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현지 취재

‘안철수 딸 호화유학’ 의혹, 근거 희박 “흑색선전과 가짜뉴스가 대선 표심 왜곡”

  • 재필|더팩트 기자 jpchoi@tf.co.kr

    입력2017-05-18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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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화주택, 고액소득, 이중국적…사실무근 가능성 높아
    • “안철수 이미지 훼손 의도일 수도”

    제19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이번 대선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의혹이 난무한 선거였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흑색선전과 가짜뉴스가 더 확산된 측면도 있었다. 유력 대선후보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지만 ‘검증’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네거티브 공방은 대통령선거의 정당성을 떨어뜨린다. 각 대선주자 진영이 제기한 의혹들 중 일부는 사실 확인이 소홀했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딸 안설희 씨의 ‘호화 유학생활’ 의혹이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공론화한 ‘안설희 의혹’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미국 현지 취재로 팩트체크를 해봤다.

    대선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인 5월 1일 한 매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딸 안설희 씨가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머물면서 월세 1500만 원이 넘는 최고급 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설희 씨가 어머니 김미경 교수와 함께 안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설 때였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공론화

    이 보도를 포함해 대선 때 나온 안설희 관련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장기간 미국의 고액 월세 고급 아파트에서 거주했다는 의혹, 뉴욕의 고급 콘도미니엄에 거주하면서 고소득을 올렸다는 의혹, 시민권자·영주권자·취업비자 소지자 등에게 주어지는 미국 사회보장번호를 취득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설희 씨의 씀씀이와 재산, 이중국적에 관한 문제 제기인 셈이다.



    기자가 미국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결과, 이 의혹들은 사실 확인에 소홀했던 것으로 보였다. 고액 월세 아파트 거주 의혹을 제기한 한 매체는 “설희 씨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 동안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D아파트에 거주했는데, 이 아파트의 월세는 2500∼4800달러(한화 280만∼540만 원)다. 이 기간 설희 씨의 연평균 소득은 4만1860달러(한화 약 4800만 원)이었다. 많게는 소득의 90% 이상을 임차료로 지불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모 대선 후보 측 인사도 안철수 후보가 딸의 재산공개를 거부하자 “안철수 후보님, 따님의 재산공개 후 14년도부터의 고지 거부는 무언가 재산상의 감추고 싶은 변화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라고 의혹에 불을 지폈다.

    앞서 안철수 후보 측은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딸의 재산공개를 거부해오다 대선후보 재산공개 자료를 통해 설희 씨의 재산이 약 1억3688만 원이라고 밝혔다.

    이런 의혹에 대해 안 후보 측은 “설희 씨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 재학 중이던 2010년 11월∼2012년 6월까지 D아파트에 거주했다”고 인정하면서도 “2012년 8월경부터 스탠퍼드대 기숙사로 옮겼다”고 반박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일까. 기자의 현지 취재로는, 안 후보 측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설희 씨는 실제로 2012년 8월부터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가 아닌 스탠퍼드대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에서 거주해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의혹의 근거인 미국 통계청(US Census Bureau) 데이터베이스를 탐색한 결과, 설희 씨는 2012년 8월부터 2016년까지 필라델피아에 거주한 사실이 나타나지 않았다.


    스탠퍼드대 재학생들의 증언

    기자는 스탠퍼드대에 재학 중인 현지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이 학생들은 “설희 씨가 2012년 여름 스탠퍼드 대학으로부터 화학과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고 이후 5년째 이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해왔다”고 증언했다. 설희 씨와 함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라는 한 학생은 “설희 씨는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후 줄곧 기숙사에서 살았다. 미국 서부에 있는 대학의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동부에 있는 도시(필라델피아)에 산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기자는 스탠퍼드 대학 내에서 설희 씨가 거주했다는 건물도 확인했다. ‘에스컨디도 빌리지 스튜디오(Escondido Village Studios)’라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였다. 스튜디오는 한국의 원룸 형태다. 이러한 현지 취재 결과에 따르면, 설희 씨는 의혹과 달리 2012년 8월부턴 기숙사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

