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논란

‘초고층 헛기침’ 한번에 2억 뜀박질… ‘메트로폴리스 강남’ 프로젝트, 불패 신화 재연할까

  •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5-03-23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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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장 건설 논란은 해프닝
    • 초고층 재건축은 ‘메트로폴리스 강남’ 건설 계획의 핵심
    • 진도 7 지진 땐 강남 아파트 61% 붕괴… 내진설계 필수
    • 법적으론 ‘이상 무’, 건축심의에선 층수제한 불 보듯
    • “소나기는 피하자”… ‘봄날’ 기다리는 압구정 주민들
    • 초고층 백지화에도 오른 집값은 요지부동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논란
    ‘대한민국 대표 구(區)’인 서울 강남구. 그중에서도 압구정동은 ‘강남 중 강남’으로 통한다. 비록 국내 최고가 아파트 밀집지로서의 명성을 2002년 10월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에 내주긴 했지만, 여전히 부촌(富村)의 대명사로 손색없는 현대아파트단지가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1976∼79년 준공된 이 아파트단지의 주민 중엔 유력인사도 적지 않다. 수소문해본 결과 전직 장·차관급 인사만도 16명에 달했다.

    그런데 최근 이 아파트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2월6일 강남구(구청장 권문용)가 노후한 현대아파트단지를 60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

    논란의 대상은 압구정 아파트지구 2주구(住區·주거단위구역). 동호대교 남단과 성수대교 남단 사이 한강변이 이곳으로, 이른바 ‘구현대’라 불리는 현대아파트 1∼7차가 자리잡고 있다. 논란의 시발은 5∼15층 높이 41개 동(棟) 3130가구가 모여 사는 이 아파트단지를 27∼64층 높이 20개 동의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려는 사업계획안을 해당 주민들이 서울시와 강남구에 제출한 뒤 강남구가 이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하면서부터다.

    논란은 부동산 투기 과열을 우려한 정부가 ‘2·17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급히 내놓은 직후 비교적 잠잠해졌다. 하지만 초고층 아파트 건축은 언젠간 다시 논란거리로 떠오를 사안. 좁고 한정된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선 초고층 아파트 건축이란 대안이 매력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강남구의 경우 2010년까지 가용 토지의 97.8%가 개발이 끝나기 때문에 신규 토지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따라서 재건축을 제외하곤 개발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초고층 재건축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 해답을 알기 위해선 언론에 상세히 보도되지 않은 이번 논란의 내막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7∼64층 20개 동으로 재건축 추진

    현대아파트 재건축 문제가 ‘호화 아파트’ 논란으로 불거진 표면적 이유는 재건축될 초고층 단지 안에 미니 골프장까지 만들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현대아파트’란 이름이 갖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골프장 건설이 비(非)강남 주민에게 더욱 격심한 위화감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 것.

    그러나 이는 와전된 측면이 강하다. 가칭 ‘현대아파트 주택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2004년 12월15일 서울시가 압구정 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변경(안)을 공람공고하자 “공람공고안에 따라 재건축할 경우, 건폐율을 낮춰 풍부한 녹지를 확보하려는 강남구의 도시계획 방침과 맞지 않는다”며 지난 1월초 서울시에 이의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때 제출한 재건축사업 계획안의 조감도에 3홀짜리 골프연습장이 그려져 있었던 것.

    이와 관련, 현대아파트 주택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의 신영세 위원장은 “4년 전부터 재건축을 준비해오는 과정에서 2003년에 재건축 현상설계 공모를 해 한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맡겼는데, 당시 조감도에 골프장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서울시에 이의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그 조감도를 그대로 내는 바람에 불필요한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며 “골프장 건설 논란이 보도된 후 상당수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뭣하러 쓸데없는 행동을 해 논란을 부채질하느냐’ ‘아파트 안에 무슨 골프장이 필요하냐’ ‘골프장 관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등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현상설계를 맡았던 (주)무영종합건축사사무소(서울 역삼동)의 한 관계자도 “현상설계 당시 일부 주민이 웰빙 차원에서 골프연습장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비친 데다 조감도를 멋있게 꾸며보려 골프장 그림을 그려 넣은 것에 불과한데, 마치 기정사실이 된 것처럼 전해져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어쨌든 논란이 확산되자 현대아파트 주택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2월초 변경안 이의신청 때 다시 제출한 조감도에서는 골프장 부분을 뺐다.

