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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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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우리나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으로 시끄러울 때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의 젊은 미남 총리 마테오 렌치(42)는 국민투표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지난 70년간 마치 연중행사처럼 63개 정부가 들어섰다. 이에 렌치 총리는 막강한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져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표심은 실익 계산을 뒷전으로 미루고 현 정부 불신임으로 몰렸다. 선거를 앞둔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종종 어린아이들처럼 시민 앞에서 양 손가락을 펴서 V자로 만든다. 이는 동심을 자극하는 친근한 승리의 표시가 아니다. 바로 ‘투표(Vota)’와 ‘복수(Vendetta)’의 두 V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해엔 선거 당일이 ‘V’로 시작하는 이탈리아 욕설과 ‘복수(Vendetta)’를 상징하는 ‘V데이’로 불렸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56%에 달하는 시칠리아 섬은 유권자 72.2%가 개헌 반대표를 던졌다. 이렇듯 이탈리아 남부, 특히 시칠리아인은 렌치 총리 정부가 몰락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셈이다. 

바로 이곳 시칠리아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 시칠리아계 콜리오네 마피아들은 마음먹은 복수는 기필코 하고야 만다.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개봉된 1972년, 미국의 시칠리아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폭력적이고 잔악하게 묘사돼 명예가 훼손됐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어설픈 복수극

하지만 영화에 내재된 시칠리아 특유의 친근한 요소들이 그들의 분노를 잠재웠다. 더구나 영화 곳곳에는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섬 시칠리아의 향수가 짙게 깔려 있다. 특히 3편에서 조직의 대부 마이클(알 파치노 분)의 외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가문의 뿌리인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한다. 그때 공연되는 오페라가 바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극 중 배경이 시칠리아인 이 오페라는 살인으로 마무리되는 어설픈 치정 복수극이다. 격한 감정으로 점철된 복수의 결투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애잔하면서도 수려한 시칠리아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지독한 사랑이 그려진다. 우아하거나 고상하기보다는 사랑의 다양한 갈등이 거칠고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열정적인 음악은 관객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시칠리아의 건축에는 그리스, 로마, 바이킹, 이슬람, 고딕, 바로크, 낭만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여러 양식이 종합적으로 서려 있다. 이유가 있다. 사실 시칠리아는 한순간도 자유를 누리지 못한 애처롭고 애달픈 땅이다. 열강의 침략으로 피폐된 땅의 약한 사람들을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지켜야만 했다. 시칠리아에는 여성이나 아이들이 심각한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자의 친족이 가해자를 살해해도 이를 묵인하는 사회 관습이 있었다. 그렇게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는 국가의 규범보다 가족 삶의 윤리가 더 상위에 있었다.



패밀리를 위해서라면…

아마도 오페라에서 살인을 저지른 알피오가 현실에서 그랬다 해도 면죄부를 받았을 것이다. 가족 보호 차원에서 저지른 악행을 정당방위로 인정하는 것은 외세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만들어진 시칠리아만의 규칙이자 법칙이었다. 영화 ‘대부’에서 ‘패밀리(family)’의 적이라는 명목으로 악랄하게 복수하는 범죄 장면이 많은데, 바로 시칠리아 사람들의 이와 같은 가족 중심적 생활습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 마피아 중에서도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잔혹한 보복범죄로 악명이 높다. 범죄와의 전쟁을 주도한 수사검사는 물론 그 가족까지 암살하는 무자비하고 잔악무도한 악행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낭만주의가 저물던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는 실증주의 사상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Realism)가 대두했다. 사실주의 작가들은 억지로 미화하거나 꾸미지 않은 진솔한 일상의 평범함을 소재로 담았다. 이후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Naturalism)가 등장한다. 우리는 자연주의라면 자연의 싱그러움과 아름다움, 혹은 노장사상을 떠올리지만 예술사조는 정반대다. 대부분 어두운 사회 단면과 인간 본성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적이고 처절하게 묘사한다. 다만 자연주의는 문학과 연극 장르에서 꽃피우지만 음악 특히 오페라에서는 전무하다 할 정도로 대표적인 예술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 반도는 조각조각 나뉘어 열강의 지배에 신음하고 있었다. 물론 상류층과 열강의 조력자들은 오페라 극장에서 문화적 혜택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 변변한 낭만 문학작품조차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는 메마른 현실이었다.

그러던 1827년,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역사소설 ‘약혼자들’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전 이탈리아 반도를 뒤흔든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인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만초니의 작품에 이탈리아 지성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1400년 동안 각기 다른 도시국가로 나뉘어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비로소 독립이라는 희망의 불꽃을 마음속에 불태우기 시작했다. 1871년,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는 북부 사보이왕가의 주도로 드디어 통일됐다.


