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조사 방식, “틀렸다.”
집단면역 추진, “안 된다.”
코로나19 종식, “멀었다.”
8월 중순 이후 수도권 유행 반영 안 된 결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9월 14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국내발생현황 및 항체 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재 방역당국은 보건소 및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진단, 추적, 치료 시스템을 가동해 코로나19 확산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단, 무증상 환자가 많은 코로나19 특성상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항체조사는 방역망 바깥에 존재하는 ‘깜깜이’ 확진자를 찾는 데 유용하다. 또 코로나19 항체 형성률 조사는 우리 사회의 코로나19 안전도를 가늠하는 척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항체를 가진 사람은 일정기간 코로나19에 다시 감염되지 않는다. 사회 곳곳에 항체 보유자가 있으면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느려진다.
문제는 이번 방대본 발표가 현재 국내 코로나19 상황을 확인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조사 대상 혈액 수집 기간이 6월 10일부터 8월 13일까지였다는 걸 가장 문제 삼는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한 건 8월 중순 이후다. 이 무렵부터 감염 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환자도 급증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는 관련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방대본에 따르면 9월 2~15일 사이 발생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2209명 가운데 552명(25%)의 감염경로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4월 방대본이 ‘감염경로 불분명’ 환자 비율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8, 9월 수도권 코로나 유행 이후 수집한 혈액을 바탕으로 항체 형성 여부를 조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우주 교수는 “방대본의 이번 발표 내용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19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방역대책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1440명 중 항체보유자가 한 명도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9월 7일 서울 중구 한 프랜차이즈 카페 내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로 실내 취식이 금지되자 테이블을 사용할 수 없게 막아뒀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그런데 이번에 방역당국이 발표한 항체가 조사는 144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이에 대해 “국내 코로나19 유병률에 비춰보면 1440명은 항체 보유자가 한 명도 안 나올 만한 크기의 표본이다. 그 결과를 보고 ‘우리나라에 코로나19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이번 조사는 국내 코로나19 항체 형성률 추정 자료로 쓰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혁민 연세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도 “표본 추출을 통한 항체가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려면 코로나19 유병률이 최소 5%는 돼야 한다”며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표본 크기를 수만 명 수준으로 키워도 코로나19 감염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방대본이 항체형성률 조사를 통해 국내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분석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연구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인구 대비 코로나19 환자 수가 많은 나라라면 모를까, 현재 한국에서는 방대본 방식의 항체 검사가 별 의미가 없다”며 “코로나19 집단 발생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항체 형성 여부를 조사해 유전자 검사(PCR) 결과와 비교하는 방식이 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의 얘기다.
“쿠팡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했을 때를 보자. 당시 방역당국은 관련자 전원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실시해 무증상 환자까지 발견, 격리, 치료했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일단 PCR 검사를 하고, 그로부터 4주쯤 지난 뒤 피검자 전원의 항체형성 여부까지 확인해보자는 얘기다. 그러면 한 집단이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때 PCR 검사에 잡히지 않는 확진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즉 코로나19를 앓고도 방역망에서 빠져나가는 사람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전체 국민 대비 매우 적은 수준이고, 그 결과 국내에 코로나19 항체를 가진 사람도 극소수라는 점이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해외 연구를 보면 코로나19 항체 보유자 수는 방역당국이 확인한 코로나19 확진자 수의 최소 10배에서 최대 50배 수준”이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국내 코로나19 항체 보유자는 최대로 계산해도 112만5000명(2만2500명*50), 전체 인구의 2%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사회 구성원의 60~70%, 즉 100명 가운데 60~70명 정도가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해야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게 바로 ‘집단면역’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체내에 인위적으로 항체를 생성시키는 코로나19 예방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계속 마스크 착용 및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