    서울시의 공람공고안에 따라 재건축을 추진하면 현대아파트단지는 최고 층수 40층의 30개 동 규모로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동수가 많아 현대 1∼5차의 북측 일부 등 50%의 가구에서만 한강 조망이 가능하고, 여유공간이 적어져 단지 내 공간을 공원화하기 어려운 단점이 생긴다.

    반면 이의신청 때 변경한 계획안에 따르면, 전체 동수는 20개 동으로 한강변에 가장 인접한 1개 동만 64층이고, 나머지 19개 동은 27∼50층 높이다. 대지면적은 6만7521평, 건축면적은 5893평, 연면적 합계는 24만8297평이며, 건폐율(전체 대지면적에서 건축면적이 차지하는 비율)과 용적률(전체 대지면적에서 건물 각 층의 면적을 합한 연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8.73%와 262.60%다. 결국 논란의 본질은 해프닝에 그친 ‘골프장 건설’이 아니라 ‘초고층’에 있는 셈이다.

    이번 초고층 재건축 논란은 강남구가 추진해온 이른바 ‘메트로폴리스 강남’ 건설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 이 계획은 강남구가 2004년에 연세대 ‘21세기 건설연구실’에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물인 ‘강남구 재건축 마스터플랜’ 보고서에 의거한 것이다.

    ‘미래도시 강남’의 비전을 제시하는 이 계획의 핵심은 ‘친환경 탑상형(塔狀型·일명 타워형) 아파트단지 건설’에 있다. 토지 개발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른 강남구의 개발을 평면적 방식이 아닌 입체적 방식으로 적극 유도한다는 취지다. 일률적인 층수제한으로 한강변에 판상형(板狀型)으로 빽빽이 늘어서 조망권과 일조권이 확보되지 않는 노후 아파트촌을, 용적률은 유지하되 건폐율을 10% 이하로 최소화한 슬림형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재건축해 동간 거리를 늘리고, 단지 내 지상공간의 90% 이상을 녹지화함으로써 바람 통로와 탁 트인 시각 축을 확보한 쾌적한 주거시설로 변모시켜 도시경쟁력을 높이려는 구상으로 요약된다.

    강남구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비롯해 향후 잇따를 관내의 다른 재건축사업에서도 초고층 건축을 추진할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2005년 2월 현재 강남구엔 181개 아파트단지 1181개 동에 9만2429가구가 입주해 있으며, 이는 전체 주택 수의 63.72%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준공한 지 20년 이상 지나 앞으로 5년 안에 재건축을 해야 하는 단지는 37.5%인 57개 단지 3만5000여 가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31개 단지는 내년까지 재건축계획을 세워야 하고, 대치동 쌍용아파트 등 15개 단지는 2007년, 개포동 경남아파트 등 11개 단지는 2010년에 각각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 강남구는 14층짜리 28개 동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해서도 10개 동 이내 30층 이상으로 재건축하는 초고층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들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국내에 내진(耐震) 설계기준이 도입된 1986년 이전에 지어져 대다수가 지진에 취약한 내구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강남구엔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동부지역 단층이 통과하는 데다 최대 규모의 지진 발생 위험도가 가장 높은 남한산성 지역과도 인접해 있어 대규모 지진 발생의 가능성이 높다. 강남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진 중 최대의 가상 지진은 남한산성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 지진이 발생하면 강남구는 진도 7에 해당하는 진재(震災)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대외적으로 공표된 바 없지만, 강남구가 2003년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에 용역 의뢰한 ‘비(非)내진설계된 철근콘크리트 아파트 건축물의 지진피해 발생 추정검토’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강남구 내 72개 아파트단지 875개 동 6만365가구를 대상으로 지진 발생시 피해를 추정해본 결과 진도 6의 강진이 발생하면 이중 45%가 붕괴되고, 진도 7일 경우엔 61%가 붕괴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삼성동 ‘아이파크’ 벤치마킹