국민통합과 베리즈모

그러나 공업과 상업을 발전시킨 부유한 북부 도시들과 농경 중심의 낙후된 남부 간 차이는 심각했다. 또한 북부 출신 인사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남부 국민들은 당연히 상대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독립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심각한 문화적 이질감은 국민 통합에 걸림돌이었다. 이를 불식하고자 정부가 적극적으로 독려한 문화적인 교류 속에서 베리즈모(Verismo)가 꽃피우게 된다.

이렇게 프랑스의 자연주의 사상과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만초니의 영향을 받아 베리즈모 문학은 독자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탄생한다. 다만 현실참여적인 풍자를 담은 자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베리즈모는 예술 그 자체에 현실이 있고 생이 있으므로 예술에 어떠한 변형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어떠한 미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 그래서 진실이라는 의미의 베로(Vero)에서 파생된 베리즈모로 명명됐다. 베리즈모를 굳이 국역하자면 진실(眞實)주의인데, 사실(事實)주의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베리즈모는 30년 넘게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북부 이탈리아인들은 소설에 묘사된 배경과 인물을 통해 베일에 싸인 남부지방에 대한 흥미를 해소할 수 있었다. 둘째, 베리즈모 소설은 적은 분량의 단편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초창기 베리즈모류 책들은 대부분 주머니에 딱 들어가는 소책자였다. 마지막으로, 관념이나 생각을 독자에게 주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무겁고 어려운 소설과 이론들이 활개치고 판치는 이탈리아 문학계에 베리즈모 소설은 단번에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날, 우리 한반도에서도 이러한 공식으로 출판하면 대박이 날지 궁금하다.



베르가의 단편 ‘시골 기사도’

가장 주도적인 베리즈모 작가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원작자인 조반니 베르가다. 우리말로 ‘시골 기사도’라는 의미의 이 소설은 ‘꽃의 캠프’라는 소설집에 들어 있는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의 짧은 단편이다. 시칠리아의 한 마을에서 부활절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주인공 투리두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 약혼녀 로라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이미 부유한 마부 알피오와 결혼했다. 혼자 남은 그는 마을의 젊은 과부 산투자와 약혼한다. 그런데 여전히 투리두는 유부녀 로라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산 투자는 약혼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만 오히려 두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 산투자는 분노로 폭발한다. 산투자는 출장에서 돌아온 로라의 남편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린다.

알피오는 격분했지만 바로 응징하지 않고 격식대로 투리두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이에 투리두는 승낙의 의미로 알피오의 귀를 물면서 엄숙한 신청에 시칠리아 관례대로 화답한다. 카발레리아(기사도) 루스티카나(변방의, 촌스러운)다운 에피소드다. 그러니 의미를 따져서 보자면 ‘시골 기사도’보다는 ‘어수룩한 기사도’ 정도가 더 적당할 것 같다. 지나간 사랑에 얽매인 투리두가 알피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며 오페라는 막이 내린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구성이다. 주옥같은 선율, 격정과 서정을 강렬하게 대비시키는 애절하고도 극적인 음악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오페라 레퍼토리 중 하나다.

소설은 매우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비극적 내용을 서술하지만 공연시간 1시간이 조금 넘는 오페라는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예컨대 오페라에는 소설엔 없는 몇몇 감성적 장면이 있다. 오페라에서 죽음을 직감한 투리두는 결투를 되돌리고 싶어 꿈쩍도 안 하는 알피오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또한 투리두가 약혼녀 산투자를 걱정하며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페라 속 투리두에 대해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추천 영상(유튜브)■ 2009년 스위스 취리히극장 실황 공연 www.youtube.com/watch?v=5YoqvywgQKc
호세 쿠라(투리두)와 파올레타 마로쿠(산투자)가 주인공이지만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는 호세 쿠라가 압도적인 연기를 펼친다. 요즘 가장 활발한 젊은 오페라 지휘자 중 한 명인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란차니가 지휘했다.





오페라 영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www.youtube.com/watch?v=arqnoxvtzZ4
프 랑코 체피렐리 감독이 1981년에 제작한 오페라 영화다. 엘레나 오브라초바(산투자), 플라시도 도밍고(투리두), 레나토 부르손(알피오), 페도라 바르비에리(루치아) 등 시대를 아우르는 스타 멤버가 총출동했고, 스칼라극장 오케스트라와 조르주 프레트르의 지휘로 당대 최고의 음악을 선사한다. 배신당한 여성으로서의 수치심과 질투, 공포, 절망 등의 내면심리가 음악과 어우러지며 감동이 배가된다. 또한 시칠리아의 자연을 표현한 영상 미장센도 일품이다. 당시 체피렐리 감독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를 함께 오페라 영화로 제작했다. 극장에서도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1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때문에 쌍둥이 오페라라고 불리는 같은 베리즈모 오페라 ‘팔리아치 (Pagliacci)’와 흔히 함께 공연된다. 각각 1시간이 약간 넘으니 동시에 공연해 2시간을 채울 수 있고, 테너와 바리톤의 창법이 비슷해 동일한 성악가가 두 작품에 출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두 오페라를 같은 날, 한 성악가가 소화하기에는 무리라서 다른 성악가들이 공연한다. 이 밖에 베리즈모 오페라의 범주에 들어가는 오페라로 푸치니(1958~1924)의 ‘외투(Tabarro)’가 꼽히기도 한다.

