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중심, 주류 욕망 내던진 사유, 창작의 변방

박경리·윤이상의 고향 통영

중심, 주류 욕망 내던진 사유, 창작의 변방

4/4
가장자리의 소용돌이

그 답안지는, 신영복의 ‘변방의식’이라는 개념으로 보자면 동북아의 남단 항구 통영에서 태어나 유럽 음악 문화의 성지 베를린에서 활동한,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귀속되거나 편입되지 않고, 그 양 문화의 변방을 끝없이 서성거린 경계인이자 변방인이 제출한 것이기에 큰 주목을 받았다.

다시 말해 신영복의 ‘변방의식’이란 ‘중심으로부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변두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권력의 중심, 문화의 주류로부터 의식적으로 멀리 떨어져 끝없이 가장자리의 소용돌이를 자기 작품의 자양분으로 삼는 사유와 창작의 변방을 말한다. 변방은 회의하고 되묻고 모색하는 자리다. 진정한 변화와 창조는 그 격류가 휘몰아치는 변방에서 발생한다. 신영복은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의식이라고 말한다. 이 격렬한 사유가 ‘중심에 대한 열등의식’을 떨쳐버리게 한다.

그러니 그저 지리적으로 ‘변두리’ 출신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변방의식’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중심이나 주류로부터 심미적 거리와 긴장을 유지하는 것, 중심과 주류에 편입되려는 욕망을 제어하고 그 보이지 않는 회유를 거절하며 ‘사유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영 사람 윤이상이 베를린에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고, 또 그 결과물이 그 흔한 오리엔털리즘, 즉 ‘서양 화성악에 동양 정신을 담았다’는 식의 진부하고 낮은 수준에 갇히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소외와 격절감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잠시 비를 피해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의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경계인 윤이상의 필기구와 옷가지와 책상이 있었고 여권, 큼직한 여행 가방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책자와 기사와 음악회 팸플릿을 통해 눈에 익숙한 그의 커다란 초상 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애국자 윤이상’

…. 엉킨 실타래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경계에 선 음악가 윤이상, 변방의식의 예술가 윤이상이 그 기념관 안에서는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강조돼 있었다. 이런 호명이 아니고서는 고향에 머무를 수도 없는 한 예술가의 생애, 그 상처 입은 생애가 역설로 도드라졌다.

중심, 주류 욕망 내던진 사유, 창작의 변방

통영시 도천테마파크에 전시된 윤이상의 유품.



신동아 2015년 6월호

4/4
정윤수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목록 닫기

중심, 주류 욕망 내던진 사유, 창작의 변방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