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과거에도 지금도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 한국에선 ‘명백한 진리’다. 그러나 중국에선 다르다.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평범한 중국인들도 사적 대화에서는 안색도 바꾸지 않은 채 당연하다는 듯 “한국과 베트남이 지금은 독립국가이나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중국의 최고 지도자까지 이런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4월 7일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 간의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두 정상은 북핵 문제를 비롯한 국제적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5일 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내용이므로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아무리 막말을 많이 하는 기인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런 거짓말을 할 순 없다는 게 상식이다. 중국 외교부도 부인하지 않았다. 4월 19일 시진핑의 발언 내용이 한국에 알려져 한국 내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자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인들의 생각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시 주석의 말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준 격이다.
한국인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시진핑의 이런 한반도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 한반도 남쪽 일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처럼, 1950년대 이후부터 중국인들이 꾸준히 공유해온 그릇된 인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린(吉林)성 옌볜(延邊)대학의 K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답변
“중국은 1949년 새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치욕의 역사를 경험했다. 동아시아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이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국수주의, 대국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봐야 했다. 이후 이런 역사 인식이 정부 주도로 자리 잡아 요즘은 요지부동의 진리가 됐다.”
이런 인식이 보편화한 데는 전통적 화이관(華夷觀)도 작용했다. 중화사상으로도 일컬어지는 이 이념은 춘추전국시대에 싹터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 유행했다. 한족(漢族)의 중화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관점이다. 주변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 오랑캐로 칭했다. 이후 중국인들은 개념을 바꿔 오랑캐도 하나의 중화민족으로 융화시켜 중화민족 역사를 만든다. 이에 따라 동이의 한 지파로 여겨지는 한민족의 역사도 중국에 편입시킨다.
사실 이런 ‘하나의 중화민족’ 인식을 가지지 않고 한족만의 역사를 강조하면 중국사는 반 토막이 난다. 많은 영웅이 중국사 밖으로 나간다. 한국계인 경우만 봐도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음악가 정율성, 지금도 중국의 영화 황제로 불리는 불멸의 스타 김염(金焰), 록 가수 최건(55)은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된다. 최건의 아버지인 고 최웅제 씨는 생전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조선족 1세대만 해도 민족의식이 강했다. 누구 하나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무국적으로 있던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일부는 귀국할 때를 기다리다 한중 수교도 못 보고 생을 마감했다. 나도 70 평생 중국이 아닌 한국을 조국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 아들은 어릴 때부터 달랐다. 학교에서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늘 자신은 한국과 별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모국어인 한국어도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자간에 충돌이 생겼다. 어떨 때는 심하게 싸웠다. 지금도 나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철저히 동화됐다고 생각한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중국은 조선의 조공을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듯하다. 그러나 봉건시대 조공은 국제무역의 한 방식이었다. 영국도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청나라와의 조공을 위해 노력했다. 만약 중국이 자국에 조공하는 국가를 중국의 속국으로 생각한다면, 영국도 중국의 일부가 된다.
한사군이나 기자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학설도 중국은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 주장에 활용한다. ‘한반도 일부가 과거 우리 땅이었으니 지금도 그렇다’는 논리다. 이럴 경우 한국도 고구려가 지배한 만주 일대에 대해 한국의 일부였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 중국은 일사양용(一史兩用·한 역사를 두 나라가 공유하는 것)이라는 억지 학설로 피해간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허구의 논리다. “고구려사가 한국사이면서 중국 지방 정권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은 일사양용의 연장선상에 있다.
역사 교육 & 스피치 라이터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망언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역사적 아픔과 무관하지 않다. 5000년 중국 역사 중 한족이 세운 왕조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한(漢), 수(隋), 당(唐), 송(宋), 명(明) 정도에 불과하다. 원(元)과 청(淸)도 이민족의 나라였다. 이 시기 한족은 노예처럼 지배를 당했다.
이렇게 구분하면 한족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고 중국사는 엉망진창이 된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이렇게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콤플렉스를 숨긴 채 중국 대륙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도 중국에 속하고 신라, 백제, 고려, 조선도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 들어오게 된다.
그렇더라도 평소 진지한 스타일의 시 주석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석상에서 한국을 무시하는 막말을 한 것은 다소 의외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시진핑을 포함한 중국 당정 최고 지도자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국수주의 역사 교육을 받아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한 중국 전문가는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 발언은 그가 어릴 때부터 학습받아 그의 머릿속에 신념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단지 말로 내뱉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베이징 시민 친란(秦藍) 씨는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중국의 역사 교육은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관할 영토 내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삼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불변”이라면서 “시 주석의 발언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중앙 정치국의 성원이 된 이후인 2007년부터 당정 최고 지도자들의 의무이자 권리인 스터디 그룹에 꾸준히 참석해 역사관을 확고히 했다. 이런 점도 그의 발언이 괜한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실제로 그는 총서기에 등극해 정권을 장악하기 전인 2012년 가을까지 5년 동안 월 1회 정도 정치국 집단학습을 통해 중국사 등 사회과학적 소양을 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정도면 그가 한국은 예부터 중국과는 완전히 별개의 독립적인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시진핑의 옆에는 국수주의 학자 출신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연설원고 작성 전문가)인 리수루이(李書磊·53)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가 버티고 있다. 중앙당교 교수로 오랜 기간 일한 리수루이가 시진핑의 발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중국 정법대학 한반도연구센터의 김우진 연구원은 “리 부서기는 시 주석이 2007년 중앙당교 교장으로 일할 때부터 시 주석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리 부서기는 시 주석의 연설문이나 기고문 작성을 총괄 지휘해왔다”고 설명했다.
