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추석맞이 ‘언택트 공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투란도트’

[황승경의 Into the Arte ⑬] “증오를 녹이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던가”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0-09-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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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30일~10월 4일 DIMF 유튜브 채널서 온라인 무료 공연

    • ‘남혐’ 공주의 마음을 바꿔라…천일일화(千一日話)

    • 시녀의 죽음으로 사랑의 의미 깨달은 ‘잔혹 공주’

    • 자신이 동경하는 여성상 창조한 푸치니의 遺作

    • DIMF 창작뮤지컬로 재탄생…추석 안방에서 ‘클릭’

    2007년 오디션 프로그램 원조 격인 영국 ITV방송국의 ‘브리튼스 갓 탈렌트’에 참가한 폴 포츠의 열창은 세계를 숨죽이게 했다. 그는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TV 전파를 타고 온 세상에 울려 퍼진 ‘빈체로’(vincero·승리하리라)는 꿈을 이룬 폴 포츠의 스토리와 맞물려 감동을 배가했다. 이는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주인공이 승리를 기원하며 부르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들고’(Nessun dorma) 하이라이트 선율이다. 이탈리아 작곡자 푸치니의 유작인 오페라 ‘투란도트’의 대표 아리아인 만큼 덩달아 오페라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높아졌다.

    수수께끼는 세 가지, 목숨은 하나

    지난해 6월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열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DIMF가 자체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를 공연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열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DIMF가 자체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를 공연하고 있다.

    투란도트 공주 이야기는 1710년 프랑스에 번역된 아라비아 설화집 ‘천일일화(千一日話)’ 1권에 들어 있다. 번역자 프랑수아 드 라 크루아(1653~1713)는 프랑스 궁정의 아랍어 통역사로 일하던 아버지 덕에 아랍의 문화와 풍습, 사상에 일가견이 있었다. 마침 7년 전 소개된 베스트셀러 ‘천일야화(千一夜話)’와 더불어 천일일화는 전 유럽으로 판매됐다. 그러다 보니 아직 많은 이가 천일야화와 천일일화를 헷갈려 한다. 천일야화는 여성을 증오해 결혼식 다음 날 아침에 신부를 죽이는 왕에게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줘 죽음을 면하는 새신부 이야기를 담았다. 반면 천일일화는 남자를 혐오하는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파르크나즈 공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유모가 목욕시켜 주며 들려주는 1001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투란도트는 그중 한 에피소드다. 투란도트 하면 대부분 푸치니의 오페라를 먼저 떠올리지만 원래 투란도트의 이야기는 여러 편의 연극으로 먼저 무대에 올랐다. 

    투란도트 공주는 외모만 아름다울 뿐 피도 눈물도 없다. 구혼하러 온 왕자들이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벴다. 타타르 왕국에서 반정(反政)으로 내쫓긴 칼라프 왕자는 공주에게 반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칼라프 왕자는 정답을 모두 맞혔지만 공주는 그와의 결혼을 완강히 거부한다. 이에 칼라프 왕자는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맞힌다면 자신도 목숨을 내놓겠다고 배수의 진을 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공주는 시녀를 왕자의 숙소로 보내 염탐한다. 공주가 맞아야 할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시녀는 도리어 자신이 왕자에게 구애한다. 거절당한 시녀는 질투에 불타 그만 공주에게 왕자의 이름을 발설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왕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결하고 만다. 시녀의 죽음으로 사랑의 참뜻을 깨달은 투란도트는 왕자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슬람 공주에서 중국 공주로

