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세드 강’ 양안에 펼쳐져 있는 요세미티 공원.
이틀 전 그는 골치 아픈 정무를 잠시 접어두고 나흘 예정으로 요세미티를 찾았다. 텐트도 치지 않고 방수포만으로 하늘을 가린 채 이틀 밤을 야영했다. 동행자인 환경운동가이자 시에라 클럽의 창설자요 저명한 자연문학 작가인 존 뮈어(John Muir) 또한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6시15분, 두 사람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글레이셔 포인트로 올라갔다.
‘벼랑 위에 걸린 바위(Overhanging Rock)’에 오르자 흰 눈이 뒤덮여 더욱 눈부신 요세미티 계곡의 장엄한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눈 덮인 산정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계곡 밑바닥으로부터 자그마치 1000m 높이의 벼랑 쪽에 고개를 내민 바위에 서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했다.
루스벨트는 카키색 보이스카우트 복장에 해어진 군모를 쓰고 목에는 손수건을 두른 모습이다. 그의 옷 단춧구멍에는 뮈어가 골라준 세다 나뭇가지가 꽂혀 있다. 안내를 맡은 뮈어는 예의상 평소의 낡은 작업복 대신 양복을 걸치고 중절모를 썼다. 그의 옷깃에도 역시 푸른 나뭇가지가 장식 핀처럼 꽂혀 있다. 미국 환경운동사나 국립공원 안내책자의 한 페이지를 으레 장식하곤 하는 이 유명한 사진은 이렇게 찍혀졌다.
눈보라 속의 야영
미국 국립공원의 지정과 관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자연환경 관리에 대한 미국 사회의 상반된 의견의 역사를 예감케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적이다. 루스벨트의 요세미티 방문 계획이 알려지자 뉴욕에서 발간되던 유력한 월간지 ‘센추리’의 편집자인 로버트 존슨(Robert Underwood Johnson)은 대통령에게 안내역으로 뮈어를 추천했다.
1890년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한 뮈어의 선도적 노력과 그의 자연 에세이에 관해 잘 알고 있던 루스벨트는 이에 곧장 동의하고 뮈어에게 동행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뮈어는 이때 러시아, 만주, 일본의 숲을 돌아보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그는 계획된 일정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러나 날로 훼손되는 서부의 산과 숲을 보호하는 데 연방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대통령에게 요청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 일정을 미루고 동행 요청을 수락했다.
요세미티 남쪽 입구의 작은 도시 레이먼드에서부터 마리포사의 세쿼이아 숲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함께 루스벨트의 옆자리에 동석한 뮈어는 아직 주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요세미티 계곡의 심각한 훼손 실상을 설명하고 요세미티 전체를 연방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사람은 그날 밤 마리포사의 세쿼이아 숲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그리즐리 자이언트(Grizzly Giant) 세쿼이아 나무 근처에서 함께 야영하며 서부의 숲과 강, 그리고 그 보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며칠간의 친교로 두 사람은 평생의 지기가 되었다. 사냥과 낚시, 등산을 즐기던 루스벨트는 텐트도 없이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보라 속에서 야영한 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두고두고 술회하곤 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06년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세미티 계곡을 연방정부로 다시 이관하는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하면서 요세미티는 명실상부한 국립공원으로 거듭났다. 국유림 관리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적극적이었던 루스벨트는 1901년부터 8년의 재임 기간에 5개의 국립공원과 51개의 야생조류 피난처를 지정하고, 총 1억5000만에이커에 이르는 숲을 보존지역으로 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