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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②

‘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세상을 밝힌 빛의 혁명가

  •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더사이언스팀 기자 uneasy75@donga.com

‘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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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토머스 에디슨.

‘전류전쟁(War of Currents)’. 구글 검색창에 ‘에디슨(Edison)’과 ‘테슬라(Tesla)’를 치면 가장 먼저 뜨는 구절이다. 188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니콜라 테슬라를 필두로 한 웨스팅하우스와 토머스 에디슨 사이에 전기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일생일대의 ‘전류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이라는 표현에서 짐작되듯 양측의 싸움은 매우 치열했고 주도면밀했다. 싸움의 내용은 직류와 교류 중 어떤 것을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느냐는 것. 에디슨은 직류(DC·Direct Current)를, 테슬라는 교류(AC·Alternating Current)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싸움에서는 ‘발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에디슨의 내면에 감춰진 추악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인류 역사에 빛의 혁명을 가져다준 에디슨이지만 그의 삶은 언론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됐으며, 테슬라의 천재성은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라이벌이었던 셈이다.

악연의 시작

세계 최초로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1931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1100여 개에 달하는 발명품을 내놨다. 하지만 그는 사실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파였다. 그가 남긴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언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던, 노력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1876년 에디슨은 세계 최초로 미국 뉴저지의 멘로파크(Menlo Park)에 산업연구 실험실을 세웠다. 그곳에서 조수들과 함께 오늘날 거대한 음반 산업의 기초가 된 축음기와 전구를 발명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에디슨을 ‘멘로파크의 마법사(The Wizard of Menlo Park)’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테슬라와의 악연도 시작됐다. 테슬라는 에디슨과 달리 어릴 때부터 물리, 수학, 음악, 언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다. 발명을 할 때도 먼저 정확한 이론을 바탕으로 계획서를 작성한 뒤 일을 진행했고 시행착오를 거의 겪지 않았다. 1856년 세르비아 스미즈란 지역(오늘날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테슬라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테슬라는 그곳에서 에디슨의 유럽 자회사에서 근무하며 이름을 날렸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불린 그의 실력은 본사에까지 알려졌고 1884년 6월 테슬라는 미국 에디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뽑혔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이 ‘전류전쟁’을 벌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관계는 틀어졌다.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에 다니던 시절부터 테슬라는 교류를 이용하면 직류 전동기의 스파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다페스트 전신국에서 근무하면서 대학 시절의 막연한 생각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즉 변화하는 자기장의 원리를 이용해 교류 유도 모터를 발명한 것이다. 테슬라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 아이디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읊조리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테슬라는 1882년 파리 에디슨 전화회사로 옮겼을 때 평소 생각만 해오던 모터를 제작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에디슨연구소로 온 뒤 에디슨에게 교류전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축음기, 전화송신기, 직류전기를 발명하고 전자공업 발달의 원동력이 된 ‘에디슨 효과(도체나 반도체를 가열하면 전자가 밖으로 나오는 현상)’를 발견해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에디슨에게 교류전기는 자신의 명성과 부를 앗아갈 수도 있는 위협적인 전류시스템이었다. 테슬라는 직류전기가 일반인이 쓰기에 비싸서 전기의 대중화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교류전기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직류전기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에디슨, 교류 위험성 알리는 캠페인 벌여

특히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모터와 발전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설계를 요구했고 이를 실현시킬 경우 테슬라에게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몇 개월 뒤 테슬라가 결국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에디슨에게 약속대로 보너스를 요구했지만 에디슨은 “테슬라, 자네는 미국식 유머를 이해 못하나보군”이라며 약속했던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에디슨은 1주일에 18달러를 받고 있던 테슬라에게 매주 10달러를 더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 제안을 바로 거절했고 그 자리에서 에디슨연구소를 뛰쳐나왔다.

에디슨에게 몹시 실망한 테슬라는 1886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887년 교류 시스템에 필요한 발전기, 모터, 변압기를 모두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테슬라는 ‘테슬라코일’이라는 세계 최초의 교류 전기 모터의 특허를 획득한 발명가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 뒤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은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투자로 한층 발전했고 이를 계기로 직류 시스템을 고집한 에디슨과의 전류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이때가 1888년이었다.

이 무렵 에디슨은 백열전구, 전선, 전기 모터, 발전기 등 직류를 이용한 전기 시스템에 사용되는 모든 것을 개발해 전기 산업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기차에 사용되는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해 백만장자가 된 후 테슬라에게서 교류 변압기의 특허를 사들여 전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에게 현금으로 5000달러를 줬고, 회사 주식 50주에 교류전기를 팔 때마다 생기는 로열티를 지불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다. 발명가이자 타고난 사업가였던 에디슨에게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앞세운 웨스팅하우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분야에서 2등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에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했다. 직류 방식과 교류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할 때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직류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하면 전류를 세게 하기는 쉽지만 전압을 높이기는 어렵다. 에디슨은 120V의 전기를 생산해 각 지역으로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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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동아사이언스 더사이언스팀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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