    스탠퍼드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설희 씨의 스튜디오는 침실 겸 거실이 함께 있고, 부엌과 욕실이 있는 구조다. 월세는 1500달러(약 170만 원) 정도다. 설희 씨의 경우 1년에 1만8000달러(약 2040만 원)가량을 집값으로 지불하는 셈이다. 용돈과 식대 등의 생활비를 보태면 1년에 3만 달러는 지출될 듯했다. 결국 설희 씨의 연봉이 4만 달러가량이니, 아껴 쓰면 얼마간 저금을 할 수도 있을 듯했다. 안철수 후보 측이 밝힌 설희 씨의 재산 형성 과정은 설득력이 있었다.

    의혹을 제기한 측은 미국 통계청의 데이터베이스에 설희 씨의 필라델피아 D아파트 주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설희 씨가 필라델피아에 거주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는 무리한 추정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임시 거주자라도 통계청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통계청은 10년 단위로 인구조사를 진행하고, 5년 단위로 지역사회조사를 진행한다. 이 조사 대상 주소지는 무작위로 선정되며, 거주자는 법에 의해 설문 조사에 응해야 한다.

    설희 씨는 D아파트에 살고 있었을 때 미국 통계청 조사에 참여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설희 씨가 이사를 떠나 D아파트에 다른 사람이 거주하게 됐다 해도, 이 거주자가 통계청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한동안 미국 통계청 데이터베이스에는 설희 씨가 D아파트 거주자로 돼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통계청 데이터베이스만을 근거로 설희 씨가 D아파트에 거주해왔다고 추정하는 것은 객관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의혹을 제기한 측은 안설희 씨가 부동산을 통해 소득을 올렸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했다. “설희 씨는 지난 18대 대선 한 달 전인 2012년 11월 뉴욕 시의 86만7898달러(한화 약 9억8000만 원)짜리 P콘도미니엄에 거주하면서 12만2353달러(한화 약 1억4000만 원)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 측은 “뉴욕시에 위치한 P콘도미니엄은 전혀 알지 못한다. 안설희 씨는 뉴욕에 있는 콘도를 소유하거나 월세로 거주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기자가 뉴욕 현지 부동산업계를 취재한 결과, P콘도의 소유주는 법인이었다. 부동산업자인 제프 그레이 씨는 “해당 콘도의 디드(Deed·한국의 등기부등본)를 확인해보니 P콘도의 소유주는 부동산 회사다. 이들은 주로 해당 콘도로 임대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 기록대로라면 안설희 씨는 P콘도를 소유하지 않았고 더욱이 P콘도의 매매나 임대를 통해 소득을 올렸다는 근거가 없다.



    “후보 가족 의혹만으로도…”

    또한, 의혹을 제기한 측은 안설희 씨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취업비자 소지자 등에게 주어지는 미국의 사회보장번호를 취득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안씨에게 이중국적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비쳤다. 

    취재 결과, 안설희 씨가 미국의 사회보장번호를 갖고 있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미국의 관련 제도를 확인한 결과, 미국 정부는 미국시민권자나 미국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사회보장번호를 부여한다. 따라서 사회보장번호가 있다고 해서 이중국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 유학생은 기자에게 “유학비자를 갖고 있으면 사회보장번호를 받을 수 있다. 안설희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했으니 사회보장번호를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안설희 호화 유학’ 의혹에 대해 “흑색선전과 가짜뉴스가 대선 표심을 왜곡한 대표적 사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안철수 후보 가족의 일탈행위 의혹만으로도 안 후보 본인의 좋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공격받는 후보가 대응을 안 하면 의혹이 사실로 비치고 대응을 해도 진흙탕 공방에 빠진다. 의혹을 제기한 측은 이런 효과를 의도했을 수 있다. 무책임한 의혹 제기는 근절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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