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호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 &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30년 봉사의 씨 뿌린 ‘환상의 찰떡 궁합’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입력2007-09-06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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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밝은 빛을 간절히 소망했듯이, 밝은 빛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하면 살아가기가 한결 쉬워진다. 밝은 빛이 이끄는 대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살아가면 적어도 보통 이상은 되기 때문이다.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은 젊은 패기로 발을 들여놓게 된 한국라이온스협회에서 그 빛을 찾았다. 바로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이다.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 &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이태섭 전 장관(왼쪽)과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우기정(友沂楨·61)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은 3대째 골프장을 경영해오고 있다. 선친 우제봉 회장은 무역업을 하며 취미로 골프를 즐기다 친목모임 ‘신록회’ 멤버들과 1966년 뉴코리아 컨트리클럽을 열었다. 당시 이동찬 코오롱 회장, 김종률 세창물산 회장, 최주호 우성그룹 회장,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 등이 신록회 회원이었다.

    뉴코리아CC의 주 고객 중 한 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우제봉 회장과 자주 라운드를 즐기자 우 회장은 주위의 부러움과 함께 시샘을 샀다. 여러 군데서 갖가지 청탁을 받은 일도 있다고 한다.

    “뉴코리아CC를 만들어 초대 이사장을 지낸 아버님은 1972년 고향인 대구에 대구컨트리클럽을 건설했어요. 비교적 자리를 잡은 뉴코리아CC를 정리하고,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던 고향에 골프장을 만든 건 큰 모험이었죠. 선친께서 이런 모험을 감행한 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가 한몫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CC가 완공되자, 가장 먼저 방문해 50만원짜리 회원권을 100만원에 구입해 회원 1호가 됐죠. 김종필 전 자민련 대표도 박 대통령의 권유로 회원이 됐고요.”

    아버지의 모험을 지켜보기만 하던 우기정 회장이 골프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건 스물여섯 살 때다. 대구CC가 문을 열자 자진해 출근했다. 당시만 해도 골프 대중화가 되지 않아 수도권 지역 골프장도 경영난을 겪던 시절이었으니 대구CC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우 회장은 이듬해 대구CC 전무이사로 발탁돼 본격적으로 골프장 경영에 참여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고객 관리며 운영 상황을 직접 챙긴 결과 3년 만에 골프장 경영 상태가 흑자로 돌아섰다.

    경영에 매진하던 중 고객 상당수가 대구라이온스협회 회원임을 알게 돼 그도 라이온스클럽에 가입 신청을 했다. 서른도 안 된 나이 때문에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으나, 세 번째 신청했을 때 그 열의가 참작돼 마침내 회원이 됐다. 국제라이온스협회(Lions Clubs International)는 ‘WE SERVE’(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모토 아래 세계 193개국 138만여 회원이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순수 민간봉사단체다. 1917년 미국인 멜빈 존스가 창설했고, 1958년 미국인 무역업자 오키프가 한국의 친지들에게 라이온스협회의 취지를 알리고 동지를 규합한 것이 한국라이온스협회의 시초다.



    우기정 회장은 라이온스협회 활동을 통해 이태섭(李台燮·68) 전 과기처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장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어요. 경기중·고교 수석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MIT에서 2년8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라고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이 전 장관은 해맑기만 했어요. 말로만 들었을 땐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는데, 실제로 대해보니 참 맑고 소탈했어요.”

    ‘소탈한 수재’

    두 사람은 1975년에 라이온스협회 회원이 됐다. 그때 이태섭 전 장관의 나이 서른여섯, 우기정 회장은 스물아홉이었다. 다음은 이 전 장관의 회고.

    “저는 1975년에 서울세종라이온스클럽에 가입했는데, 부유한 집안의 잘생긴 젊은이가 떼를 써서 대구라이온스협회에 가입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우 회장의 행동거지가 올바르고 겸손해서 라이온들의 우려를 씻어내기에 충분했어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정도이던 두 사람의 사이가 긴밀해진 건, 우 회장이 1997~98년 대구라이온스 총재를 맡아 중앙의 라이온들과 교류가 잦아지면서부터다. 그 무렵, 이 전 장관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80차 라이온스협회 국제대회에서 지명이사가 되고, 2001년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제2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전 장관은 이어 2003~2004년 국제라이온스협회 회장을 맡았다. 우기정 회장도 2004년에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이사를 맡아 일하며 이 전 장관에게서 세계무대에 섰을 때 필요한 예절과 국제회의 진행 능력, 국제라이온스협회 사무 등을 배웠다.

