 되고, 나아가 노벨과학상 수상자 탄생이라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멋진 그림이 그려지려면, 즉 앞서 말한 두 방안 가운데 두 번째 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할까.

    첫 번째론 젊은 학자를 더 배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기성의, 선도적 과학자 연구에 집중 지원하는 대신 예산이 좀 더 소요되더라도 더 넓은 범위로, 다양한 지역에, 여러 분야의 기초과학 연구팀을 육성하는 것이다.

    또 젊은 학자들이 좀 더 좋은 연구 테마를 선정하고, 국제적으로 더 활발하게 교류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팀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학문 후속 세대를 어떻게 선발하는지, 어떤 연구 여건을 제공해야 할는지는 여러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는 그들이 이른바 ‘MZ세대’라고 하는 신세대라는 점이다. 안정된 자리가 제공되지 않으면 유능한 젊은 학자를 구하긴 힘들 것으로 사료된다.

    두 번째론 수십 년 동안 지속적 연구가 가능한 센터를 대학 내외에 만들어야 한다. 몇 년 장기 과제를 따서 지금 당장 이슈가 되는 연구를 할 팀도 필요하겠지만 예컨대 독일의 막스 플랑크(Max Planck) 연구소와 같이 좋은 리더를 갖추고 잘 짜인 팀을 신설, 긴 호흡을 이어가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나온 기본 연구는 과학기술을 한 단계 올려놓을 바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연구 센터의 장은 선도적 연구자로서의 역량뿐 아니라 신진 학자들 가운데 옥석을 가려낼 수 있고, 그들에게 연구 의욕과 성취를 유도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수십 년 동일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나간다는 것은 세대 간 계승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토록 무거운 과제를 맡는 연구센터의 장을 선임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기초연구센터 규모를 센터장의 역량·성과에 연계시켜 점진적으로 확대함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초연구센터는 창의적 연구를 위한 독립성·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므로 충분한 재정 지원뿐 아니라 행정 당국으로부터 연구에 대한 불간섭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물론 평가, 조언, 감사가 배제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는 창의적 연구가 가능한 범주 내에서 진행돼야 한다.

    국제 ‘네트워크’ 구축, 원로 활용도 방안

    세 번째는 최고 수준의 연구를 확산·보완하는 연구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 연구를 바탕으로 추가적 응용연구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소통 경로가 제도적으로 정비돼야 할 것이지만, 국제적으로도 우리 연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볼 필요가 있으며, 외국의 연구와도 연계해 새로운 이론·모델을 찾아내는 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국제교류는 개인 간의 교류 차원이 아니라 국제학술위원회, 국제학술연맹 등 여러 가지 국제 교류의 장을 이용해야 하며 노벨상위원회 위원 등 각종 국제적 수상위원회의 위원들과도 교류해야 한다.

    네 번째론 피드백이 지속될 수 있는 학문 공동체에서 원로들의 좋은 목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학계의 단점 가운데 하나가 ‘학문적 조로’ 현상이다. 외국에선 ‘정년퇴임’이란 개념이 더는 강의를 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의미에 그치고, 실제 65세 이후 더 활발한 연구·저술 활동을 하는 학자도 많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수십 년간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낸 소중한 자산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게 해선 안 된다. 원로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연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줄 필요가 있으며, 그들이 그동안의 지식·경력을 이용해 젊은 학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등 기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특히 원로학자들이 가진 국제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가동된다면, 한국의 학자들과 연구소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대학 내외의 기초과학 연구소별로 다양한 원로 연구자들을 초빙하고, 고문 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연구 성과·방향에 대해 의견을 듣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면 연구소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인문사회계, 의약학계를 포함해 기초과학 연구소가 다양한 지역·테마로 신설되고, 젊고 의욕 있는 과학자들의 놀라운 연구로 가득 찰 수 있다면 마치 올해의 한강과도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여러 분야의 노벨상 후보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권대우
    ‌● 1960년 출생
    ●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독일 본대 법학박사
    ● 한독법률학회 회장
    ●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 한국규제법학회 회장
    ● 現 한양대 교수
    ● 現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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