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스타트업

도시재생 프로젝트 ‘로컬라이즈 군산’

청년 기업가들 지역경제에 활기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9-06-27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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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 E&S, 지역 일자리 창출 위해 프로젝트 가동

    • 조선업계, GM 떠난 군산에 소셜벤처 거점 마련

    • “즐거운 주인의식으로 창업가 정신 발휘”

    • 컬래보와 시너지 효과… 사업 정착은 과제

    지난 3월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에 선발된 소셜벤처 청년 기업가들이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SK E&S 제공]

    지난 3월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에 선발된 소셜벤처 청년 기업가들이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SK E&S 제공]

    전북 군산시 구도심(舊都心) 영화동은 이채로운 공간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건물과 삶,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근대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이곳에 요즘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6월 5일 오후 1시께 군산시 영화시장 골목길. 벽면이 넓은 유리창으로 마감된 3층 회색 건물의 1층 카페에서 젊은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커피향에 실려 왔다.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에 둥지를 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관계자들이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카페를 찾은 이웃 주민과 관광객의 표정에서도 젊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 건물은 SK E&S(대표 유정준)가 지원하는 소셜벤처(Social Venture·창업으로 사회문제 해결하는 기업) 육성사업 프로젝트 ‘로컬라이즈(Local:Rise) 군산’이 운영되는 곳이다. SK E&S 소셜밸류본부 최은정 매니저가 ‘로컬라이즈 타운’으로 불리는 이 건물을 소개했다. 

    “원래 이 건물 1층엔 생선가게가 있었고, 2,3층은 사무실과 가정집이었어요. 이것을 개조해 1층은 카페, 2층은 공유 오피스, 3층은 미팅룸과 키친, 옥상은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녁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옥상에서 종종 파티를 열어요. 엄청 ‘다이내믹’한 공간들입니다.”

    스타트업에 1000만~5000만 원 지원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는 영화동 일대를 군산의 문화·관광 중심지로 발돋움시키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군산은 몇 년 전부터 제조업이 침체돼 지역 경제가 급격히 위축됐다.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지난해엔 GM 군산공장도 폐쇄되면서 인구 유출까지 진행되는 상태다. 



    이에 전북 지역에서 도시가스 사업을 하고 있는 SK E&S가 군산 경제에 기여할 방법을 찾다가 스웨덴의 말뫼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말뫼는 주력 산업이던 조선업이 몰락해 한때 ‘죽음의 도시’라는 오명까지 썼으나, 스타트업 활성화를 통해 도시재생과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로컬라이즈 군산은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올해 1월 서울과 군산을 오가며 진행된 설명회와 지역재생 창업 워크숍 및 경진대회(Pre-Camp), 사업계획 심사와 면접을 거쳐 총 24개 팀 70여 명의 구성원이 최종 선발됐다. 

    창업 교육은 창업가를 교육·육성하는 사회적 기업 언더독스가 전담하고 SK E&S는 프로젝트를 위한 사업비와 업무 공간, 숙박시설을 지원한다. 24개 팀은 1년 미만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인큐베이팅’ 트랙 11개 팀, 2~3년차 이상 스타트업을 위한 ‘액셀러레이팅’ 트랙 13개 팀으로 나뉘어 올해 6월까지 12주에 걸쳐 창업 교육을 받았다. 그사이 인큐베이팅 트랙에서 1개 팀이 트랙을 바꿔 현재는 23개팀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SK E&S는 인큐베이팅 팀에는 최대 1000만 원, 액셀러레이팅 팀에는 최대 500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23개 팀은 지난 4월 6주간 진행된 프로그램에 대한 중간발표를 했고, 6월 13일엔 창업교육, 지역 창업가 및 지역자치단체 담당자와의 네트워킹, 사업 시범운영 등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23개 팀은 크게 ‘문화가 흐르는 관광도시’ ‘모두가 잘사는 경제도시’ ‘골고루 누리는 행복도시’ 등 3가지 테마로 나뉜다. 군산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관광객 유입을 목표로 지역의 낡은 공간을 리모델링해 문화·상업 공간을 구축하거나, 지역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기획하고, 지역 특산품을 개발하는 등 개별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컨설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하며 10월에는 창업팀의 성과를 모아 발표하는 페스티벌도 열 예정이다.