    사실 강남구는 초고층 아파트 건립을 실현하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를 해왔다. 강남구는 2004년 12월 (사)대한건축학회에 ‘친환경 타워형 아파트 활성화 방안 및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의 합리적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을 맡겨 최근 그 결과보고서가 나온 바 있다.

    이에 앞서 권문용 강남구청장이 대표회장으로 있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도 2004년 11월24일 대한건축학회와 공동으로 ‘친환경 탑상형 고층아파트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한 도시건축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또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개발을 명분으로 도시계획 권한을 자치구로 대폭 이양해줄 것을 정부에 공식 건의한 바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초고층 재건축도 바로 이 ‘메트로폴리스 강남’ 계획에 연동(連動)한 것이다. 강남구가 건립을 추진하는 친환경 탑상형 아파트의 모델은 2004년 5월 입주한 삼성동 ‘아이파크’다. 상업지역에 지어져 용적률(795%)과 건폐율(39%)이 일반주거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주상복합아파트인 도곡동 타워팰리스(최고 69층)와 달리, 순수 주거전용 아파트단지인 아이파크는 23~46층 3개 동 449가구로 이뤄져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옛 한국중공업 사옥부지에 세운 이 아파트의 용적률은 296%에 이르지만, 슬림형이어서 건폐율은 최대 허용치인 40%의 4분의 1인 9.17%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 대지면적 1만여 평 중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1000평도 안 된다. 남는 공간의 대부분은 공원과 녹지로 꾸몄다. 주차장도 100% 지하에 설치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초고층 재건축 계획안도 이 ‘아이파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강남구청 정종학 주택과장은 “판상형 아파트를 탑상형으로 전환하면 아파트 동간 거리가 30~50m에서 100m 이상으로 확대돼 한강의 경관을 살리고, 뒷동에서도 일조권과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주차공간을 지하에 마련하는 대신 지상공간을 녹지화하고, 실개천과 산책로를 갖춘 소공원으로 꾸미면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 도시미관까지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고층 아파트의 자연환기 문제는 실내 온도와 습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극복할 수 있으며, 타워팰리스와 아이파크의 사례에서 보듯 고층 거주를 부담스러워하는 심리도 크게 줄어 초고층 재건축을 규제할 명분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친환경적인 초고층 아파트단지는 강남 집값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도 강남구는 “대규모 녹지가 조성되고 주거환경이 개선되면 집값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므로 집값 상승을 걱정해 친환경 도시계획을 포기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강남구의 많은 재건축 아파트단지 가운데서도 현대아파트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일반주거지역에서의 초고층 재건축이라는 점 때문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용적률이 높고 좀처럼 층수를 제한받지 않는 상업지역(최대 용적률 800%)에 들어선 아파트다. 따라서 만일 현대아파트가 초고층으로 재건축된다면 일반주거지역 대상 초고층 재건축의 선례가 될 전망이다.

    초고층 건축 찬반양론 팽팽

    초고층 건축에 대한 전문가들의 찬반양론은 팽팽하다. 이들마다 그 개념 정의가 분분하긴 하지만, 통상 40층 이상을 초고층 아파트로 친다.

    먼저 찬성론. 단국대 김영하 교수(도시건축·대한건축학회 부회장)의 말이다.

