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스스로 지키는 건강

잘 때는 가랑가랑 걸으면 쌕쌕

미세먼지에 비명, 만성 폐쇄성 폐질환

  • 박정웅|가천의대 길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입력2017-05-19 10: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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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대 남자 3명에 1명꼴로 생기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 특히 흡연자 중 상당수가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진단이 늦어져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각할 때에는 폐 기능이 저하되고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다.

    56세 P씨는 최근 고교 동창들과 산행을 하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험한 산도 아니고 서울 근교였음에도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서 일행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결국 산 밑 식당으로 돌아온 P씨는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운동 부족과 두툼한 뱃살 탓을 하며 일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며칠 후 P씨가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찾아왔다. P씨는 목재 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며 매년 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했다. 전립선 비대증 외에 약간의 고혈압이 있지만 별다른 치료는 받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진을 계속하니 아침마다 가래를 뱉고, 기침도 잦아서 종종 가래약(진해제)을 복용했다고 했다. 밤에는 코골이와 함께 가랑가랑 숨소리를 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환자의 폐기능 검사 결과, 폐활량이 동년배와 비교해 62%에 불과했다. 호흡기내과 진료실에서 보는 흔한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였던 것이다.




    가래, 기침 우습게 알다 병 키워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란 유해한 입자나 가스의 지속적인 흡입에 의해 폐에 비정상적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서 이로 인해 점차 폐에서 내쉬는 공기의 흐름에 제한이 생기는 질환이다. 이러한 현상은 담배나 미세먼지 등에 노출될수록 점점 더 진행돼 결국 폐 기능이 떨어지고 호흡곤란이 온다.


    P씨는 과거에 금연도 했지만 하루 평균 한 갑씩 30년 흡연력이 있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80~90%가 흡연으로 인해 발병한다. 하지만 흡연자라고 모두 이 질환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흡연자의 20% 정도만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개체요인과 환경요인의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으로 보인다. 개체요인으로는 유전적 요인, 기도 과민반응, 폐성장 등이 있고 환경요인으로는 흡연 외에도 직업성 분진과 화학물질, 실내·외 대기오염, 미세먼지 등이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발생 원인이라는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다. 하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있고, 증상의 악화 인자로서 입원율을 높이며,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담배를 피워서 가래가 생기고 기침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를 게을리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흡연자 중 상당수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이미 환자임에도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2015년 국민건강영양평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유병률은 40세 이상 성인남자에서 21.6%(여자 5.8%), 60대 남자로 좁히면 34.1%(여자 11.4%)로 60대 남자 3명 중 1명꼴로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 70대 이상 남자에서는 두 명 중 1명꼴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병의원에서 진단을 받은 사람은 3%에 불과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 2015년 기준 건겅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를 연령대로 보면 40대 9.1%, 50대 16.5%, 60대 21.3%, 70세 이상이 35.5%였다. 비교적 젊은 40대에서는 관심 밖의 질환이지만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증상이 드러나 병원을 찾는 사람이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흡연 위험인자 외에 고령화 자체가 만성 폐질환의 위험인자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 시대에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만성질환인 것이다. 저개발국가에서는 높은 흡연율과 바이오메스(목재, 짚 등 생물연료) 연료 사용, 선진국에서는 고령화로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문턱에 선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질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 원인 중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4위였는데 2020년 경에는 더욱 높아져 3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조기 사망에 따른 손실 수명연수(Years of Life Lost, YLL)에 장애 생활연수(Years Lived with Disability, YLD)를 합해서 산출되는 ‘장애보정생존연수’도 계속 증가 추세다.




    양 적고 끈끈한 가래는 신호탄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대부분 40대 이후에 발병하며 아주 초기에는 증상이 경미해서 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된 증상은 만성적인 기침이며, 처음에는 간헐적이다가 점점 지속적이 된다. 만성적인 가래가 주 증상일 수도 있으며 이때 가래는 양이 적고 끈끈하며 아침에 기침과 함께 배출된다. 더 진행되면 운동 시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이러한 증상은 일단 발병하면 점점 진행된다. 흔히 쌕쌕거리는 천명음이 동반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기관지 천식과 혼동하기 쉽고 고령 환자에게는 감별이 쉽지 않다.


