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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페미니스트들 “이용수는 ‘할머니’ 아닌 피해생존자·여성인권운동가” [사바나]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청년 페미니스트들 “이용수는 ‘할머니’ 아닌 피해생존자·여성인권운동가” [사바나]

  • ● 29년 몸담은 정의연에 대한 쓴소리 두고 전국서 갑론을박
    ● 치매설과 배후설에 이어 “가미카제 전사자 곁으로 가라”
    ● 정의당 조혜민 “젊은 페미니스트 운동의 중심은 나”
    ● 기본소득당 신민주 “단순히 밥 안 사줘서 불만 품은 것 아냐”
    ● 여성의당 이지원 “소녀상에 민족주의 담는 방식 온전한가”
‘사바나’는 ‘회를 꾸는,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뉴스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뉴스1]

29년 만에 관계가 바뀌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92) 할머니는 5월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동안 함께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갔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할머니는 오랜 시간 몸담은 단체를 비판하면서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다만 방향이 바뀌었다. 한일 양국 간 대립적 구도 대신 미래지향적 관계 맺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소수 명망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을 ‘여성인권운동가’로 명명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번 기자회견은 여성인권운동 전반에 여러 고민거리를 던졌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대의’와 ‘명망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흘러갔으며 두 축을 중심으로 진영이 형성됐다. 진영을 위협하는 개인은 쳐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도 흔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산증인인 이용수 운동가가 졸지에 ‘토착왜구’로 불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고민에 답하는 것은 후세대의 몫이다. 청년 페미니스트 정치인에게 이번 ‘이용수 선언’이 한국 여성인권운동에 던진 물음에 대해 들었다. 조혜민(30) 정의당 대변인과 신민주(26)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 이지원(27) 여성의당 공동대표는 21대 총선에서 청년 페미니스트 후보로 얼굴을 알렸다. 모두 인권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인지 세 사람 공히 ‘이용수 운동가’라는 표현을 썼다.


“밥 안 사줬다는 게 정말 사소한가”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조혜민 제공]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조혜민 제공]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여성인권운동단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사무국장을 지냈다. 대변인 임명 전에는 정의당 여성본부장을 맡았다. 조 대변인은 최근의 여성운동에서 중요한 가치로 ‘나’를 꼽았다. 그의 말이다. 

“기존의 운동에서 헌신과 대의가 중요했다면 지금의 청년 페미니스트 운동의 중심에는 ‘나’라는 사람이 있다. 즉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운동의 지속가능성도 도모할 수 있다. 과거에는 특정 단체나 조직 중심으로 운동이 지속됐다면 요즘은 직업을 따로 두면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운동가는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은 오랜 시간 시민사회를 따라다녔다. 이용수 할머니 역시 2차 기자회견장에서 29년간을 회상하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자다 일어나서도 펑펑 울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대의를 위해 부지런히 뛰었지만 멈춰 선 채 지난날을 돌아보니 ‘서러움’으로 점철됐다. 이 할머니는 본인이 “30년 동안 재주를 넘었다”고 한탄했다. 

신민주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은 기자회견을 보면서 이용수 할머니가 꺼낸 밥 한 끼의 기억에 마음이 쓰였다. 이용수 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 당시 과거 농구경기장에서 모금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이 할머니는 모금이 끝난 뒤 “배가 고픈데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해도 ‘돈 없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해당 발언 이후 일각에서는 “밥 안 사줬다고 앙심 품었다”며 이 할머니에게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신 상임위원장은 “단순히 밥 안 사줬다는 사실에 불평하는 의미에 그치는 문제 제기가 아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신 상임위원장의 말이다.


“다른 말 했다고 일본 사주 받았다니”

신민주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 [신민주 제공]

신민주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 [신민주 제공]

“피해 당사자는 운동가인 동시에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다. 그럼에도 운동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일상의 욕구에 대해서는 사소하게 치부되거나 나중에 충족해도 되는 문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운동가가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탓에 저임금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용수 운동가의 당시 발언도 이러한 고충에 대한 문제 제기와 맞닿아 보인다.” 

이 할머니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운동을 포기하진 않았다. 2차 기자회견 당시 “데모(위안부 운동)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니다”라고 뜻을 밝혔다. 새로운 운동 방식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그는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도록 하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 배상을 해야 한다. 일본은 천년만년 가도 반드시 (사죄) 해야 한다. 양국이 친하게 지내도록 하면서 역사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총선 때 더불어시민당이 윤미향 당시 비례대표 후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에 ‘21대 총선은 한일전이다!’라는 구호를 내건 것과 대비된다. 

