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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고발

졸속 ‘대학평가’ 현장

빈 강의실 문패 바꿔 달기, 대상 학과 예산 몰아주기, 평가 끝나면 ‘화장’ 지우고 ‘원위치’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졸속 ‘대학평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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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가 결과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장 많이 토로하는 곳은 서울대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종원 교수는 “2004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BK21 기계사업단 평가에서 우리는 포항공대와 KAIST를 제치고 기계분야 최우수사업단으로 선정돼 7억7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런데 2개월 만에 81개 대학 중 15위로 추락했다니 의아할 지경”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대교협 평가지원부의 한 관계자는 평가단의 주관적 편차가 심하다는 지적에 대해 “공교롭게도 한 평가조가 우수한 대학들의 심사를 동시에 맡아 불필요한 오해를 산 것 같다”며 “평가위원들은 동일한 기준을 갖고 평가에 임하므로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적다”고 해명했다.

‘定性 평가’는 ‘精誠’의 문제

대교협의 평가 신뢰성 논란은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03년엔 대교협의 학문분야 평가가 해당분야 교수들의 반발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평가를 받기로 돼 있던 경제학·물리학·문헌정보학과 교수들이 “현행 평가는 부정확, 불공정하고 비효율적, 비민주적으로 진행돼 대학교육의 자율성과 학문 발전을 저해한다”며 평가의 무기한 연기를 요구했던 것.

당시 평가대상 분야 교수들은 학문별로 평가개선위원회를 구성, 대교협 평가 편람의 개혁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평가위원회와 대교협의 줄다리기 끝에 2003년 학문분야 평가는 졸속으로 이뤄졌다. “평가에 배당된 예산을 써야 한다”는 대교협의 설득 끝에, 각 대학은 평가 문항을 40여개에서 10~19개로 대폭 줄이고 결과도 일부 영역은 상위 10% 또는 30%를 순위 없이 발표하거나 적합·부적합만 밝히기로 하고 두 달 만에 평가를 끝냈다. 평가기준과 방법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나 이듬해 평가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충북대 물리학과 정진수 교수는 당시 평가개선위원회를 이끌며 대교협에 평가 개혁을 요구한 인물이다. 2003년 초 참가했던 대교협 주최 평가 워크숍은 그로 하여금 대학평가를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대교협은 매년 그해의 평가방식을 설명하는 1박2일 연수회를 엽니다. 지난해 평가위원과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교의 담당자들이, 올해 평가를 받게 될 교수들을 상대로 ‘점수 잘 받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자리지요.

그런데 연수회에서 듣는 이야기가 참 가관입니다. ‘평가단이 하루에 두 학교를 심사하니 피곤하지 않게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을 갖다놓아라’ ‘담배 안 피는 심사위원들을 위해 공기청정기를 준비해둬라’… 뭐 이런 것들입니다. 합리적 대학 평가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평가위원들에게 잘 보일까’를 논의하고 있으니 문제 아닙니까.”

그는 현실을 왜곡하는 불합리한 평가기준에 대해 더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학문분야 평가는 평가 대상자가 교육목표와 교과과정에 대해 서술하는 정성(定性)평가와 교내 시설 및 수업시수 등 외형적 지표를 측정하는 정량(定量)평가로 나뉘는데, “정성평가의 경우 시간을 투자하면 만점을 그냥 챙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0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행 제도가 ‘자료 준비도’만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물리학과 평가를 준비할 땐데, 처음에 있던 자료를 그대로 산정했더니 결과가 기대 수준에 전혀 못 미치더군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학교가 점수를 높일 항목들에 재정도 긴급 투입하고, 없던 자료도 뚝딱 만들었어요. 금방 A급 수준이 됐지요. ‘투자가 늘었으니 좋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평가가 끝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10여년 전 우수한 평가를 받은 대학이나 미흡한 평가를 받은 대학 모두 평가 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죠.”

경남지역 사립대의 L교수는 “몇 해 전 ‘전 학과에 e러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교육목표를 제시해 대학종합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아직 e러닝 시스템은 구경도 못했다”면서 “제대로 된 정성평가가 이뤄지려면 그 대학이 내세운 교육목표가 실현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밤새워 작성한 3년치 상담카드

‘교육의 질(質) 제고’를 목표로 한 대학평가는 오히려 학습 분위기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평가대상 학문분야가 공시되면 해당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다. 좀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전략회의와 광범위한 자료수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재정 운용이 자유롭지 못한 국립대에 비해 사립대의 평가 준비 열풍은 과열돼 있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공대 대학원생 김광호(가명·29)씨는 ‘평가’란 말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다. 평가 준비는 회의와 잡무의 연속이었고, 교수들은 강의 준비와 연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수업은 뒷전인 채 수개월간 자료조사에 매달리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대학원생은 평가 준비할 때 ‘밥’이에요. 방향을 설정하는 거야 교수들의 임무지만 모든 기초자료 준비는 대학원생들의 몫이죠. 대학평가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학생마다 할당량이 정해져요. 며칠간 밤새우는 건 기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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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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