    보통 환자들은 호흡곤란이 나타나면 힘이 덜 드는 생활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언덕길은 피해 평지로 다닌다. 이런 생활이 증상의 심각성을 가려 호흡곤란이 없다고 대답하는 환자가 많다. 앞서 소개한 P씨도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고 언덕길 등은 피해 다녔기 때문에 자신의 질환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초기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에서 이미 호흡곤란, 운동능력 감소 등이 나타난다. 질환이 진행되면 외출이 어렵고, 세수나 심지어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 힘들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 시작한다. 이렇듯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증상은 경과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진단은 어렵지 않다.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 즉, 40세 이상이며 흡연, 직업성 분진과 화학물질 등 위험인자에 노출된 적이 있고, 호흡곤란·기침·가래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는 폐기능 검사를 통해 숨길이 좁아져 폐쇄되는 소견이 나타나면 이 질환으로 진단한다. 다만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숨길은 아주 작은 세기관지 쪽이 주로 좁아지기 때문에 일상적인 방사선검사로 진단되지는 않는다. 감별 진단과 증상 평가를 위해 추가적으로 흉부 방사선검사 및 흉부전산화 단층촬영(CT), 동맥혈 가스검사, 동맥의 산소 포화도, 증상 설문조사, 6분 보행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호흡곤란 평가는 동년배와 비교해 같은 속도로 따라서 걸으면 좋은 편으로 평가하며, 운동능력은 6분 보행검사에서 걷는 거리를 측정해 대략 350m 이상을 걸으면 운동능력이 좋다고 평가한다.




    금연은 치료의 시작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치료는 대증요법과 기관지확장요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증요법으로는 우선 금연을 해야 한다. 금연은 질환의 진행을 늦출 뿐 아니라 치료제에 대한 반응도 개선하기 때문이다.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일을 한다면 환경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평소 호흡기 감염(감기)을 예방하고 감염되면 심하지 않더라도 안정을 취해 악화를 막아야 한다.


    증상에 따라서는 항생제, 기관지확장흡입제(교감신경항진제, 항콜린제, 부신피질 호르몬제), 거담제 등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다양한 기구에 담긴 흡입제가 출시되고 있는데,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도움으로 정확한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오랫동안 잘못된 흡입제를 사용하다 오히려 증상이 악화된 환자들을 진료실에서 볼 수 있다.


    매년 독감 예방접종을 하도록 하고, 스케줄에 따라 폐렴구균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 이 밖에 비약물요법으로 호흡재활치료, 영양 상담, 정신건강 상담, 가정용 산소발생기, 가정용 인공호흡기 등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정용 산소발생기는 물론, 가정용 인공호흡기도 보험 적용이 된다. 산소치료나 인공호흡기 등은 절대 중독되는 치료가 아니다. 눈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호흡 기능이 떨어져 숨이 차면 산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산소 수치가 떨어진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에게 산소만 공급해도 생존이 연장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드물지만 적응증이 되면 수술 치료를 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말 그대로 만성질환이므로 환자가 질환을 잘 이해하고 때에 따라 스스로 판단해 약제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미 국내 관련 학회에서도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증상 변화 시 자가 대처 요령에 대해 지침을 만들었으며 환자교육에 임하고 있다.




    손상된 폐 기능 회복 안 돼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비교적 중년 이후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이 질환과 관련된 질환뿐 아니라 노인질환으로 다른 질환이 동반될 수 있다. 이 경우 질환에 따라 약제끼리 상반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꼭 전문가와 상의해 합당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자주 동반되는 질환으로는 심혈관질환, 당뇨병, 대사증후군, 골다공증, 우울증, 폐암 등이 있다.


    특히, 심혈관질환은 담배라는 위험인자를 공유하고 있고, 실제로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사망 원인 중 심혈관질환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진단되면 반드시 심혈관질환 검진을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폐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나 흡연을 하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는 폐 기능이 더욱 급격히 떨어진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폐 기능이 상당히 손실되기 전까지 불편한 증상이 거의 없어 초기 진단이 어렵다는 데 있다. 왠지 감기 같지는 않은데 기침, 가래가 끊이지 않는다면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급속히 악화되는 것은 물론, 어떠한 약물치료도 폐 기능을 호전시킬 수가 없다. 이후 중증이 되면 24시간 지속적인 산소요법이 필요할 수 있다.


    이렇듯 한번 손상된 폐 기능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 질환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금연을 하면 폐 기능을 정상화할 수는 없지만 폐 기능 약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그러므로 폐 기능이 더 약화되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금연하는 것이 유리하다. 기존 연구 결과들을 봐도 비교적 초기의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가 질환이 진행된 환자보다 치료 시 폐 기능 약화를 더 많이 억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완치할 순 없다. 하지만 흡입약제, 악화 예방, 운동 등으로 꾸준히 관리하면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며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 증상이 지속되고 있을 때 그저 담배를 피우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숨이 찬 게 아니라 질병임을 빨리 깨닫고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폐 건강을 지켜야 사람들과 어울리며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박 정 웅
    ● 1964년 충남 부여 출생
    ● 한림대 의대 학사, 석사, 박사
    ● 미국 피츠버그대학 호흡기내과 Postdoctoral Associate
    ● 현재 가천의대 길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부총무
    ● 법제윤리위원, 서울지방법원 전문심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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