    “서울에 성냥갑처럼 늘어서 마치 병풍을 친 듯한 15층짜리 판상형 아파트의 장벽이 생긴 건 화재 발생시 소방사다리(길이 40m)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가 15층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프링클러, 피난층 등 방재시스템만 사전에 치밀히 강구하면 안전엔 큰 문제가 없다. 한국처럼 땅덩이가 좁은 홍콩·싱가포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지가가 비싼 일본도 도쿄 록본기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주거 건물을 48층 높이로 올렸다.

    도시 인프라가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완비된 강남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 때 초고층 건축을 활성화해 타 지역과 차별화하는 것이 도시계획상 바람직하다고 본다.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때 같은 단지라도 동별로 높낮이를 다르게 해서 그중 1개 동은 서울의 상징인 여의도 63빌딩같이 랜드마크 성격을 지닌 초고층 건물로 지으면 리듬감이 살아 있는 스카이라인도 조성할 수 있다. 건축기술 또한 충분하다. 언제까지 초고층 건축을 부정적으로 보며 규제만 할 것인가. 규제가 능사인 시대는 지났다.”

    초고층 건축이야말로 20% 이상의 높은 건폐율로 지상면적 밀도를 높여 녹지 및 조경공간의 부족을 낳고,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으로 경관이 폐쇄적이며, 일조·채광·통풍이 좋지 않아 열섬현상을 가속화하는 기존 판상형 아파트의 문제점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란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초고층 아파트가 거주민만을 위한 폐쇄공간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건국대 건축대학원 김세용 교수(건축 및 도시설계·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도시문화위원장)는 “단지 건축물이 높다고 해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높이보다는 시민 누구나 24시간 발붙일 수 있는 공공성이 우선돼야 한다. 주거용 초고층 아파트와 파리의 에펠탑을 동격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단지 안에 커뮤니티 공간과 녹지의 비율을 최대한 높이겠다지만, 초고층 아파트에선 이동을 엘리베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녹지에 대한 접근이 번거로워 주민들이 몸으로 누릴 수 있는 녹지라기보다는 단순한 경관용 녹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런 지적에 대해 “아파트 담장을 설치하지 않으면 개방된 녹지를 거주민 이외의 시민과 공유할 수 있으며, 담장 미설치에 따른 보안문제는 CCTV 설치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사실 이 같은 찬반양론의 대치는 대체로 도시계획분야 전문가들과 건축분야 전문가들 간의 상반된 견해차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초고층 건축에 찬성하는 도시계획 전문가도 없지는 않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 교수(도시계획)는 “개인적 선호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있을 수 있지만, 초고층 건축은 이미 시대적·세계적 추세다. 압구정동뿐 아니라 앞으로 강남 전역에서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욕구가 생겨날 것”이라며 “차제에 한강변처럼 단독주택이 밀집하지 않은 지역에선 층수제한을 완전히 철폐하는 등 강남의 지역별 특성에 따른 도시계획 차원의 종합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용도지역에 따라 제한하고 있는 마당에 층수까지 제한하는 것은 이중 규제이며, 집값 상승을 우려해 초고층 재건축 문제를 마냥 미뤄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김광현 교수(건축학) 역시 “초고층 재건축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환경친화적이라는 측면에선 동의한다”며 “정부가 초고층 재건축 문제를 지나치게 부동산 투기와 결부시켜 편협하게 볼 게 아니라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논란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초고층으로 재건축할 경우의 조감도.

    도시계획 권한을 쥔 서울시의 의견도 강남구에 우호적인 편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2월25일 건축위원회를 열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5차 아파트의 재건축 층수를 최고 35층으로 허가해준 바 있다. 이는 사실 층수를 제한한 게 아니라 오히려 늘려준 것이다. 해당 주민들은 25∼28층 높이 6개 동(580가구)을 원했지만, 서울시는 건물 배치구조가 한강 전경을 가리는 형태이므로 시각 통로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며 5개 동으로 1개 동을 줄이는 대신 35층으로 층수를 늘려 심의에서 통과시킨 것.

