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황교안의 집권 5개월 & 차기 행보

“‘황교안 시절 더 살기 좋았다’는 여론 나올 것” “서울시장 되면 바로 대권 도전”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7-05-18 15: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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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개월 경제 실적 A+”
    • “‘대통령-장관 소통’ 역사상 최고”
    • “작은 청와대 효과 입증”
    • “튼튼한 한미동맹, 평안한 나라”
    • “황교안과 문재인 비교될 것”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체제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이의 공백기를 메운 ‘과도정부’ 성격을 띤다. 황교안은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016년 12월 9일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5월 10일까지 5개월 동안 대통령권한을 대행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나라의 통치 권력으로 존재한 황교안 체제가 어떠한 성격의 정부였는지, 대통령대행 권좌에서 물러난 황교안은 어떠한 진로를 모색하는지 알아봤다.

    황 전 대행의 측근 A씨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국민들이 황교안과 문재인을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황교안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는 여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A씨와의 대화다.(※ 인터뷰에선 ‘황교안 대행’으로 호칭됐다.)

    -초유의 조기 대선이라 정부의 선거 중립과 선거 관리가 중요했는데.   

    “황교안 대행이 당적도 없지만 선거를 아주 잘 관리했다. ‘공무원의 정치 중립’이 늘 하는 소리 같지만, 정부 쪽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면 큰 사달이 난다. 황 대행은 예방 차원에서 공무원이 SNS에 글을 올리는 것까지 사실상 못하게 했다. 특정 후보를 편드는 듯한 정책발표도 안 했다. 3월 27일, 4월 17일 장관 회의를 열어 ‘가짜뉴스’를 단속했다.”



    黃에겐 ‘동맹’, 文에겐 ‘FT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도 황 대행에겐 ‘큰일’이었을 것 같다. ‘대미외교 전문가 회의’는 왜 열었나?
    “그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했는데, 전직 외교장관들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듣는 자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충격적인 발언을 하도 해놓아서. 하여튼 ‘미국 리스크’가 컸다.”

    -트럼프와 황 대행 간 통화는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트럼프와 세 번 통화했는데, 모두 트럼프 쪽에서 요청이 왔다. 보통 하루 전 통화 시간을 잡고 의제도 조율했다. 정상 간 통화 외에 실무선에서 수시로 미국과 접촉했다.”



    -전화 통화 내용이 주로 ‘한미동맹 재확인’인데, 뻔한 내용 아닌가?
    “뻔한 건데, 우리나라로선 트럼프라는 신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한미동맹에 관한 확답을 받는 게 중요했다. 황 대행 체제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장관, 국무장관, 부통령을 한 달에 한 번꼴로 돌아가며 한국에 보내 동맹관계를 지속적으로 재확인해줬다. 우리는 트럼프가 한국에 이렇게 성의를 다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 북한도 도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황 대행 체제 동안 우리 국민은 ‘한미동맹이 튼튼하고 나라가 평안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대선 판도가 문재인의 승리로 굳어지면서 트럼프는 사드배치 비용을 요구하는 등 한국에 대해 태도를 냉랭하게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교 전문가 B씨는 “반미 성향 문재인과의 협상용으로 트럼프가 미리 포석을 깐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의 첫 통화에서 트럼프가 꺼낸 첫 화두는 ‘한미동맹’이 아닌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B씨는 “한국의 통치 권력이 친미주의자인 황교안일 땐 한미 정상외교가 물 흐르듯 잘 진행됐지만, 문재인일 땐 자주 삐걱댈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황 대행과의 통화에서 ‘100%’라는 표현을 썼다. 나중에 트럼프가 ‘100%’라는 말을 아주 자주 쓴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100%라고 말하는 걸 TV에서도 몇 번 봤다.      
    “황 대행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환담하면서 트럼프의 100%를 화제로 꺼냈다. 펜스 부통령이 ‘내 귀에 그냥 생생히 들리는 것 같다’면서 활짝 웃었다. 한미 정부 간 관계가 더없이 부드럽고 좋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황 대행은 어떻게 대응했나?
    “황 대행이 펜스 부통령에게 ‘미국과 합의한 사드 때문에 한국이 지금 중국에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이 책임지고 중국을 말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펜스 부통령이 ‘오늘 당장 그렇게 하겠다’면서 언론 발표문에 이 내용을 포함시켰다. 미국 의회도 한국에 보복하지 말라고 중국 정부를 성토했다.”