    “사업에 터닝 포인트 됐어요”

    1층 카페에서 만난 협동조합 ‘군산밤’(액셀러레이팅 트랙)의 전호엽(28) 조합장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로컬라이즈 군산에 선발된 의미를 전했다. ‘군산밤’은 쇠락한 군산 관광지구의 야간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모인 군산 출신 청년사업자들의 협동조합이다. 

    “로컬라이즈 군산은 저희 조합에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여기에서 교육받으면서 좀 더 전문적인 사업 방향을 찾았고, 사업의 목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조합원의 단결력도 엄청 강해졌는데, 저는 이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24개 팀은 나이·경력에 제한 없이 선발됐고, 군산 출신 주민과 타 지역에서 온 참여자 비율이 반반 정도다. 최은정 매니저는 이것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군산 출신은 외지인들이 군산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외지인들은 군산 출신이 갖지 못한 기술이나 지식 등 자원을 제공해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있어요.” 

    더욱이 구성원들이 ‘로컬라이즈 타운’에서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뤄진다. 동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슈퍼워크팀은 현필름과 공동작업도 했다. 2nd Tomorrow(세컨드 투모로) 박소영 대표는 “팀들 간에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컬래버(컬래버레이션·협동, 제휴, 공유)가 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로컬라이즈군산의 운영을 총괄하는 교육 스타트업 언더독스의 이슬기 디렉터는 12주간 교육을 진행하면서 생긴 고민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창업 팀들이 계속 뿌리내리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창업만 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벌써부터 내년 상황을 그려봅니다. 스타트업 팀들에게 숙박은 연말까지 프로젝트 기간에만 지원되기 때문에 이후는 어떻게 될지, 또 늘어나는 짐을 보관할 공간은 어떻게 마련해줄지 고민입니다. 청년 창업과 도시재생 사업에 적극적인 군산시가 도움을 주면 좋겠습니다. 창업팀뿐 아니라 지역민에게도 로컬라이즈 공간을 열어야 할 텐데 그것도 과제입니다.”

    사회적 가치 생태계 확산

    하지만 공간과 숙소가 제공되고, 얼마간의 자금이 지원된다 해도 창업에는 위험이 따르고 전망도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 직장을 나와서 불확실한 새 일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컨드 투모로 박소영 대표의 답이다. 

    “그간 다니던 직장에서도 즐겁게 일했지만,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기왕이면 그 일이 사회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이번 로컬라이즈 프로젝트는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추구와도 맞닿아 있다. 지역 기반의 소셜벤처들을 육성하고 경기 침체로 사라진 일자리도 창출해 군산시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 기부나 한두 기업에 대한 집중 지원보다는 사회적 가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SK E&S 김기영 소셜밸류 본부장은 “군산이 청년 창업과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성장시킬 지리적 특성과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군산에서 로컬라이즈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게 됐다”며 “소셜벤처와의 협업을 통해 조선업, 제조업 중심 도시였던 군산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SK E&S는 또 향후 군산 지역뿐 아니라 회사가 기반을 두고 있는 타 지역에도 사회적 가치 생태계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interview | 군산밤 전호엽 조합장
    “군산지역 대표 축제 만들겠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스타트업 군산밤은 25~31세 군산 출신 청년 5명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2018년 4월 군산에 푸드존을 만든 이들이 뜻을 모아 7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현재 푸드트럭은 모두 6대이며, 조합원들은 매주 목~일요일 저녁에 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에서 영업하고 있다. 이들은 함께 영업하고 이익도 공동으로 나눈다.

    - 군산밤의 사업 목표는 무엇인지요. 

    “우리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로컬라이즈가 그것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서울의 밤도깨비야시장, 여수의 낭만포차 등과 같은 명성을 얻으면서 군산의 건전한 야간문화를 일구고 싶습니다.” 

    - 올해 군산밤 푸드 페스티벌이 6월 14, 15일 이틀 동안 열렸는데요. 

    “바닷가인 진포해양테마공원 주차장에서 열렸는데, 지역 아티스트와 국악인들이 공연하면서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이 행사를 청년들이 만드는 군산 지역의 대표축제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지난해엔 월드컵 거리응원전을 흥행시켰습니다. 월드컵 덕분에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고, 상설 푸드존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 요즘 매출은 어느 정도이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어떻게 전망하는지요. 

