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 특집 1 > 문재인 정부사용설명서

재벌개혁 입안한 최정표 건국대 교수 “4대 재벌, 소유와 경영 분리가 핵심”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7-05-18 14: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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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과 통합 7 대 3의 비율로”
    • 천재일우의 기회
    • “기한 정해둔 개혁은 위험, 멀리 봐야”
    • 제이노믹스 알맹이 채워야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제이노믹스(J-nomics)는 국민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인가. 반부패 재벌개혁, 공공 일자리 창출, 자영업자 소상공인 살리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소상공인 자영업자 보호, 4차 산업혁명 대비…. 핵심 내용을 보면 한국 경제의 모순 고리를 정부가 직접 끊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재벌개혁은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과 함께 문 대통령의 양대 경제 과제 가운데 하나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에서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개혁 공약을 입안한 최정표(64) 건국대 교수는 지난 대선 때도 문 대통령을 도왔다. 패배한 그때와 달리 지금 최 교수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개혁이 중요합니다. 적폐 청산을 외치다가 선거 막바지에 통합을 내걸었는데, 거기에 매몰되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개혁이 7이라면 통합은 3의 비율로 하면 됩니다. 그동안 쌓인 폐단이 너무 많고, 많은 제도가 유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새롭게, 거의 혁명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개혁에 대한 반발도 있을 텐데요.
    “개혁에는 당장은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도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예컨대 개혁하느라 성장이 좀 둔화된다고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수술하고, 회복할 때는 체력이 떨어지고 기운이 좀 부족해지잖아요. 그러다 회복하면 그때부터는 더 건강해집니다. 우리 경제도 지금은 수술할 때라고 생각하고 개혁을 좀 해야 합니다.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통일까지 가는 겁니다.”



    개혁엔 고통 수반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59%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텐데, 그들은 개혁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바라보지 않을까요.
    “저는 75%는 개혁을 원한다고 봐요. 홍준표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들 외엔 대부분 개혁을 원한다는 거지요. 유승민 후보는 보수 개혁을 내세웠고, 심상정 후보는 당연히 개혁세력이죠. 또 안철수 후보도 개혁적인 보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별 투표 현황을 보니 서울 압구정동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표를 두 배나 더 얻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인정해야지요. 개혁이라는 이름의 기차에 모든 사람을 다 태워갈 수는 없습니다. 승차하지 않는 이들은 걸어가야지요.”

    -새 정권이 출범하면 하나같이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구체제라고 봐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신체제로 가려다 좌절됐습니다. 재벌, 대형 로펌, 고급관료, 보수언론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년 공백이 생겼지요. 이제 문재인 정부가 다시 신체제로 갈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습니다.”


    진화 과정 역행하는 한국

    -재벌개혁의 핵심은 무엇인지요.
    “세습 문제 해결입니다. 재벌 후손들이 능력과 상관없이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 경제의 주요 부문을 세습하고 있어요. 오늘날 한국 경제는 재벌 3,4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습니다. 창업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성공한 사업가로 우뚝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습 경영인들은 겁이 나서 투자를 못 합니다. 돈을 쌓아두고 관리만 합니다. 기업가 정신이 없습니다. 전문경영인이 맡아야 투자를 늘리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미국 대기업도 처음엔 한국처럼 재벌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소유와 경영이 구분돼 있습니다. 경영권 세습도 없습니다. 일본도 재벌 원조 국가이지만, 전쟁 뒤 맥아더사령부가 재벌을 해체했습니다. 지금은 전문경영인이 자리를 잡았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에선 이런 진화 과정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4대 재벌개혁에 집중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10대 재벌을 지정하고 그 가운데 4대 재벌만 관리하면 나머지 기업들은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사실 30대 재벌은 1위 재벌의 100분의 1 규모도 되지 않으니 구별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재벌개혁에 앞장설 것이라고 발언하신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경제력이 소수에 집중돼 있으니까 그 집중된 힘을 바탕으로 약자들 위에서 군림하니 약자는 계속 쪼그라들어 양극화가 생기는 겁니다. 그 힘의 남용을 막아야 하는 거지요.”



    ‘국민 무관심 일깨워야’

    -재벌개혁의 실천 수단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문어발식 확장, 힘의 집중을 방지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출자총액제한제도입니다. 지주회사 규제나 지배구조 개선도 남용을 방지하고, 황제 경영을 없애는 수단이지요. 힘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에도 이미 잘 정리돼 있습니다.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노동자이사제 등은 부수적인 방법들이지요.”

    -과거 정권들이 모두 재벌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정치인들의 의지 부족, 재벌들의 저항, 국민의 무관심 때문에 재벌개혁이 안 됐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이거 필요합니다, 당장 협조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를 계기로 국가가 새로워지는 거니까요.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혜택이 돌아갑니다. 고용도 늘고, 국가 경제에 혁신도 일어나게 됩니다.”

    최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산업조직론(공정거래·반독점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 이상 재벌개혁을 외쳤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설립 때부터 재벌개혁 문제를 제기했고,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지난 3월엔 재벌문제 해법을 담은 ‘경영자 혁명’(미래를 소유한 사람들)을 펴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이제 잘한 대통령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지 않으면 비참해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매우 긴장해서 잘해야 해요. 개인적으로 볼 때 문 대통령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알고 지내면 편한 사람입니다. 가난도 겪어봤고, 피란민의 아들로서 설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름대로 철학이 있는 분이니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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