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랑하라, 오페라처럼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2/3

국민통합과 베리즈모

그러나 공업과 상업을 발전시킨 부유한 북부 도시들과 농경 중심의 낙후된 남부 간 차이는 심각했다. 또한 북부 출신 인사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남부 국민들은 당연히 상대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독립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심각한 문화적 이질감은 국민 통합에 걸림돌이었다. 이를 불식하고자 정부가 적극적으로 독려한 문화적인 교류 속에서 베리즈모(Verismo)가 꽃피우게 된다.

이렇게 프랑스의 자연주의 사상과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만초니의 영향을 받아 베리즈모 문학은 독자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탄생한다. 다만 현실참여적인 풍자를 담은 자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베리즈모는 예술 그 자체에 현실이 있고 생이 있으므로 예술에 어떠한 변형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어떠한 미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 그래서 진실이라는 의미의 베로(Vero)에서 파생된 베리즈모로 명명됐다. 베리즈모를 굳이 국역하자면 진실(眞實)주의인데, 사실(事實)주의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베리즈모는 30년 넘게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북부 이탈리아인들은 소설에 묘사된 배경과 인물을 통해 베일에 싸인 남부지방에 대한 흥미를 해소할 수 있었다. 둘째, 베리즈모 소설은 적은 분량의 단편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초창기 베리즈모류 책들은 대부분 주머니에 딱 들어가는 소책자였다. 마지막으로, 관념이나 생각을 독자에게 주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무겁고 어려운 소설과 이론들이 활개치고 판치는 이탈리아 문학계에 베리즈모 소설은 단번에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날, 우리 한반도에서도 이러한 공식으로 출판하면 대박이 날지 궁금하다.



베르가의 단편 ‘시골 기사도’

가장 주도적인 베리즈모 작가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원작자인 조반니 베르가다. 우리말로 ‘시골 기사도’라는 의미의 이 소설은 ‘꽃의 캠프’라는 소설집에 들어 있는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의 짧은 단편이다. 시칠리아의 한 마을에서 부활절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주인공 투리두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 약혼녀 로라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이미 부유한 마부 알피오와 결혼했다. 혼자 남은 그는 마을의 젊은 과부 산투자와 약혼한다. 그런데 여전히 투리두는 유부녀 로라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산 투자는 약혼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만 오히려 두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 산투자는 분노로 폭발한다. 산투자는 출장에서 돌아온 로라의 남편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린다.

알피오는 격분했지만 바로 응징하지 않고 격식대로 투리두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이에 투리두는 승낙의 의미로 알피오의 귀를 물면서 엄숙한 신청에 시칠리아 관례대로 화답한다. 카발레리아(기사도) 루스티카나(변방의, 촌스러운)다운 에피소드다. 그러니 의미를 따져서 보자면 ‘시골 기사도’보다는 ‘어수룩한 기사도’ 정도가 더 적당할 것 같다. 지나간 사랑에 얽매인 투리두가 알피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며 오페라는 막이 내린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구성이다. 주옥같은 선율, 격정과 서정을 강렬하게 대비시키는 애절하고도 극적인 음악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오페라 레퍼토리 중 하나다.

소설은 매우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비극적 내용을 서술하지만 공연시간 1시간이 조금 넘는 오페라는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예컨대 오페라에는 소설엔 없는 몇몇 감성적 장면이 있다. 오페라에서 죽음을 직감한 투리두는 결투를 되돌리고 싶어 꿈쩍도 안 하는 알피오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또한 투리두가 약혼녀 산투자를 걱정하며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페라 속 투리두에 대해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추천 영상(유튜브)■ 2009년 스위스 취리히극장 실황 공연 www.youtube.com/watch?v=5YoqvywgQKc
호세 쿠라(투리두)와 파올레타 마로쿠(산투자)가 주인공이지만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는 호세 쿠라가 압도적인 연기를 펼친다. 요즘 가장 활발한 젊은 오페라 지휘자 중 한 명인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란차니가 지휘했다.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오페라 영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www.youtube.com/watch?v=arqnoxvtzZ4
프 랑코 체피렐리 감독이 1981년에 제작한 오페라 영화다. 엘레나 오브라초바(산투자), 플라시도 도밍고(투리두), 레나토 부르손(알피오), 페도라 바르비에리(루치아) 등 시대를 아우르는 스타 멤버가 총출동했고, 스칼라극장 오케스트라와 조르주 프레트르의 지휘로 당대 최고의 음악을 선사한다. 배신당한 여성으로서의 수치심과 질투, 공포, 절망 등의 내면심리가 음악과 어우러지며 감동이 배가된다. 또한 시칠리아의 자연을 표현한 영상 미장센도 일품이다. 당시 체피렐리 감독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를 함께 오페라 영화로 제작했다. 극장에서도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1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때문에 쌍둥이 오페라라고 불리는 같은 베리즈모 오페라 ‘팔리아치 (Pagliacci)’와 흔히 함께 공연된다. 각각 1시간이 약간 넘으니 동시에 공연해 2시간을 채울 수 있고, 테너와 바리톤의 창법이 비슷해 동일한 성악가가 두 작품에 출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두 오페라를 같은 날, 한 성악가가 소화하기에는 무리라서 다른 성악가들이 공연한다. 이 밖에 베리즈모 오페라의 범주에 들어가는 오페라로 푸치니(1958~1924)의 ‘외투(Tabarro)’가 꼽히기도 한다.

1968년 카라얀이 지휘한 오페라 영화  www.youtube.com/watch?v=Oc58cIExp_U
1968 년 피오렌차 코소토(산투자), 잔프랑코 체켈레(투리두)의 가창력과 카라얀의 지휘가 돋보이는 오페라 영화다. 사실 이 오페라의 백미는 아리아가 아니라 간주곡이다. 산투자가 로라의 남편에게 자신의 약혼자와 그의 아내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한 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는 폭풍의 눈이다.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에 오르간과 하프가 더해지며 색채를 불어넣는 이 간주곡은 지독히 슬프면서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차갑고 냉정한 카라얀의 간주곡은 더욱 아린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2/3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목록 닫기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