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배치해요. 면면을 보면 해당 직책을 잘 수행할 경험과 역량을 갖췄어요. 이런 ‘인사 컬러’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굉장히 준비를 많이 했다는 뜻이죠. 이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불필요해요. 보수는 무엇을 지킨다는 건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여태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됐죠. 문 대통령의 인사에선 이런 가치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혀요.”
백 전 의원의 해석은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취임 일주일 동안 문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 스타일은 ‘소장파 중용’(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관료 활용’(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 ‘지역 안배’(이낙연 국무총리 후보)로 정리될 수도 있다.
박원순·문재인·노무현의 교집합
첫 인사를 보면 외형상 양정철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비서실 부실장 같은 친문(문재인)계 핵심을 배제했다. 그러나 임명된 인물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친문·친노(노무현) 색채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명된 인물들은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적폐청산, 국가 대청소, 권력기관 개혁, 일자리 창출, J노믹스 실현 같은 촛불민심 과제 완수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여권 일부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들이 청와대에 대거 입성했다고 평가한다. 임종석 비서실장(서울시 정무부시장),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서울시 정무부시장), 김수현 사회수석(서울시 서울연구원장), 조현옥 인사수석(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이 박원순 시장 밑에서 일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김수현 수석은 이에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을 지냈고 환경부 차관도 역임했다. 조현옥 수석도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자문위원을 거쳐 청와대 인사수석실 균형비서관으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원조 친노’에 가깝다. 더구나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때 문 대통령과도 함께 근무한 인연을 갖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의 ‘1m 측근’이랄 수 있는 후보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문재인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한 측근들만 모였다는 ‘광흥창팀’ 멤버였다. 따라서 임 비서실장은 ‘신문계(新문재인계)’라 할 수 있다. 하승창 수석은 문재인 후보 선대위에서 사회혁신·사회적경제위원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의 인재들을 쓰겠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청와대에 박 시장과 함께 일한 인물들이 입성한 건 이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박원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즉, 이 인물들은 ‘박원순·문재인·노무현의 교집합’이라 할 수 있다. 여기다 보수정권 9년 동안 뚜렷한 일자리가 없던 진보성향 젊은 정치인들이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측면도 감안해야 한다.
총무비서관과 부속실장의 경우
아울러 친노·친문의 대리인이 요직에 들어간 정황도 눈에 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이었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기획비서관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잘 나간 관료를 왜 중용했을까.이정도 총무비서관은 기획재정부 국장 출신이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살림을 총괄한다. 대통령의 특수활동비를 집행하고 청와대 인사위원회에도 참석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집사나 다름없는 핵심 측근에게 이 자리를 맡겼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일면식도 없을 것 같은 관료를 왜 총무비서관에 앉혔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대입하면 의문이 풀린다. 홍 실장은 변양균 정책실장 밑에서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이 비서관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차관일 때부터 정책실장일 때까지 비서관 노릇을 했다. 친문 진영을 잘 아는 A씨는 “홍 실장과 이 비서관은 변 전 실장의 ‘복심(腹心)’ 같은 인물이다. 문 대통령은 변 전 실장에게서 정책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변 전 실장이 신정아 사건 때문에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까닭에 대리인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변 전 실장은 각각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으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송인배 제1부속실장 내정자도 유사한 사례로 꼽힌다. 송 내정자는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한 원조 친노다.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선 일정팀장을 맡았다. 송 내정자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문 대통령 집무실 문고리를 쥘 수 있었던 건 김경수 민주당 의원이 뒤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A씨는 설명한다.
‘문재인의 대변인’인 김 의원은 문 대통령에겐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봉하마을을 지역구로 둔 상징성을 감안할 때 의원직을 포기하면서 청와대에 들어가기 힘들다. 이에 대신 평소 절친한 송 내정자를 문 대통령 지근거리에 뒀다는 게 주장의 얼개다.