    우 회장과 이 전 장관은 ‘찰떡 궁합’을 자랑한다. 눈빛만 봐도 서로 속내를 알아채는 사이라고 자부한다. 어느 한 사람이 일을 벌이면 다른 한 사람이 달려가 힘을 보탠다. 두 사람은 특히 라이온스 활동에서 손발이 척척 들어맞았다. 2004년 동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는 함께 수해 현장을 수차례 다녀왔다. 어린 시절에 6·25전쟁을 몸으로 겪은 두 사람은 수해 현장의 참상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돌아와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50만달러의 구호금을 조성해 스리랑카에 ‘코리아 빌리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우 회장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 근처에서 만난 가난한 태국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곳 학교를 돌아볼 때 국경수비대원이 “아이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조그만 강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는 이 전 장관과 의논해 다시 기금을 모았고 강당을 짓고도 남을 1억원을 태국 국경수비대에 전했다. 1억원으로 강당과 함께 예쁜 유치원도 지었다. 이 일은 태국 국영방송에서도 크게 보도됐다. 태국 라이온스협회 회장이 몸 둘 바를 몰라 한 것은 물론이요, 강당이 완성됐을 때 태국 공주도 방문해 우 회장과 이 전 장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평양 안과병원 개원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 &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2005년 6월18일 평양 안과병원 준공식.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태섭 전 장관, 맨 오른쪽이 우기정 회장이다.

    두 사람의 찰떡 궁합은 북한에 안과병원을 건립할 때도 발휘됐다. 2001년 국제라이온스협회 제2부회장으로 선출됐을 당시 이 전 장관은 북한에 안과병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우 회장이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이사로 선출된 뒤에 본격적으로 실천돼 2005년에 마침내 평양에 안과병원이 개원했다.

    “이 전 장관이 제2부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북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각오랄까, 다짐이랄까. 제2부회장에 당선되면 자동적으로 2년 후 국제회장이 되니까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죠. 한국인이 국제라이온스협회에 기부한 돈이 수천만달러인데, 중국과 인도에 100여 개씩 병원을 세우면서 북한엔 왜 우리 손이 미치지 못할까 고민하다가 ‘우리 한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거죠. 한국 회원들에게 5000원씩 의무적으로 내도록 했는데, 7만5000여 회원 전원이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섰어요.”

    국제라이온스협회는 1925년 제9차 국제대회에 초청된 헬렌 켈러가 “라이온이여! 어두운 암흑의 문을 여는 십자군의 기사가 되어다오”라는 명연설을 한 뒤로, 맹인을 돕고 눈을 보호하는 ‘시력우선(Sight First)’ 사업을 전개해왔다. 전세계 시각장애인 수는 3700여만명, 저시력자 수는 약 1억2400만명인데, 세계 인구가 80억으로 늘어날 2020년에는 그 규모가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급속한 노령화와 당뇨병 등에 의한 합병증으로 말미암아 실명의 위협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제라이온스협회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제1차 시력우선사업을 전개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제2차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 전 장관은 평양안과병원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의 시력 장애인이 16만명인데, 그중 3000명은 심각한 백내장과 녹내장 환자예요. 처음엔 국제라이온스협회에서 북한에 들어가길 꺼렸어요. 한국라이온스협회의 노력으로 성사됐죠. 특히 우 회장이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평양안과병원은 사업비 총 650만달러 중 480만달러를 국제라이온스협회 재단에서 지원받고, 170만달러는 국내에서 모금해 충당했다. 그 결실이 평양 낙랑구역에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3층에 l76병상을 갖춘 최첨단 안과병원이다.