    서울시 김효수 도시관리과장은 “층수제한은 건축심의 단계에서 결정될 문제이나 서울시는 기본적으로 층수를 과도하게 규제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경우 단지별로 토지 지분 등과 관련해 주민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초고층 재건축을 위한 합의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초고층 재건축은 과연 실익이 얼마나 있는 것일까.

    우선 층수를 늘리는 데 법적 하자는 없다. 구현대 1∼7차는 서울시의 도시계획조례상 종세분화(種細分化)에 따라 층수제한이 없고 용적률이 최대 250%까지 허용되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한다(5층 높이인 구현대 4차만 2종 일반주거지역).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고층 건축 등 난개발을 막기 위해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최고 높이를 15층으로 제한하고, 관련법 시행규칙에서 일반주거지역을 각각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제1∼3종으로 세분화하도록 했다. 서울시 조례는 이를 근거로 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4층 이하(용적률 150% 이하), 제2종 일반주거지역은 7층 또는 12층 이하(용적률 200% 이하)로 못박고 있다. 따라서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하는 현대아파트의 초고층 재건축을 전혀 불가능한 사업으로 단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걸림돌이 적지 않다.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지만, 그 동안 서울시의 건축심의 단계에서는 층수를 제한해왔다. 또한 서울시는 구현대 1∼7차를 포함한 압구정지구 전체를 고밀도 아파트지구로 지정해 용적률을 230%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재건축을 한다 해도 사실상 가구 수나 평형을 늘리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현행법상 정북 방향 일조권 규정이나 사선제한(斜線制限·도시의 일조, 채광, 통풍, 미관 확보를 위해 구역별로 건축물 높이를 규제하는 것) 규정 등으로 인해 층수를 높이기가 곤란한 측면도 있다.

    과도한 재건축비도 걸림돌 중 하나. 초고층 아파트는 일반적인 아파트 건축공법인 벽식 구조(특별히 굵은 치수의 기둥이나 보가 없이 바닥, 지붕, 벽 등의 면이 하중을 지지하거나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구조. 일명 상자형 구조) 대신 공간 배치와 설비 교체가 쉬운 라멘 구조(기둥과 보가 일체로 고정·접합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시공해야 한다.

    라멘 구조는 큰 치수의 기둥과 보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 수평 및 수직 부재들이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거나 전달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조 및 전기·배관 설비 등을 넣는 추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층과 층 사이 간격이 2.7∼2.8m인 일반 아파트와 달리 3m 정도로 커진다(통상 일반 아파트는 벽식 구조로, 상가건물은 라멘 구조로 지어진다). 자재가 많이 들어가므로 건축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 최소 30%는 비용이 더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의견 엇갈리는 주민들

    더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밀도 아파트지구는 용적률을 제한받아 동일 평형에 동일한 용적률을 적용받게 되므로 건축비 상승에 대비할 때 재건축으로 창출되는 부가적인 경제가치가 그다지 크지 않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게다가 재건축하면서 늘어나는 용적률의 25%를 임대아파트로 짓도록 의무화하는 개발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 압구정 아파트지구도 규제대상에 포함돼 사업성은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도 초고층 재건축이 시기상조라는 이견이 존재한다. 현대아파트 주택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신영세 위원장은 “오랫동안 이곳에 거주해온 50∼60대 노년층 주민 가운데는 고층을 선호하지 않고, 매도보다 보유를 선호해 이사하기 귀찮아하는 데다 집값이 뛰면 주택보유세 등 세금만 더 부과될 것이라며 재건축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더욱이 이번 논란 이후 재건축 추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췄는데 대충 35층 정도 높이로 재건축할 수는 없지 않냐”며 “전체 주민의 의견을 완전히 수렴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므로 좀더 기다렸다 정부의 규제가 느슨해지면 다시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면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겠다는 셈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재건축 이의신청 변경안에 대해선 빨라야 올해 말쯤 서울시의 건축심의가 이뤄지고 2007년이나 돼야 사업승인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한편 올해부터 시작되는 판교 개발에 따른 부동산 투기 조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설교통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압구정지구에서 초고층 재건축을 허용할 경우 파생될 문제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의 진원지로 지목받는 강남에 초고층 재건축을 허용하면 특혜 시비나 형평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건교부의 판단이다.