민족과 반일의 가치는 그간 위안부 운동의 주요 동력이었다. 이 운동가가 위안부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윤미향 의원과 각을 세우자 많은 누리꾼이 악성 댓글을 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부 누리꾼은 이 할머니 관련 기사에 “위안부 할머니가 위안부 부정하는 세력과 결탁하다니…” “영혼결혼식한 일본군 가미카제 전사자 곁으로 가라” 등의 악성 댓글을 달며 비방했다. 개중에는 이 운동가를 ‘토착왜구’라 부르는 누리꾼도 있었다. 

신 상임위원장은 “위안부 운동이 사회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이유 중 에는 해당 문제를 전시 성폭력 문제로 보는 대신 ‘어떻게 민족의 여자를 타 민족이 침탈할 수 있나’라는 시각으로 바라본 영향이 있었다”며 “민족 개념 안에서 여성주의적 맥락이 고려되지 않아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도 “소녀상에 민족주의를 담아내는 방식이 과연 온전하다 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공동대표의 말이다. 

“소녀상이라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사용될 때 피해 당사자의 발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족성이 훼손되거나 침탈당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 때문에 이용수 운동가의 발언 역시 운동의 방향성을 성찰하자는 애초의 문제 제기에서 비껴나간 채 ‘일본의 사주를 받았다’거나 혹은 ‘특정 정당이 배후에 있다’는 식으로 오도됐다.”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여성의당 제공]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여성의당 제공]

이번 사태가 한일관계를 넘어선 질문거리를 던진다는 주장도 있었다. 조혜민 대변인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듣고 “반복적으로 역사교육을 강조하시는 부분이라든지 이후의 사람들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보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한일관계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 후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총체적인 고민거리를 던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가 던진 고민거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여성인권운동가’가 아닌 ‘할머니’로 호명된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2차 기자회견문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로 소개했다. 

“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카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 

스스로를 위안부 피해자로 소개하며 시작된 글은 여성인권운동가의 이름으로 마무리됐다. 운동가로서 살아온 삶의 궤적을 그대로 나타낸 글이다. 이들 청년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기자회견 이후에도 여러 매스컴이나 정치인들이 여전히 여성인권운동가를 ‘할머니’로 부르는 행태를 비판한다. 메신저에 집중하며 메시지를 공격하는 양상도 이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지원 공동대표의 지적이다. 

“이용수 운동가는 ‘할머니’가 아니라 ‘여성인권운동가’로 명명돼야 한다. 할머니로 호명될 경우 운동가로서 갖는 발언의 신뢰성까지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가를 할머니로 호명하다 보니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그의 발언을 두고 기억력 이상이나 배후설을 거론하는 문제로도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발언이 짚고자 했던 사태의 본질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2차 기자회견 다음 날인 5월 26일 방송인 김어준(52) 씨는 tbs 라디오에서 “기자회견문을 읽어 보면 이 할머니가 쓴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냄새가 난다. 누군가 왜곡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김 씨는 다음 날에도 “기자회견문을 혼자 정리했다고 하는데, 7~8명이 협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 이후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김어준 씨를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조혜민 대변인은 “위안부 생존자들도 다양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한 채 ‘네가 이런 말을 한 점은 잘못됐다’는 식으로 따지는 것은 2차 가해일 수 있다. 앞으로의 운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꼬집었다. 

신민주 상임위원장은 “남성 인권운동가들에게는 아버지나 오빠,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친근감을 주려는 목적으로 할머니라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을 쓰다 보면 당사자를 한 명의 운동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신 상임위원장은 이 할머니가 고령이라는 점을 이유로 제기된 배후설에 대해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것 아니냐 혹은 100% 자발적으로 했다더라 둥의 방식으로 논쟁하는 것은 의미 없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남에게 설득당하고 반대로 남을 설득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치권, 반성 없이 비판만”

이번 사태를 단순히 이용수 운동가와 윤미향 의원 두 사람 간 다툼으로 국한해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혜민 대변인은 정치권과 국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다. 

“피해 생존자가 운동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바로 ‘운동이 제 몫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어지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운동 과정에서 아쉬운 지점이 발생했다면 단체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국가와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시민단체가 나섰다는 지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들 역시 반성의 대상이다.” 

조 대변인은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에 어떻게든 말을 보태 기사 제목에 자신을 노출하려 하는 것에만 관심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민주 상임위원장은 “이번 사태 자체가 이 운동가, 윤 의원 중 누가 옳으냐의 문제로만 이야기돼 아쉽다. 단순히 정치적 입장으로 접근하지 말고 피해자 중심의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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