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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연료 탱크’ 난자, 그 위대함에 대하여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생명 연료 탱크’ 난자, 그 위대함에 대하여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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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기를 안고 첫돌 떡이라며 백설기를 들고 온 엄마가 있었다. 그를 보면서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궁에 심한 기형이 있었고, 난관이 막혀 물이 차는 난관수종과 임신을 방해하는 자궁내막증이 있었다. 이른바 ‘난임 종합선물세트’를 모두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의 임신 중 두 차례나 임신 20~30주에 유산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6년간의 노력 끝에 끝내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것이다. 첫돌이 된 아이를 안고 병원을 들어서는 모습은 난임 치료 전문의사로서 큰 감동이었다. 나는 아기를 직접 안으며 마음속으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우리나라의 큰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는 짧은 기도를 했다. 

만약 이 세상에서 마초이즘(machoism)과 페미니즘(feminism) 중 선택하라면 나는 페미니즘을 택할 것이다. 사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남성을 위해 남성들이 만든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 난자(생식세포)는 생명 잉태를 위한 재료와 연료를 모두 갖춘데 비해, 정자는 생명에 꼭 필요한 화룡점정(畵龍點睛) 역할을 한다. 난자가 위대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정자 없인 죽도 밥도 안 된다. 정자는 난자만큼 위대하진 않아도 중요하다. 하나가 없으면 백이 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최근 필자는 ‘여성동아’에서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서 난자를 주제로 난임 강의를 했다. 내용 중에 “남자는, 정자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마초이즘 경향의 남성들이 “무슨 개뿔 같은 소리?”냐며 ‘버럭’ 했다고 들었다. 정자와 난자의 크기를 보면 이런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난자가 자동차 타이어 정도의 크기라면 정자는 거기에 붙은 껌 딱지 정도의 크기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생명을 잉태해서 낳고 키우는 일에서 여성의 업적은 남다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가장의 처지에선 발끈할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인 설명을 들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반쪽을 기다리는 이유

생식세포로 따져보자. 정자는 수정되면서 난자에게 핵(염색체, DNA)을 넘겨주면 끝이다. 반면 난자는 핵 외에 세포질과 미토콘드리아가 있어 수정 이후 큰 역할을 담당한다. 즉 난자는 정자로부터 받은 핵 50%에 자신의 핵(50%)을 보태 완전한 핵이 되면 이때부터 오로지 난자의 힘으로 생명을 완성한다. 



핵은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면이다. 즉 정자와 난자의 핵이 만나(수정) 완벽한 세포설계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쪽은 아버지에게서, 다른 한쪽은 어머니에게서 받아 23쌍의 염색체(46개 염색체)가 된다. 유전자(DNA)는 23쌍 염색체 안에 잘 보관돼 있다. 23개 염색체가 두 개씩 한 세트가 되는 이유는 한쪽의 유전자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한쪽의 유전자가 대신하는 데 있다. 일종의 생명 연장을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따라서 난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유전자를 대물림하고 싶어도 난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우수한 유전자라고 해도 생명이 될 재료와 연료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제아무리 ‘레시피’가 좋아도 재료와 연료 없이 요리를 만들 수 없고, 완벽한 설계도면이 있더라도 집 지을 땅과 재료가 없으면 건축을 완성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세포의 근원(세포질)과 연료(미토콘드리아)가 모두 난자에게 있다. 단 1개의 세포(수정란)였는데, 수정 이후 2개, 4개, 8개, 16개로 체세포분열을 해나갈 수 있는 것도 난자 덕분이다. 세포분열은 세포가 나뉘어 쪼개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가 복제를 해 온몸의 세포를 최초의 세포(수정란)와 동일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업적이다. 

물론 정자 역시 생명잉태 과업에 없어서는 안 된다. 난자는 정자 없이 완전한 핵(23쌍 염색체)을 완성하지 못한다. 생식세포(정자, 난자)에는 감수분열로 인해 절반의 유전자만 담겨 있기에, 정자와 수정이 되지 않으면 완전한 핵이 될 리 없다. 어쩌면 인간이 저도 모르게 자신을 채워줄 반쪽을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화살을 쏘는 수컷 본능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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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변했다. 신(新)모계사회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풍(女風) 당당 세상이다.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요즘 남성들은 사회나 가정에서도 을(乙)로 살고 있다고 푸념한다. 사실 필자는 저출산 원인 중 이러한 남성들의 ‘위축된 생활’도 한몫한다고 본다. 가부장적 사고에는 반기를 들지만, 생물학적으로 남성 본능은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정자로서는 난자를 만나는 데 한계(시간)가 있다. 또 언제 만날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남성은 생식을 위해 단 한 번의 기회(합궁)가 주어지면 무한의 수(정자)를 쏟아내는 것이다. 셀 수 없는 화살(정자)을 과녁(난자)을 향해 쏘는 일이야말로 생명 잉태를 위한 수컷 본능의 핵심이다. 더 많이 자주, 더 넓게 기회를 노리고자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본능일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아들을 원한다. 아들을 낳아야 남성으로만 전해지는 Y염색체를 대물림할 수 있어서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지만, Y염색체는 부계로만 유전된다. 

이 Y염색체는 일부다처제 아래에서 정복과 이주의 역사를 살았던 고대·중세 남성들에 의해 세계 곳곳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인류유전학회지(2003)에 게재된 ‘몽골의 유전 흔적(The genetic legacy of the Mongols)’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남성 2123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연구 대상 남성의 8%가 거의 동일한 Y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남성 8%의 조상이 동일하다는 얘기가 된다. 중앙아시아 총 남성인구를 감안하면 8%는 약 1700만 명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8%)의 조상은 누구일까. 학자들은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한 역사상 최강 정복자인 칭기즈칸과 그 무리라고 결론 내렸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다. 이제 젊은이들은 나의 가문, 나의 혈통을 고집하는 세대도 아니다. 난임이나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는 적극적으로 정자은행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라의 발전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건강한 남자들이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하는 문화도 생겨야 한다. 원한다면 언제든 위대한 난자에 정자가 화룡점정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신동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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