    수출 잘되고, 청년고용 늘고

    여러 경제 전문가는 황교안 체제의 경제 실적에 대해 주저 없이 “A+”라고 말한다. 황교안의 대행 취임 전날(2016년 12월 8일)과 대행 마지막 날(2017년 5월 8일) 동안 코스피는 2031에서 2292로 261(12.8%)포인트 급등했다. 수출은 2016년 12월부터 늘어 4월 수출액(510억 달러)은 역대 2위에 올랐다. 서비스생산(2월)과 소매판매(2월)도 증가했다. 1분기(1~4월) 성장률은 예상치보다 높은 0.9%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1131.4원(2016년 12월 8일)~1158.5원(2017년 5월 8일)으로 안정세를 지켰다. 국가신용등급(무디스, S&P 등)도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많은 사람의 관심사인 고용에서도, 3월 취업자 증가폭은 2015년 12월 이래 15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었다. 청년(15~29세)과 50대 실업률도 낮아졌다. 총리실 공직자 C씨는 황 대행 시절 경제가 좋았던 이유에 대해 “황 대행이 실물경제와 금융을 구분해 권한을 명확히 주는 등 관리를 잘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지표가 좋았는데.
    “무엇보다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0.9%로 나왔다. 한국은행도 높게 평가한다. 지난해 하반기 경제 때문에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니까. 내수, 수출, 투자 다 안 좋았다. 이걸 황 대행이 돌려놓은 것이다.”

    -황 대행에게 비결이 있었나.

    “나도 ‘이분이 검사 출신이라 경제를 모를 텐데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황 대행은 대통령권한을 넘겨받자마자 경제사령탑을 안정시켰다.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경제부총리로 내정되어,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 내정자가 공존하는 형국이었다. 경제부처가 우왕좌왕했다. 황 대행은 지난해 12월 12일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에서 ‘경제 현안은 유일호 경제팀이 하던 대로 챙기고 금융·외환시장은 임종룡 위원장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딱 정리했다. 이어 유일호 경제팀과 회의를 자주 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1월 과학기술인 신년 인사에서 한 참석자는 “우리 경제가 사면초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황 전 대행은 “사면초가가 아니라 사방에 길이 있다”고 답했다. 황 전 대행은 ‘사방의 길’로 △해외 진출, △창업, △규제개혁, △과학기술·ICT 활성화를 제시했다.  

    해외 진출과 관련해, 총 사업비 4조 원이 넘는 터키 차나칼레 현수교 수주전에서 일본 정부는 장관을 터키에 보내 자국 업체를 밀었다. 황 전 대행은 국토부로 하여금 한국-터키 업체 컨소시엄을 총력 지원하도록 했고, 마침내 이 사업을 수주했다. C씨와의 대화다.

    -황 대행으로선 ‘사방의 길’을 제시했는데 성과가 없으면 머쓱한 상황이었겠다.

    “우리 업체가 터키 사업을 수주하자 황 대행이 무척 좋아했다. 창업과 관련해서도, 황 대행이 장관회의에서 ‘상금액수를 늘리고 순차적으로 탈락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 방식의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붐을 일으키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반응이 좋아 상반기에만 50회의 창업경진대회가 열린다. 규제개혁의 경우, 규제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의 해결 비율이 예전엔 8%였는데, 황교안 체제 이후 40%로 높아졌다. 황 대행은 규제 개혁 목적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전국 현장을 돌았다.”



    “오늘까지는 안 됩니까?”

    -AI(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이 큰 문제였는데.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대응이 좀 느슨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14일부터 황 대행은 민방위복을 입고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화상회의를 통해 전국 상황을 점검했다.”

    -황 대행이 챙기면서 달라졌나?

    “농림장관이 회의를 진행할 때 전국 16개 시·도의 부지사·부시장은 건성으로 답했다. 황 대행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부지사·부시장이 ‘내일까지 살처분 완료하겠다’고 보고하면 황 대행이 ‘오늘까지 할 여건은 안 됩니까?’라고 채근해 당일에 끝내도록 했다. 농림부의 방역 방향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황 대행은 민간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회의까지 열었다. 이런 노력이 효과를 내면서 AI가 진정됐다.