    건교부 한창섭 주거환경과장은 “현대아파트 주택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구청으로부터 인가도 받지 않은 임의단체다. 안전진단도 거치지 않고 재건축조합도 결정되지 않는 등 재건축 절차상 하자가 많은데도 마치 당장 현실화될 것처럼 강남구가 초고층 재건축계획을 발표한 것은 집값 상승을 의도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며 “값비싼 아파트를 더욱 고급화하기보다는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겠다는 게 정부 정책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층수제한과 관련해서도 그는 “건교부는 임대아파트 등 부동산 투기와 관련이 없는 2종 일반주거지역의 아파트단지 층수제한 철폐에 대해서만 검토중”이라 답했다.

    ‘초고층 애드벌룬’ 띄우기

    그렇다면 이번 논란의 결과물로 남은 건 무엇일까.

    부동산 정보회사 ‘부동산뱅크’의 ‘압구정동 아파트값 변동현황’에 따르면, 강남구가 초고층 재건축계획을 발표한 이후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평균매매가는 급등했다. 한강 조망이 가능한 구현대 1차 54평형의 경우 2월14일 11억원이던 매매가가 보름도 안 된 2월28일엔 12억5000만원으로 1억5000만원이나 올랐고, 13억7500만원이던 65평형은 무려 16억원으로 뛰었다. 단지별로 따져보면 구현대 1∼7차는 최소 5000만원에서 최고 2억5000만원까지 매매가가 상승했다(단 44평형인 현대 4차는 2500만원 하락). 더욱이 인근의 미성·신현대·한양 아파트까지 덩달아 매매가가 올랐다. 조사된 아파트 가격은 호가(呼價)와 실거래가의 중간 수준이라는 게 부동산뱅크측의 귀띔.

    부동산뱅크 양해근 실장은 “정부가 사실상 초고층 재건축 백지화나 다름없는 강력한 투기대책을 내놨으니 압구정동 집값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떨어져야 정상적인 시장구조라 할 수 있는데, 오른 가격이 그대로 굳어져버리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재건축을 해도 별 실익이 없음에도 서둘러 발표된 초고층 재건축계획이 결과적으로 매매가 급등의 호재(好材)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편법적인 집값 올리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월28일 조사된 매매가는 가장 최근인 3월9일 조사된 가격과 전혀 차이가 없는 상태다.

    3월3일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회’ 김진수 회장은 “기본적으론 초고층 아파트 건립에 찬성하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모든 재건축 아파트에서 초고층을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게 시민단체의 입장”이라며 “최소한 ‘구청장 잘 만나 초고층 재건축에 성공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초고층 재건축의 기준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정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민과 외환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부동산 지존(至尊)’의 자리를 지켜온 강남구의 ‘초고층 애드벌룬 띄우기’가 매매가 급등이란 ‘성과’를 거둔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찬반양론과 무관하게 계획 발표 자체가 부동산 가격 등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인 셈이다.

    당국의 강력한 규제 앞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압구정판(版) 바벨탑’의 장밋빛 꿈은 한낱 실바람에 그칠까, 열풍으로 번질까. 초고층 재건축의 향방은 좀더 시간이 흘러야 뚜렷해질 듯하다. 그럼에도 ‘초고층…’이란 단 한마디로 아파트값 상승을 견인해낸 ‘강남 불패(江南不敗)’ 신화의 재연에 씁쓰레함을 떨칠 수 없는 건 무슨 연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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