1968년 카라얀이 지휘한 오페라 영화  www.youtube.com/watch?v=Oc58cIExp_U
1968 년 피오렌차 코소토(산투자), 잔프랑코 체켈레(투리두)의 가창력과 카라얀의 지휘가 돋보이는 오페라 영화다. 사실 이 오페라의 백미는 아리아가 아니라 간주곡이다. 산투자가 로라의 남편에게 자신의 약혼자와 그의 아내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한 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는 폭풍의 눈이다.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에 오르간과 하프가 더해지며 색채를 불어넣는 이 간주곡은 지독히 슬프면서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차갑고 냉정한 카라얀의 간주곡은 더욱 아린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마스카니의 음악 마술

이 오페라의 작곡가 마스카니는 사실 베리즈모와는 거리가 멀다. 이탈리아 중북부 상공업 항구도시인 리보르노에서 자라고, 대도시 밀라노 음악원으로 유학을 가서 작곡가 푸치니와 동문수학했다. 그러나 이내 학교를 그만두고 민간오페라단 지휘자가 돼 전국을 떠돈다. 다소 고생스러웠겠지만 이는 그의 음악적 역량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그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접촉하며 독특한 지역 특색과 대중이 사랑하는 특성을 온몸으로 터득했다.

그러던 1889년 그에게 운명의 여신이 다가왔다. 그는 손초뇨 출판사의 단막극 모집 공고를 보고 자신의 고향 친구인 토제티와 메나시에게 이미 희곡으로 개작돼 호평을 받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오페라 대본을 의뢰한다. 그는 73개 작품 중 위풍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고 27세에 오페라계의 풍운아로 부상한다. 더구나 문단에서도 베리즈모 사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너무 빠르게 스타 반열에 오르며 화려한 명예를 누리다 보니 진정성이 퇴색돼서일까. 아무튼 이후 그가 내놓은 14편의 후속 작품은 하나같이 전작의 영광을 되풀이하지 못했다. 그의 후속 작품들은 이미 높을 대로 높아진 대중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원색적인 비평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있었고 여전히 그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몇 안 되는 생존 작곡가였고 훌륭한 지휘자였다.

부러질지라도 남에게 굽히지 않는 오만한 다혈질 성격에 돌출적인 그는 많은 이와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작곡가는 파시즘 정치가들에게는 매우 좋은 선전효과였다. 실제로 그는 파시즘 정권에서 받는 독보적인 연금 덕분에 고고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가 파시즘 정권에 어느 정도 부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공식 행사에 무솔리니 옆에서 얼굴을 내민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인간에 대한 성찰

이는 후일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의 목을 조른다. 그러나 이미 팔순이 넘은 작곡가는 세계적 인물이었다. 그의 음악을 흠모하는 연합군 장교들 덕분에 그는 로마 최고급 프라자호텔에서 패전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쫓겨나지 않고 그대로 사는 특혜를 누린다. 몇 달 후, 그는 10년 넘게 살던 프라자호텔 같은 방에서 사망한다. 그를 기념해 그의 방 창문에 놓인 마스카니의 흉상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번화가였던 코르소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동문인 작곡가 푸치니 이후, 이탈리아 작곡가들에게서는 베리즈모적인 성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문학작품을 읽고, 오페라를 보던 부르주아 계급이 없어지고 훨씬 세속화된 중산층이 생겨난다. 카루소, 탈리아비니, 칼라스, 파바로티 등 세상을 빛내는 오페라 스타들의 활약도 오페라의 입지가 축소되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급격한 변화로 다른 장르가 오페라를 대체하는 현실 속에서 서민들이 사랑하던 베리즈모 예술은 몇몇 오페라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베리즈모 오페라는 대개 평범한 서민들이 비참한 갈등을 겪고 끔찍한 복수로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그들이 이 비극적 이야기로 관객에게 전달하고픈 것이 현실 고발이나 사회풍자만은 아닐 것이다. 오페라를 보는 관객은 극한 감정을 앞세우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인간 군상의 내면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한 것은 예술을 통한 인간 성찰과 이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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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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