    살처분에 투입된 인력이 AI에 감염되면 국가적 재난이 된다. 질병관리본부는 살처분에 동원된 인력의 이름과 연락처를 보고해달라고 각 시·도에 요청했지만, 시·도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황 대행이 주재한 회의에서 질병관리본부 측은 시·도별 보고 실적을 ‘○○도 12%’ 식으로 공개 발표해버렸다. 황 대행은 식은땀을 흘리는 시·도에 ‘오늘까지 다 보고해달라’고 지시했고, 당일 완료됐다. 황 대행은 AI를 진정시킨 뒤 개선점들을 모아 AI 매뉴얼을 만들었다.”

    정부 부처의 고위인사 D씨는 “황교안 체제에서 ‘대통령과 장관들 간의 소통’이 역사상 최고로 잘 이뤄졌다. 또한 ‘작은 청와대’가 국정에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장관들과 소통을 잘 못했다고 하는데 황 대행은 어떠했나?
    “박 전 대통령 직무가 정지돼 청와대 역할이 위축됐다. 황 대행은 청와대 수석들을 거치지 않고 장관들과 직접 자주 대화하면서 국정을 운영했는데, 이게 큰 효과를 냈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많아야 한 달에 두 번 국무회의를 했다. 회의 형식도 대통령이 불러주는 내용을 장관들이 받아 적는 데 그쳤다.

    반면, 황 대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외교, 경제, 혹은 사회 현안에 대해 관계 장관들과 회의를 열었다. 황 대행과 장관 예닐곱 명이 모여 특정 현안을 두고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황 대행과 장관들은 기탄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종 현안에 대해 최적화된 결론을 신속하게 도출했다. 또한 장관들은 인력과 예산을 운용할 수 있으므로 행정적 실천으로 바로 이어졌다.”


    “콘티 없이 그냥 가시죠?”

    -청와대 기능이 정지되니 정부가 일을 더 잘하게 됐다?
    “몇몇 공무원도 놀랐다. ‘작은 청와대’가 국민에게 더 이익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통치자가 섬처럼 고립된 청와대 집무실에서 나와 장관들과 같은 건물에 상주하면서 수시로 만나 협의하니, 국가적 난제가 술술 풀렸다. 황 대행이 장관들과 잘 소통하고 핵심을 잘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려서 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공직자가 ‘황 대행 시절에 진짜 일 많이 했다’고 말한다.”

    황 대행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전에 질문 내용을 받지 않은 채 직문직답으로 진행했다. 보통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들로부터 질문 내용을 미리 전달받아 답변을  준비한다. 총리실 관계자 E씨는 “황 대행은 대통령이 언론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잘 보여줬다”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을 이어갔다.

    “직문직답 회견은, 달변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엄두를 잘 내지 못한,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시도한 방식이었다. 황 대행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데다 문맥이나 수위에 적합한 어휘를 잘 선택해 청취자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기자간담회와 관련해, 밑에서 ‘콘티(사전각본) 없이 그냥 가시죠?’라고 건의했고 황 대행은 ‘괜찮을까?’라고 했다. 밑에서 ‘괜찮습니다’라고 하자 황 대행은 그대로 따랐다. 황 대행은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잘 대답했다. 여러 매체가 이 직문직답을 호평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의 불통’ ‘정치인의 막말’에 질렸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말을 품위 있게 잘하는 대통령, 국민이 궁금해하는 점을 잘 말해주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황 대행이 그 모델을 보여줬다.”

    이번 대선 때 ‘황교안 총리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시침을 떼다 갑자기 사드를 배치해 중국의 더 큰 보복을 초래했다’는 논란이 나왔다. 이에 대해 E씨는 “황 총리는 시 주석에게 시침을 떼지 않았으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했다. 사드 배치는 황 총리가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황 대행이 롯데월드타워를 찾은 건….

    “중국의 보복으로 고통을 겪는 롯데그룹에 미안하기도 하고. 롯데를 격려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다만, 신동빈 회장을 만나지 않는 형식으로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때 황 대행은 박 전 대통령과 소통했나.
    “공식적으론 안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의 파면 후에 만났는지 통화했는지 모르겠다. 인사했겠지. 황 대행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주변에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다.”