결국 문재인 정부 첫 인사 곳곳에 친노, 친문이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文 친위대’ 광흥창팀
이와 관련해 ‘광흥창팀’도 주목을 받는다.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인근 상수동에 마련된 외곽 캠프에 참여한 멤버들이다. 멤버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 친문 중의 친문으로 꾸려졌다. 양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측근 3인방을 일컫는 ‘3철’(양정철·전해철·이호철)의 한 명이다. 광흥창팀에는 나중에 임종석 실장 등이 참여해 13명이 활동했다고 한다.다른 한편으로, 문 대통령 주변에선 “몇몇 소장파 측근이 사실상 문재인 정권의 뇌와 등뼈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들은 대체로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지녔고, 상당한 수준의 개혁 이론·정책으로 무장했고, 문 대통령 주변 정치권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고, 학생운동 문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이들이 결국 시차를 두고 새 정부를 이끌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평가는 조금씩 엇갈리지만 임종석 비서실장(선대위 비서실장), 양정철 전 비서관(비서실 부실장), 김경수 의원(대변인), 최재성 전 의원(종합상황본부 제1실장), 강기정 전 의원(총괄수석부본부장), 노영민 전 의원(조직본부장), 이호철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등 7명이 주로 꼽힌다. 여기에 광흥창팀 소속인 윤건영 선대위 종합상황본부 부실장과 한병도 전 의원(조직부본부장)이 포함되기도 한다.
임 비서실장은 한양대 총학생회장-전대협 의장 경력을, 양정철 전 비서관은 대학신문기자연합회 회장 경력을, 최재성 전 의원은 동국대 총학생회장 경력을, 강기정 전 의원은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경력을, 노영민 전 의원은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 경력을, 이호철 전 수석은 부마민주화 항쟁 구속 경력을, 윤건영 부실장은 국민대 총학생회장 경력을, 한병도 전 의원은 원광대 총학생회장 경력을 갖고 있다. 김경수 의원 외에는 ‘원외’라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은 노무현 정부 파워 그룹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에 빗대 이들을 ‘문재인의 J7’ 내지 ‘문재인의 J9’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청와대 비서실장(임종석), 주중국대사 내정자(노영민)가 나왔다. 다른 인물들은 이어질 후속 인사, 또는 임기 5년 동안 계속될 인적 쇄신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요직에 앉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양정철은 글 쓰는 사람”

광흥창팀의 한 멤버는 기자에게 “광흥창팀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사심 없이 밀었고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는 부분이 있어 문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충성심)가 매우 강하다. 임종석·윤건영 실장은 정부에 참여하겠지만 다른 분들은 중요한 직책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원우 전 의원은 양정철 전 비서관이 억울해 할 점이 많다며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양정철은 글 쓰는 사람입니다, 글 쓰는 사람. 모든 게 다 양정철 비서관이 한 것처럼 포장되는데. 그건 언론이 만들어놓은 겁니다. 아는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으니까. 양정철 비서관에 대한 언론의 사감(私感)이 작동했다고 보고요. 국정에서 저는 인사권자가 아니니까 이렇다 저렇다 할 순 없지만 양정철 비서관은 아마 문재인 대통령 성공을 위해 자기가 뭔가 직접 나서는 그런 일은 안 할 거예요.”
‘노영민 미스터리’
‘3철’의 또 한 명인 이호철 전 수석은 대선 직후 “자유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글을 남기고 홀연히 출국했다. 이 전 수석은 대선 때 직책을 맡지 않았다.그의 출국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 전 수석의 지인인 B씨는 “부산에선 지금 난리가 났다. 이호철의 권유로 선거를 도운 사람이 많은데, 혼자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모두가 논공행상에서 제외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B씨는 “이 전 수석이 혼신을 다해 선거운동을 해놓고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출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수석도 활용 여지가 있는 예비인력으로 봐야 한다.
중국대사로 내정된 노영민 전 의원은 첫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비서실장 물망에 올랐다. 3선 국회의원 관록 때문이다. 그러나 비서실장 자리는 임종석 전 의원에게로 넘어갔다. 노영민을 둘러싼 이 흐름은 문재인 정부 초기 최대 미스터리로 남을 전망이다. 하지만 사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주중대사 자리도 요직이다.
최재성·강기정 전 의원은 당 지도부가 청와대 정무수석 후보로 밀었지만 전병헌 전 의원에게 밀린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원내대표를 지낸 3선 의원의 관록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최·강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