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나는 이념적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경제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경제 성장은 궁극적으로 생산성에 의해 좌우되고, 생산성은 인적 자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또한 세계적 수준의 인적 자원을 개발하려면 세계적 수준의 교육 시스템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명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교육을 논할 때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먼저 나의 개인적 관심사를 얘기하고 싶다. 외국인인 나는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이 나라의 ‘교육열’에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느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입시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학생들이 단순 암기에 시간을 소비하는 통에 창의성이나 개인적 자질, 혹은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컨설턴트이자 기업 임원으로서 나는 한국의 명문대학 출신자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 중 소수만이 글로벌 경제가 요구하는 자질, 이를테면 독립적인 사고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창의력을 지녔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 나는 가끔 아내가 ‘일직’을 서는 일요일마다 함께 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현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아내는 학교에서 나름대로 토론수업, 역할극, 참여 수업 등을 개발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시도했다. 그러나 아내는 상사나 다른 동료교사로부터 “수업시간이 너무 시끄럽다”거나 “너무 튄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세 아이를 한국에서 낳고 기르는 아버지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세계인’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수없는 논의 끝에 유치원은 한국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국제학교로 보내기로 합의했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부터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에 비해 실제로 얻은 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한국은 소중한 인적 자원을 소모적으로 낭비하고 있다.
한국의 낙후된 교육 시스템을 지적할 때 흔히 쓰이는 지표가 세계 대학순위다. 한국의 명문대학은 늘 낯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타임’이 선정한 세계 대학순위에서 서울대는 2006년 63위였다. 그나마 한국에서 100위권에 진입한 유일한 대학이다. 2005년과 비교하면 많이 올라갔지만, 여전히 세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중국 명문대학인 베이징대(15위)보다 한참 떨어진다. 상하이 자퉁대학(Shanghai Jiatong University)에서 매긴 세계 대학순위에서 서울대는 151위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