    그러나 2002년 기공식 후 2005년 6월에 준공식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비가 워낙 많이 드는데다, 왕래가 자유롭지도 않아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2004년 7월부터 11월30일까지 사업이 중단됐을 때는 이 전 장관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우 회장은 “이 전 장관의 리더십과 한국라이온스협회 회원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학 전공한 휴머니스트

    우 회장은 지난해 ‘제1회 스페셜올림픽 동아시아 골프대회’를 대구컨트리클럽에서 개최했다.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연합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개안수술을 해주는 ‘오프닝 아이즈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그는 2005년 나가노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을 참관하면서 지적발달장애인들의 골프대회를 구상했다. 동·하계 올림픽, 장애인올림픽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인정하는 3대 올림픽에 속하는 스페셜올림픽은 정신지체장애우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을 제고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도와주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나가노에서 돌아온 우 회장은 곧장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력우선 사업차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한국에 있는 날이 거의 없어요. 그때도 역시 외국에 있었는데, 우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가 철학을 전공한 휴머스니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또 한번 놀라게 하더군요. 스페셜올림픽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면서요. 두말이 필요 없죠. 적극 격려했어요.”

    우 회장은 마침내 골프대회를 유치하기로 결정했고, 지난해 한국 중국 대만 홍콩의 장애인 66명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회를 치렀다.

    라이온스협회의 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인 우 회장은 가업인 골프장 경영을 통해서도 휴머니즘을 실천해왔다. 1994년, 골프에 대한 선친의 남다른 애정을 기리기 위해 선친의 호를 딴 송암골프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송암배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매년 대구CC에서 열리는 송암배 골프대회는 명실공히 스타플레이어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박세리, 김미현, 강수연, 장정, 한희원, 안시현 등이 이 대회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어린 선수들을 볼 때처럼 보람을 느낀 적은 없어요. 송암배는 후진 양성의 틀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죠. 세계 곳곳을 투어할 때 친분이 있는 선수들에게서 전화가 와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골프는 특히 정신력이 중요하죠. 어느 선수가 스코어가 좋지 않아 SOS 전화를 하면 전 어디든 달려갑니다. 김미현 선수는 경기가 잘 풀릴 때보다는 잘 안 풀릴 때 연락해요. 김미현 선수의 ‘땅콩’이라는 별명도 제가 지어준 거예요. 김미현 선수는 대구CC에서 실력을 키웠죠.”

    골프선수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우 회장이 SOS를 치는 상대는 역시 이 전 장관이다. 우 회장은 1996년에 해외 골프장 사업에 눈을 돌렸다. 중국 다롄(大連)에 골프장을 조성하기 위해 50년간 100만평(약 330만m2)의 땅을 임차하기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 그는 이 전 장관을 찾았다.

    “몇 년 전부터 우 회장이 골프장을 짓겠다며 중국을 드나들었어요. 하루는 중국이라며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젖어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니, 50년간 약 330만m2를 임차하는 조건으로 허허벌판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해요. 과거엔 중국이 우리 영토를 호시탐탐 넘봤지만, 이제 우리가 그곳에 골프장을 건설하면 우리 땅을 되찾는 거나 다름없죠. 사실 골프장 사업은 소리 없는 전쟁이에요. 우 회장이 더없이 자랑스러웠어요.”

    ‘라운드하고 싶은 0순위’

    우 회장은 “이 전 장관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 전 장관은 4선 국회의원에 장관직을 두 번이나 하고, 국제라이온스회장까지 맡았지만 어떤 일이든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않고 솔선수범해요. 침례교 장로이면서도 지금껏 한 번도 ‘교회 가자’고 종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런 분이 장로라면 교회에 다녀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이 전 장관 따라 교회에 나가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그렇다면 두 사람의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김종필 전 총리는 골프 실력이 최고이면서 골프 매너도 최고인 사람으로 단연 이태섭 전 장관을 꼽는다. 그런데 이 전 장관의 골프 실력은 우 회장 덕분이라고 한다.

    “우 회장과 라운드할 때 세심하게 살폈죠. 저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라 곁눈질로 열심히 배웠어요. 우 회장의 골프 실력은 대단해요. 많은 사람이 그와 라운드하고 싶어하죠.”

    그러나 앞으로도 두 사람은 라운드하고 싶은 0순위에 서로의 이름을 올려놓고 지켜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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