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꼬질대’ 콕콕 쑤셔대면 강태공 손맛처럼 감이 짜릿 오죠”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2/3
도굴꾼과 고고학자의 敎學相長

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2005년 11월 전북 군산시 야미도 인근 바다의 침몰 선박에서 고려청자 320점이 불법 인양됐다.

고고학계에는 ‘도굴꾼과 고고학자는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이 전해온다. 문화재에 대한 식견은 365일 전국의 무덤을 발로 뛰는 도굴꾼이 고고학자보다 낫다는 것이다. 박상국 문화재위원의 말이다.

“문화재 전문 도굴꾼들이 교수들보다 문화재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높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깁니다. 소싯적부터 한학과 문화재를 공부했고 귀중한 문화재를 매일같이 보고 만지는데 그 차이가 클 수밖에요.”

흔히 도굴은 ‘지능범죄’라고 한다. 도굴할 터를 살피는 것부터 유물 감정에 이르기까지 풍수지리와 문화재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굴꾼들은 행동대원, 상선(나까마), 유통업자로 구성된 점조직 단위로 활동한다. 조직의 핵심은 상선, 즉 장물아비들. 이들은 고서 도자기 석물 목불 탱화 등 각각의 전문 분야를 두고 사찰과 고택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행동대원에게 도굴을 지시한다.

지시받은 목표물을 훔치는 데 성공하면 행동대원은 물건을 들고 상선을 찾아간다. 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안목을 자랑하는 상선들은 감정을 거쳐 대금을 치른다. 물건의 전달과 금전거래는 동시에 이뤄지는 게 철칙. 서상복씨는 “오른손으로 물건을 주면 왼손으로 현금을 받는 게 원칙”이라며 “행동대원과 상선은 상호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훔친 문화재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고 전했다.



행동대원과 상선의 거래가 끝나면 상선들은 물건에 관심을 보일 만한 사람들을 찾아 팔아넘긴다.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은 다양하다. 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윤석 문화재전담수사반장은 “개인 소장가도 있고 박물관도 있다. 사는 사람은 딱히 특정되지 않는다”고 했고, 서씨는 “대학교수, 박물관장, 대기업 사장 등이 상선의 ‘윗선’”이라고 했다.

상선은 ‘윗선’과 직거래하고 남은 유물을 전국으로 돌린다. 본격적인 ‘물건 세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물은 전국의 골동품점을 돌며 유통된다. 강신태 반장은 “도굴한 유물이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출처가 모호해진다. 도난 문화재를 소유한 사람이 ‘합법적인 매매업소에서 샀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면 물증을 잡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조직폭력배가 문화재 도굴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서상복씨가 보내온 서신 내용이다.

“저는 (충남) 서산의 모 폭력조직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조폭처럼 이권개입, 술장사, 사채거래 등을 하지 않고 문화재 일을 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수백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려 중국과 일본에 사무실도 냈습니다. 국내에서 거래하기 힘든 도굴품이나 절도품은 해외 골동품상에 팔았습니다. 좋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해외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조폭이 문화재 거래를 하면 장점이 많습니다. 입이 무거워 들킬 염려가 없고, 설사 검거돼도 혼자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선들도 조폭과의 거래를 선호하는 겁니다.”

“강태공이 낚시하듯…”

도굴꾼들은 땅속 유물이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낸다. 비법이 뭘까. 아래는 서씨에게서 전해들은 도굴 수법.

‘고전적인 방법은 길다란 총구 소제용 꼬질대로 양지바른 곳을 쑤시는 것이다. 이때는 풍수지리를 이용한다. 지형과 산세를 보면 묘를 쓸 만한 지역이 나온다. 묘를 쓸 때 산의 지형과 방향을 보는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지형이 험해도 산의 옛 위치를 머릿속에 복원하면 묏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꼬질대로 땅을 쑤실 때는 아무 데나 쑤시는 게 아니라 지형을 보고 평탄한 곳을 찾아 쑤신다. 왜 평탄한 곳이냐 하면, 수백년이 흐르면서 관리를 하지 않아 묘의 봉분이 없어지고 길이나 논밭이 됐기 때문이다. 지형의 흐름에 따라 꼬질대로 땅밑을 쑤셔대면 느낌이 온다. 강태공이 고기를 낚을 때처럼 손에 감촉이 온다. 도자기류인지 금속류인지 그냥 돌덩이인지…. 주변에 우리만 알 수 있는 표시를 해뒀다가 인적이 뜸한 시간에 돌아와 땅을 판다. 청자, 유기그릇, 칼, 방패 등 여러 가지가 나온다.

그러나 요즘은 장비가 발달해 탐지기를 주로 쓴다. 일본에서 사온 탐지기를 이용하면 지뢰 탐지기처럼 땅위를 훑기만 해도 디지털 모니터에 매장된 물건이 나온다. 철기류, 사기류, 석물류 등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도굴꾼들은 전국을 떠돈다. 땅이 얼면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북에서 시작해 남으로 내려간다. 시기는 봄부터 초겨울까지. 한반도 전체가 꽁꽁 언 한겨울에는 잠시 쉬었다가 땅이 녹기 시작하면 다시 북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도굴꾼에겐 전국을 누비고 다닐 체력과 민첩한 몸동작이 필수다.

도굴당하는 고분은 주로 넓은 석판으로 만든 석실이나 석관이 들어 있는 형태. 봉분의 흙만 파고 들어가면 바로 부장품이 안치된 방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이 만든 ‘전국문화유적총람’을 토대로 도굴할 곳을 물색하기도 한다. ‘전국문화유적총람’은 1976년부터 전국 문화재의 위치를 일일이 조사해 만든 일종의 문화재 분포지도. 조유전 관장은 “원래는 지자체에서 문화재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었는데, 실질적으로 일일이 관리하기란 불가능하다. 총람은 누구나 볼 수 있으므로 도굴꾼들도 그것을 참고할 것”이라고 했다.

2/3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목록 닫기

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댓글 창 닫기

2021/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