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문재인 파워 엘리트 101

‘반미운동’ 1세대 안보 전략가

박선원 前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 엄상현 기자

    입력2017-05-23 1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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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63년 전남 나주
    학력 |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국 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
    경력 | 연세대 교수,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
    저서 | ‘한반도 평화보고서’(2010), ‘하드파워를 키워라’(2012) 외

    박선원 전 대통령비서관은 친문(친문재인)진영의 안보 전략가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곽 정무보좌팀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을 맡으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전략기획실 행정관, NSC 전략기획국장을 맡아 2005년 9월 ‘북핵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협상 능력을 발휘했다.

    덕분에 이듬해인 2006년 초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 전략비서관에 임명됐다. 그해 9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하기도 했다. 회담 당시 박 비서관은 과거 전력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배후 인물로 지목돼 구속된 ‘반미운동’ 1세대다. 이처럼 ‘반미 선봉’에 섰던 그가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 운 이야깃거리로 회자됐다.



    그의 반미 정서는 연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 재직 시절까지 이어졌다. 6·25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 학살사건 으로 거론되는 ‘노근리 사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 기하면서 2002년 초 ‘노근리 사건의 진상과 교훈’이라는 공동 논문집을 냈다.

    그런 그가 노무현 정부 임기 말까지 공직에 있었다는 것 은 한미관계보다 남북관계에 중점을 둔 노 전 대통령의 국 정 철학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 실무 자로서 안보정책과 비전을 실현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 구원으로 3년 가까이 ‘자의반 타의반’ 객지생활을 한 박 전 비서관은 2012년 총선 경선에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후 친문진영에서 외교안보 자문을 해왔고, 이번 대선 캠 프에서 안보상황단 부단장을 맡았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 인 정권이 노무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상당 부분 전승해 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박 전 비서관의 역할에 귀추가 주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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