    “동절기에는 영업하기가 어려워 지난 4월에야 푸드존을 열었습니다. 작년에 비해 유동 인구가 줄어서 매출이 좋지는 않지만, 푸드 페스티벌 이후 새롭게 도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간의 쾌적한 문화 공간에서 질 높은 음식이 제공되면 사업도 번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UPER WORKER(슈퍼워커) 이영선·전상후 PD
    “군산과 글로벌 잇는 슈퍼 크리에이터 되겠다”

    이영선(좌)·전상후 PD [지호영 기자]

    이영선(좌)·전상후 PD [지호영 기자]

    슈퍼 워크는 SBS, M-net 출신 이영선 프로듀서와 해외 유학파 전상후 프로듀서, 아트 디렉터, 그리고 열혈 매니저가 모인 팀이다. 영상 콘텐츠, 바이럴 광고, 방송국 외주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군산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해서 ‘아이엠 군산’이라는 이름의 영상을 주 1회 업로드하고 있으며, 군산 시민을 대상으로 한 영상 교육도 준비하고 있다.

    - ‘아이엠군산’은 지역 재생과 관련된 콘텐츠만 다루나요. 

    “지역 재생뿐 아니라 군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발굴해서 알리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군산 시민을 많이 만나 제작할 내용을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 영어 자막이 있는 콘텐츠도 만들고 있던데요. 

    “한국적인 콘텐츠라고 해도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 때는 영어 자막을 만들어 글로벌로 퍼뜨리는 슈퍼 크리에이터가 되려고 합니다.” 

    - 크리에이터가 되려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아이디어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가 많아요. 그러면 일단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라고 권해요. 요즘 스마트폰은 화질도 좋거든요. 그리고 영상을 멋지게 촬영하는 것보다는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초반부터 유튜브로 돈 벌겠다고 달려들면 대부분 실패해요. 적어도 동영상 50개는 만들어야 수익이 나기 시작하거든요.” 

    - 이제까지 제일 히트한 영상은 무엇인지요. 

    “수제버거 맛집을 찾아다니는 ‘버거팩토리’는 싱가포르에도 판권이 팔렸고요. 바이럴 광고 중에는 ‘폴링’이라는 앱광고를 찍었어요. 스토리가 담겨 있는 광고인데 조회수가 200만을 넘었습니다. ‘라커걸’이라는 영상은 노래 잘 하는 일반인이 운전하면서 흥얼거리는 내용인데, 채널A에도 소개됐어요.”

    interview | 2nd Tomorrow(세컨드 투모로) 박소영·이정윤 대표
    “50플러스 세대의 자산 발굴해 사회 기여”

    이정윤(좌)·박소영 대표 [지호영 기자]

    이정윤(좌)·박소영 대표 [지호영 기자]

    50+(플러스) 세대(50~65세)가 보유한 지식과 지혜를 발굴하고, 그것이 사회에 활용될 수 있도록 교육 및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회사 이름의 의미는 ‘두 번째 내일, 혹은 나의(내) 일’이라는 의미.

    “직장에서 은퇴하는 한국인의 평균 나이가 49세입니다. 쌓인 경험이나 가진 네트워크가 최상급인 상태에서 퇴직해요. 이들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저희 파트너사에 연결해주고 양쪽이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리멤버 군산’ 엽서

    ‘리멤버 군산’ 엽서

    - 실제로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사례가 있습니까. 

    “저희가 얼마 전 ‘리멤버 군산’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요. 군산의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찾는 과정에서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이야기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구도심 로컬 투어를 기획했어요. 뻔히 아는 군산의 유명 관광지 말고 지역민들의 추억과 역사가 담긴 여정입니다. 로컬라이즈타운에서 영화방앗간, 철길과 내항, 근대역사박물관, 군산과자조합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서 50플러스 세대의 경험 많은 스토리텔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군산이 정말 매력적인 도시로 다가옵니다.” 

    - 50플러스 세대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하는지요. 

    “제가(박소영 대표) 서울시의 50플러스재단에 정규 교육과정을 열었습니다. 예컨대 숙박 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airbnb)에는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트립 프로그램이 있어요. 경험 많은 50플러스 세대가 그런 프로그램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리멤버 군산’을 위해서도 두 명의 스토리텔러를 발굴했습니다.” 

    세컨드 투모로는 올해 하반기에 50+ 세대가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고, 그들이 보유한 경험과 지식을 자유롭게 나누는 온라인 플랫폼을 출범할 예정이다.

    스타트업들이 만든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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