    “포연 걷히고 나니”

    -대선 당시 황 대행은 높은 여론 지지율을 얻었으나 한참 뒤 불출마를 밝혔다.
    “황 대행은 2016년 12월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고 여겼다. 사람들이 자꾸 묻는 것에 대해 황 대행은 사석에서 ‘이미 이야기했는데 뭘 또 하나? 질문 나올 때마다 이야기해서야 되겠느냐?’라고 가볍게 말하더라. 지지율이 오른 뒤로는 부처 통솔에 유리한 점이 있어 그냥 놔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타이밍에서 어떤 형식으로 불출마를 확정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기자간담회 형식은 배제됐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자유한국당이 황 대행에게 대선 출마를 비공개로 압박해왔다. 황 대행은 출마 요청을 받자마자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고, 하루 이틀쯤 뜸을 들였다가 3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선거일을 공고하기 직전 불출마의사를 밝힌 것이다.”

    -탄핵과 대선 과정에서 황 대행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이 거셌다.   
    “한 매체는 AI 때 ‘미국 달걀을 들여오지 말라’고 만날 썼다. 황 대행이 미국 달걀을 수입하자 ‘늦게 들여왔다’고 비난하더라. 일부 매체들과 정당들은 황 대행에 대해 포를 막 쏘아 댔다. 이제 포연이 걷히고 나니 어떠한가. 황 대행 시절에 나라가 정말 안정되어 있었고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황 대행은 ‘추가경정예산’도 안 썼다. 중국의 사드 보복도 잘 버텨 극복했다.”
     
    -황 대행이 특별검사 수사기한 연장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많았다.
    “그는 평소 ‘특별’에 대해 회의적이다. ‘재판도 특별법원에서 해야 하나?’라고 여긴다. ‘특검이 수사할 만큼 했다’고 그는 판단했다.”


    ‘보수의 심벌’이 들러리 못 서

    -특검이 종료된 후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황 대행은 행정부의 일원인 검찰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나?
    “검사에게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정부가 완전히 박살 나는 상황이었다. 황 대행은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사실을 당일 아침 법무부 차관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

    -황 대행의 하루 일과는 어떠했나?
    “그는 ‘새벽형 인간’이다. 보통 3~4시에 기상해 보고서를 읽으면서 그 위에 연필로 메모한다. 공관에서 아침을 들고 8시 20분까지 총리실에 출근해 30분부터 회의를 주재한다. 선행을 한 시민들, 천안함 유족들을 공관에 초청해 점심을 함께 들기도 했다. 다른 일정이 없으면 총리실의 국무조정실장, 비서실장, 국무1차장, 국무2차장, 국정운영실장, 경제조정실장, 사회조정실장, 정무실장, 공보실장 등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한다. 국회 등 외부에서 일 보고 돌아오다 식사시간에 걸릴 땐 적당한 한식당에 들르기도 한다. 그는 웬만하면 정시에 퇴근하며 집무실에선 야근을 안 하는 편이다. 각 정당에 만찬을 하자고 적극 요청했다. 늦은 밤까지 총리공관에서 중요한 보고는 계속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의 인사 청문 절차가 진행 중이므로, 문 대통령이 황 전 대행(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장관 후보들을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황 전 대행은 5월 10일 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좋겠다”면서 총리직 사의를 표명했고, 다음 날 수리됐다.

    황 전 대행은 정책 성향이 다른 정권의 장관들을 제청해주는 것이 원칙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들러리 서는 모양새’ ‘소신을 굽히고 협력하는 모양새’로 여겼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황 전 대행과 지근거리의 F씨는 황 전 대행의 사의가 장관 제청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황교안은 이미 ‘보수의 심벌(symbol)’이 됐다. 그런 그가 문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장관들을 제청하면서 진보와 같이 가는 건 좋지 않다. 유사한 전례도 있다.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기각에 따라 직무에 복귀하자 고건 국무총리는 사표를 냈다. 노 대통령이 ‘정 그러시면 퇴임 전에 장관 제청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고건 총리는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시장 출마 듣고 있을 것”

    법조인 출신인 황 전 대행은 법무법인 참여나 변호사 개업엔 뜻이 없다고 한다. F씨는 “황 전 대행이 정계 진출 의사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61)가 젊으니까. 그가 내색은 않지만, 내년 6월 서울시장선거 출마 이야기를 아마 듣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장을 하다 바로 2022년 대선에 출마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개헌 시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F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해놓은 게 없다. 지지율이 보여주듯이 평가는 이미 나왔다”고 말했다.

    황교안은 ‘반듯하고 품격 있는 보수’ ‘국정을 잘 운영하는 보수’ ‘문재인의 대안이 되는 보수’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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