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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명성황후 귀신’이 들린 여자 이영숙

자경당에서 들려온 애절한 목소리, “내가 죽은 곳은 여기가 아니야…”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명성황후 귀신’이 들린 여자 이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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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후 역사의 현장을 누비던 ‘독립신문’ 여기자. 여성경제인협회를 창설한 탄탄한 여성 기업인. 여성의 사회 활동이 드물던 시절, 눈부신 리더십을 발휘하던 한 여성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명성황후의 화신을 목격하면서부터다.
  • 그는 돈벌이도 마다하고 명성황후의 복권과 재조명에 제2의 인생을 걸었다.
‘명성황후 귀신’이 들린 여자 이영숙
인간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리 정해진 운명이 과연 있는가. 사람이 일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얼마인가. 삶은 윤회하는가. 역사 속 인물의 화신을 현대에 보는 일이 가능한가. 명성황후의 복권과 재조명에 삶을 건 이영숙(李英淑·78) 회장을 만나면서 이런 의문에 빠졌다.

이영숙 회장은 한 시절 잘나가는 여성 기업인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업에서 손을 떼고, 벌어놓은 돈을 ‘국태민안’을 위해 쓸 길을 찾기 시작했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꽤 쏠쏠한 재산이 남아 있었다. 그걸 자신이 호의호식하는 대신 신앙과 국태민안을 위해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국가와 민족!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 말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게 됐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워낙 자주 국가와 민족을 팔아온 데다 국가가 개인의 상위개념이 될 수 없다는 시민의식의 변화 탓이다. 그런데 이영숙 회장의 입에서 나온 ‘국태민안’이란 말은 아주 신선했다. 그 말의 최초의 의미, 명성황후 시대에 통용됐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 이기심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국태민안’에 나는 선입견을 걷고 귀를 기울였다.

덕성학교 운현궁의 기억

이영숙 회장은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체험을 여러 번 했다. 영성이 유난히 발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논리적 설명은 불가능하더라도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돈을 벌었던 이 회장은 자신의 후반 삶을 영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다. 그건 결국 소외되고 아픈 자들을 위한 길이고 그의 신앙이 제시해준 길이기도 했다.

1927년생이니 여든을 코앞에 둔 나이인데, 이 회장은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다. 격식 갖춰 차려입은 한복 맵시에선 여느 사람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기품이 흐른다. 볼에 남은 분홍 홍조, 반듯하고 꼿꼿한 자세와 걸음걸이에 나는 새삼 놀랐다. 과연 명성황후의 현현인가 싶을 만한 우아가 몸에 배어 있다.

명성황후와의 인연은 모교인 덕성학교에서 시작된다. 젊어 사업에 매진하다 마흔이 넘자 그는 모교인 덕성여중·고 동창회장 일을 맡는다. 재단이사장인 송금선 선생과는 특별한 교분이 있었다. 당시 운현궁을 교사(校舍)로 쓰고 있었는데, 송금선 선생을 만나려고 운현궁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 회장은 희한한 경험을 한다.

“대문에 발을 들여놓는데 갑자기 주위가 캄캄해지고 스산한 기운이 온몸에 휘몰아치는 겁니다. 위를 쳐다보니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쏟아져 주변 건물을 갑자기 뒤덮어요. 청명한 날인데 갑자기 그런 게 보여 동행한 기사에게 ‘왜 이렇지?’ 물었더니 그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게 일본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날조되고 왜곡돼온 대원군 명성황후에 대한 통한의 역사를 제대로 규명해달라는 요청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지요.”

그는 사비를 들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경제인연합회를 만든 주인공이다. ‘한국부인회’란 단체도 앞장서 만들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드물던 시절, 특유의 리더십으로 초창기 여성 조직을 창립하고 이끌면서 기업경영을 해나가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몸져눕는다.

온몸이 굳고 입을 뗄 수도 없었다. 심장이 멈추는 듯했지만 병원에서는 병명을 알 수 없다 했다. 거동은 물론 가족조차 알아볼 수 없는 위급상황이었다. 보다못해 친구 하나가 장안에서 내로라는 점술가 하나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점술가는 이 회장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당신은 사업가의 운명이 아니다”고 했다.

“내게 당장 마니산으로 가서 국운 융성을 빌어야 한다고 했어요. 개인의 삶을 버리고 국태민안을 위해 기도하면서 살아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나는 그때까지 신앙도 없었어요.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 줄도 몰랐어요. 우선 살아야겠다 싶어 마니산으로 갔어요. 움직일 수도 없었던 몸이 마니산으로 올라가는 순간 어찌나 가벼운지.

거기 올라가서 기도를 시작했죠. 내가 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어요. 내가 글쎄 ‘5000년 우리 역사에 외국의 침략을 받은 게 도대체 몇 번입니까. 또다시 위기가 와서는 안 됩니다. 경제발전을 시켜주세요. 국운을 융성하게 해주세요’ 하고 있는 겁니다. 얼음물을 깨서 목욕을 하고 바위에 앉았지만 추운 줄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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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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