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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 10년’, 빛과 그림자

자기자본 225배 초고속 성장… ‘연못 속 고래’ 운명 피할까?

  • 홍찬선 머니투데이 경제부장 hcs@moneytoday.co.kr

‘미래에셋 10년’,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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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 10년’,  빛과 그림자

‘좌 재상 우 현만’. 미래에셋 10년 성공신화를 이끌며 박현주 회장의 양팔 노릇을 해온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왼쪽)과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

하지만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건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호조건은 다른 자산운용회사나 증권회사에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온라인 증권회사 가운데 키움증권이 2위와의 격차를 벌이며 크게 앞서 나간 것은 키움만의 독특한 성장 DNA가 있었던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래에셋이 다른 자산운용회사나 증권사보다 빠르게 성장한 것을 운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펀드매니저 3인방’ 중 한 명으로 ‘박현주펀드’를 운용한 이병익 오크우드투자자문 대표는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이 운이 좋아서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너의 열정과 ‘승부근성(killer instinct)’, 고객을 중시하는 운용시스템 구축 등이 더 큰 성공 요인이었다는 설명이다.

“승부처에서 과감하게 지르는 킬러 본능은 아무나 갖고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박 회장은 의사결정을 즉흥적으로 내리지 않는다.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일단 결론이 나면 과감하게 실행한다. 지금 미래에셋그룹 본사 건물로 쓰고 있는 한국유리빌딩을 매입하던 2000년 당시를 돌아보자. 주위에서는 모두 부동산 경기가 어렵다며 말렸지만 박 회장은 수개월 고민한 뒤 단안을 내렸다. 나중에 보니 당시 매입가격은 최저가였고, 잔금을 치를 때는 이미 많이 올랐으며, 지금은 매입금액의 3~4배 이상으로 올라 있다.”

‘군주론’과 ‘제3의 물결’

미래의 변화흐름을 정확히 내다보고 대응하는 CEO 박현주 회장의 능력에 관한 ‘신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미래에셋캐피탈은 1999년 여름 코스닥의 다음커뮤니케이션에 24억원을 투자해 그해 겨울 1000억원가량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 자금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증권 설립은 물론 미래에셋그룹의 급속한 발전을 위한 종자돈으로 쓰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998년말 국내 처음으로 뮤추얼펀드를 선보였다. 지금은 박 회장이 로비를 해서 뮤추얼펀드 인가를 받았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당시에는 뮤추얼펀드가 잘 안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펀드에 가입한 뒤 1년 동안 돈을 찾을 수 없는 폐쇄형 뮤추얼펀드는 단기 투자에 익숙한 고객들의 니즈(needs)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박 회장은 “당시 주가지수가 충분히 낮고 운용시스템을 잘 짜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고, 결국 성공시켰다.

국내 최초로 해외 현지법인을 설립한 과정도 마찬가지다. 자산운용업은 한국 회사들이 선진 외국회사들의 운용 노하우를 배워 한국에서 영위하는 ‘내수산업’이라는 인식을, 해외로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산업’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2005년 6월에는 SK생명보험도 인수했다. 생명보험이라는 업종 자체를 단순히 보험료를 받아 사고를 당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투자회사로 거듭나게 할 수 있다는 시각에 바탕을 둔 결정이다. 변액보험과 퇴직연금 등에서 우수한 투자성과를 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의 모기업인 미래에셋캐피탈 설립에 결정적 구실을 했던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은 “박 회장은 창업하기 5년 전부터 착실히 준비했다”며 “남이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박 회장의 능력이야말로 미래에셋 고속성장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 자신은 이런 능력의 원천이 독서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건강하던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삶과 학과 공부에 회의를 느낀 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케네디와 키신저의 자서전을 대여섯 차례 읽으며 전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십 수 차례 읽으며 미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을 키웠다는 것이다.

‘左재상 右현만’

박 회장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주식투자에 눈을 돌렸다. 모친이 1년 생활비를 한꺼번에 보내주면 그 돈으로 명동 증권가를 돌아다니며 주식투자를 익혔다. 26세이던 1984년에는 사설 투자자문회사인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했다. 남보다 일찍 주식투자를 시작했고 누구보다 먼저 주식투자에 분석을 도입했던 박 회장은 동양증권과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업실력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결정을 믿고 따르는 많은 인재를 이끄는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능력이 있으면서 로열티도 강한 인재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인 뮤추얼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을 때 미래에셋의 인력 구성을 보면 박현주 회장의 성공에 인재가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점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박 회장은 33세의 나이에 동원증권 중앙지점 최연소 지점장,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 등을 거치며 전국 증권사 중 약정 1위를 기록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다. 여기에 박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전 동원증권 서초지점장)은 증권영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능력을 발휘했다. 박 회장의 왼팔로 통하는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은 펀드 운용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여기에 정상기 맵스자산운용 사장을 포함한 세 사람은 박 회장에 대한 신뢰가 높아 박 회장의 꿈과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삼각편대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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