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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도전정신 잃은 3세 시대 한국재벌 최대위기 온다”

‘재벌개혁 전도사’ 김상조 교수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도전정신 잃은 3세 시대 한국재벌 최대위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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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액주주운동 목표는 ‘정상화된 사회’
  • ● 朴정부 경제민주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 ● 초이노믹스, 기대했지만 실패했다
  • ● 내가 원하는 미래사회는 신상필벌 사회
“도전정신 잃은 3세 시대 한국재벌 최대위기 온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다. ‘재벌개혁 전도사’로 알려진 그는 경제민주화운동에 주력하는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를 15년째 이끌어왔다. 김 교수가 제시하는 경제민주화는 출발에서의 기회균등, 과정에서의 공정경쟁, 결과에서의 공평분배를 추구한다. 이런 경제민주화는 민주화 30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가 일궈야 할 새로운 시대정신이라 할 만하다. 김 교수는 2013년 삼성 사장단 회의에 초청받아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광복 70년을 맞아 김 교수에게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의의에 대해 물었다.

김호기 저는 79학번인데 김 교수는 81학번이지요.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김상조 지금 내 모습을 아는 많은 분은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모범생이었어요. 대학교수가 될 때까지도 그랬어요. 농성도 교수가 되고 나서야 처음 해봤고요. 사회과학 가운데 경제학을 막연히 동경했는데, 그게 경제학과를 선택한 배경이에요.

케인스 경제학 공부한 이유

김호기 사회과학에서 경제학이 가장 건조한 학문 같아요. 경제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김상조 후회한 적은 없어요. 다른 사회과학도들은 경제학을 계산하고 비교하는 것에 주력하는 천박한 학문이라 느낄지 모르겠지만, 저는 경제학이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파악하는 것을 훈련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편익과 비용, 수요와 공급이 그런 거지요. 절대적인 선과 악을 구분하기보다는 사물에 공존하는 양면을 보면서 합리적인 판단을 이끌어내는 게 경제학이라고 생각해요. ‘경제학은 세상을 좋게 할 순 없지만 나빠지지 않게 할 순 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이에요.

김호기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동기는 누가 있나요.

김상조 동기 중에 세속적인 면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적은 편이에요. 오히려 82학번 후배 가운데 유명한 친구가 많아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이혜훈 전 새누리당 의원,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등이 있어요.

김호기 김 교수는 정운찬 전 총리의 제자로 널리 알려졌지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김상조 대학원에 입학해 고(故) 임원택 교수의 조교를 했어요. 교수님이 학교를 잘 나오시지 않아 그 방이 당시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의 휴게실이 됐어요. 정운찬 교수가 대학원생들을 찾아 그 방에 더러 오셨는데, 그때 알게 됐어요. 석사 1학기 때부터 정 교수께서 지도교수가 돼줬어요.

김호기 김 교수나 제가 학부와 대학원을 다닌 1980년대는 ‘열정의 시대’이자 ‘사회과학의 시대’였어요.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에는 조순·정운찬 교수로 대표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과 김수행 교수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진보적 경제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 것으로 기억합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김상조 김수행 교수 아래에는 마르크스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에는 각 분야에서 현실을 좀 더 치열하게 연구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어요. 저는 정치경제학적 문제의식을 갖고 화폐와 금융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현대 자본주의는 화폐자본주의라는 이해 아래에서 화폐 및 금융을 연구해온 셈이지요. 물론 정운찬 교수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린 부분도 있었고요.

소액주주운동은 중요한 혁신

김호기 김 교수 하면 소액주주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액주주운동은 진보적 시민운동이 일군 주요한 성과의 하나로 꼽혀왔어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김상조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경제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것이 1996년이에요. 저는 출범 때부터 함께한 것은 아니고, 1999년부터 합류했어요.

김호기 어떤 계기로 참여했습니까.

김상조 1994년에 비교적 일찍이 대학교수가 됐어요. 1995년 6월 선배 교수들의 권유로 민교협(민주화추진교수협의회) 총무국장이 됐어요. 당시 민교협을 이끌던 이들은 김상곤 한신대 교수(전 경기도 교육감)와 곽노현 방통대 교수(전 서울시 교육감)였는데, 민교협 실무를 맡으면서 우리 사회 진보적 지식인들을 만나게 됐고, 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어요.

이런 과정에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났어요. IMF(국제통화기금)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요. 거시경제나 화폐경제를 전공한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1998년 제2기 노사정위원회 경제개혁소위의 공익책임전문위원을 맡아 일하기도 했어요. 각 경제 주체 대표들이 모여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의사결정에 도달하는지를 알게 된 소중한 경험입니다.

이때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다뤘는데, 김기원 방통대 교수와 민주노총·한국노총을 찾아가 지배구조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어요. 또 당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참여연대를 찾아가 이야기했는데, 이게 인연이 돼 참여연대 재벌감시단장을 맡게 됐고, 이어 경제민주화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후 1년간 영국에 안식년을 다녀온 다음 장하성 교수에 이어 책임자를 맡게 됐어요. 2006년 참여연대에서 독립해 현재는 경제개혁연대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15년째 같은 시민단체의 책임자를 맡고 있으니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장수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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