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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통일부·국정원, 정상회담 막전막후

통일부 출신 靑 비서관 ‘원톱’ 부각… 각 부처 ‘정치 촉수’ 풀가동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청와대·통일부·국정원, 정상회담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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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말부터 남북정상회담 논란이 ‘정치화’하면서 관련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4자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오가는 아이디어는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아직 열리지 않은 회담의 추진 과정 비화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그 편린들은 이곳저곳에서 확인된다. 뜻밖의 초대형 태풍을 맞은 관련 부처들의 분위기와 막후의 흐름, 또 다른 한 축인 북한 내부를 들여다봤다.
청와대·통일부·국정원, 정상회담 막전막후

8월5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왼쪽)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8월2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합의서를 교환하고 있다. 양측 배석자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작은 사진)

지난해 북한 핵실험 이후 공식 라인과 비공식 라인을 막론하고 구체적 협상은 사실상 중단상태에 접어들었다. 핵실험 직전까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전력투구한 국가정보원 3차장실 중심의 대북 공식 라인은 활력을 잃었고, 비공식 라인 역시 안희정씨의 11월 대북접촉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중단됐다. 대신 정치권의 공방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이 ‘실체 없는 논란’을 이어갈 뿐, 사실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신동아’ 2월호 186쪽 ‘남북정상회담 공작 막전막후’ 참조).

해가 바뀌면서 핵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못 되는 남북정상회담 대신 6자회담 참가국의 다자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아이디어가 힘을 얻었다. 첫 번째 움직임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2월초 방한한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의 구상. 서울에서 전현직 당국자들을 접촉한 그는 ‘6자 정상회담 안(案)’을 구체화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제안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의 가장 큰 어려움은 6개국 정상의 일정을 맞추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 비슷한 시기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을 중심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분리’ 아이디어가 주목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장시간이 필요한 평화협정보다 정전협정 당사국인 남·북·미·중 정상이 모여 이벤트 차원의 종전선언을 하면 2·13프로세스에 큰 모멘텀이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북한 핵 문제가 북미 양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니 이 방안은 적잖은 공감을 얻었다. 일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006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한 사실이 힘을 실었다. 정치권에서는 3월 방북, 5월 방미 등에서 사실상 특사에 준하는 막후 조정역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 이해찬 전 총리가 이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여기에 청와대 안보실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6자회담 프로세스와 무리 없이 연결되는 4자 정상회담 방안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약속 깨는 일 없던 사람이…

그러나 논의만 무성할 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특히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선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와 함께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정치공방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취임 당시 통일부 장관이 겸직하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자리를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맡으면서, 정동영 장관 시절부터 통일부 장관이 맡던 공식 라인의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책임이 김만복 원장에게 넘어간 게 이 무렵이다.

이후 여건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 김만복 원장이 대선과정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을 염려해 서훈 3차장과 공식 라인의 움직임을 일정 부분 자제시키고 있다는 말이 당국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이 때문에 김 원장과 서 차장 사이가 다소 껄끄러워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정치풍향을 의식하는 김 원장의 스타일과 ‘정통파 대북 정보맨’인 서 차장의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업무 전문성의 차이가 ‘자세’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BDA 문제가 해결되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방북한 6월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힐 차관보 방북과정에서 사실상 ‘소외’됐던 통일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는 등, 북미관계에 남북관계가 뒤처져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국정원 역시 중단 상태였던 공식 라인의 정상회담 논의를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7월 들어 서훈 3차장이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예정된 약속을 깨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정부 주변에서는 ‘뭔가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흘러나온다. 안보부처 출입기자들 사이에 ‘정상회담이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 시점이다.

정상회담 발표와 함께 확인됐지만, 7월초 김만복 원장은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에게 접촉을 제안했고, 이후 7월 한 달 동안 서훈 3차장이 중국 등지에서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을 만나 조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만 해도 통일부 등 다른 부처 관계자들은 ‘마지막 몸부림’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의견이 많았던 게 사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7월29일 김양건 부장이 김만복 원장에게 방문을 요청하면서 결정적인 전기를 맞았고, 8월2일 김 원장이 남북교류협력법 절차에 따라 노 대통령의 ‘특사 임명장’을 받고 평양을 방문했다. 이튿날 귀국했던 김 원장이 4일 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재방문해 정상회담 일정에 합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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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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