“최고위급이 친필로 약속”
종합적으로 보면,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당정 최고 지도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그건 우리 문제이기도 해! 우리의 일부였으니까”라고 부르짖는 셈이다.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 발언과 관련해, 한 중국 전문가는 “시진핑 주석에겐 한반도에 대한 영토 야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이 전문가는 “‘중국이 북한의 큰형님 내지 후견인 노릇을 하겠다, 북한이 무너지면 북한 영토에 제2의 한사군(漢四郡)을 세우겠다, 여차하면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속국으로 삼겠다’는 시 주석의 속내가 보인다”고 했다.
이런 속내는 북한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중국 당국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은 국제 무대에선 북한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북한에 영향력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북한에 적극적인 제재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뒤로는 원유를 충분히 제공한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한 뒤에는 원유 공급을 줄여 잠시 북한의 애간장을 태웠는지 모른다. 그러다 중국은 북한에 또 당근을 줄 것이다. 이렇게 중국은 ‘밀당’을 하며 북한을 중국의 속국처럼 길들이려 한다. 중국 베이징의 권력자들이 모여 사는 중난하이(中南海) 사정에 정통한 중국인 기업인 A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 세계에서 중국보다 북한에 더 가까운 나라는 없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북·중 간 대화 채널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상당히 열려 있다. 평양과 베이징의 현지 공관이 상대국 정부와 서로 잘 소통한다. 비선도 있다. 이들은 과거 북한 정권의 수뇌부와 밀접했던 혁명 1세대의 자제, 손자, 손녀들이다. 최근 중국은 북한에 ‘핵과 경제를 병진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확고한 뜻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인데 ‘핵을 선택할 경우 정권이 위험해진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반면, 중국 최고 지도부 한 명이 북한에 ‘최상의 선택을 할 경우 경제 지원을 대대적으로 해 주겠다’는 약속을 친필로 했다고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1년에 최소 30억〜50억 달러의 유·무상 차관이 제공될 것으로 개인적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작심하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방법도 별로 복잡하지 않다. 베이징의 서방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연간 50만t으로 추산되는 원유를 북한에 공급하는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것으로 북한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북한에 군사적 압박을 가할 능력도 차고 넘친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4월 중국 당국은 압록강 일대 북·중 국경 지대에 인민해방군 20만 명을 순식간에 증파했다. 심지어 중국은 ‘최악의 경우 북한 정권 교체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려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할 수 있는 한 북한 붕괴 카드는 꺼내들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영원한 완충국(Buffer state)으로 존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중국은 둥다먼(東大門)이라고 불리는 자국의 앞마당을 북한이 대신 지켜주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시 주석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일 수 있다.
베이징에 떠도는 3대 시나리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 핵이 무력으로 제거되는 것이다. 북한 핵 시설에 국한된 미국의 선제 타격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에 따른 것이다. 중국 당국은 미군의 제한된 북한 폭격을 용인하겠다고 관영 환추(環球)시보를 통해 밝혔다. 동시에 중국은 한미 지상군이 휴전선을 돌파해 지상전에 나서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첫 번째 시나리오의 요지는 이렇다.
“모일 모시 미군 전투기와 함정에서 발사된 미사일들이 북한 내 주요 핵 시설을 일제히 파괴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우려해 한국에 대해 전혀 보복공격을 하지 못하거나 제한적으로만 보복공격을 한다. 미군과 한국군은 핵 시설 이외 북한의 다른 곳을 공격하지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에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은 채 미군과 북한군의 자제를 촉구한다. 북한 핵은 제거되고 전면전 위험은 사라진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실각이다. 북한 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미국의 참수작전을 가정한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때도 북한에 친미정권이 탄생하지만 않으면 반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으로선 자신의 완충국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완충국을 김정은이 통치하든 다른 사람이 통치하든 그 자체는 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면 중국은 반발할 것이다. 중국은 압록강변으로 이동시킨 20만 병력에 1·2급 전시 대비령을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다. 중국해군 동해함대도 최근 서해에서 고강도 훈련을 벌였다. 또한, 중국군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인 둥펑(東風)-16 대대를 최근 급히 창설해 북·중 국경지대에 배치했다. 중국은 여차하면 군대를 동원해 북한의 친미정권을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북핵 당사국들이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초 한 인터뷰에서 “적절한 상황이 되면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시진핑은 트럼프-김정은 양자 회담을 반대하지 않지만 기존의 6자회담을 더 원한다.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4월 한국과 일본에 파견해 이런 속내를 드러냈다.
시 주석은 북핵 제거가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중국이 중재자 노릇을 하면서 관련국들 간 협상으로 끌고 가는 것을 중국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로 여긴다.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 주석의 발언은 ‘미국과의 일전을 불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에 대한, 나아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관철하겠다’는 그의 호전성을 보여준다. 시 주석은 이제 남의 나라 영토 주권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막말을 한다. 새로운 한국 정권은 중국에 더 당당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