    50여 년이 흐른 1762년 이탈리아의 즉흥희극 극작가 카를로 고치(1720~1806)는 투란도트를 연극으로 극작했다. 극작가 고치는 ‘희비극 동화’라는 부제를 넣어 원작의 단점을 보완했다. 캐릭터를 유쾌하게 과장해 황당한 웃음을 던져주지만 묵직한 메시지가 가슴에 꽂히게 했다. 원작에서는 죽은 시녀를 자살미수로 살려내 진정한 해피엔딩으로 사랑을 마무리한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위해 고관대작들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반면 고집불통 공주는 차갑게, 안하무인 왕자는 뿔난 망아지처럼 제멋대로다. 18세기 유럽은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풍) 문화에 매료됐다. 요강이라도 중국제라면 유럽 귀족들은 열광했다는 후문이다. 고치는 신비로움을 가진 중국 베이징으로 작품 배경을 바꿔버린다. ‘투란’은 튀르크를 일컫는 말이고, ‘도트’는 딸이라는 의미다. 결국 투란도트는 튀르크 공주인데 갑자기 고대 중국 베이징 공주로 변신하고 만다(극작가는 베이징이 고도(古都)가 아닌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고치의 투란도트는 당대 최고 배우 안토니오 사키(1708~1788)가 이끄는 극단의 주요 레퍼토리가 돼 전 유럽에 투란도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실러(1802), 폴 뮐러(1911), 브륵그라프(1923), 브레히트(1954) 등 걸출한 작가들이 고치의 희곡을 재창작했다. 모두 고치의 역설과 풍자가 가득한 희극적 요소를 따르고 있지만, 독일 고전문학의 대표 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고치의 투란도트에 과감히 자기 스타일을 입혔다. 잔혹한 공주는 우아한 영웅으로 변신하고 고치의 희극적인 요소들을 고상한 비극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실러의 투란도트는 연극 관객에게는 외면받고 기억에서 잊혔다. 



    사장된 실러의 고혹적인 투란도트는 대신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 1924)의 오페라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투란도트는 동화 같은 소재에 사랑과 죽음을 다룬 극적 구성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여러 남자를 눈도 깜짝 않고 수수께끼 하나로 죽여버리던 ‘잔혹공주’다. 이런 그녀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등 내용상으로는 허점투성이였다. 푸치니 이전 오페라들은 아름다운 음악 선율보다는 희극적 내용에 집중해 오페라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지만 당시 푸치니는 말 그대로 ‘공백기’였다. 수년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거장의 ‘유니크’ 한 작품을 보여줘야 했다. 푸치니는 1921년 중국식 화성과 악기들로 음악을 공부하며 작곡에 돌입했다.

    푸치니가 탄생시킨 존재감 ‘류’

    2019년 6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에서 ‘류’ 역을 맡은 이정화가 열연하는 모습.

    2019년 6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에서 ‘류’ 역을 맡은 이정화가 열연하는 모습.

    푸치니는 그러한 오류를 답습하지 않으려고 신기하고 묘한 분위기로 고대 중국을 묘사했고, 수려한 음악으로 공주의 잔혹함을 희석했다. 사실 투란도트 공주는 푸치니가 좋아하는 여성상이 아니었다. 투란도트처럼 차가운 여장부 아내와 살던 푸치니는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동양의 여인을 동경했다. 푸치니는 오페라에 자신이 동경하는 여성상을 창조했다. 공주의 시녀를 왕자의 시녀(류)로 바꿔 일편단심 왕자만 바라보게 설정했다. 류는 투란도트도 하나뿐인 독창곡을 2곡이나 부른다. 슬프고도 화려한 명곡 덕분에 류는 주인공보다 더 큰 존재감을 뽐낸다. 

    작곡자 푸치니는 오페라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인후암 수술을 위해 간 브뤼셀 병원에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사망했다. 따라서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유작이자 미완작이다. 병실에는 그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투란도트의 마지막 장면 선율 조각들이 남아 있었다. 그의 사후에 제자 알파노는 그의 작곡 노트에 남아 있던 스케치 악보를 취합해 오페라를 완성했고, 2년 후 작곡가 없이 오페라는 초연됐다. 잔인한 공주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생뚱맞은 결말이지만, 오페라는 대성공이었다. 여러 극작가와 작곡가들이 손댔지만 투란도트 이야기는 푸치니 오페라만이 무대에 살아남았다. 

    2011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과 대구시는 푸치니의 오페라를 모티프로 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 뮤지컬은 배경을 가상의 수중 왕국으로 바꿔 중국적 색채를 모두 빼버렸다. 투란도트가 남성을 혐오한 이유도 구체적으로 어머니의 복수라고 명시해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바닷속 신비의 땅에서 펼쳐지는  감미로운 음악과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군무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 뮤지컬은 2018년 동유럽 각국과 라이선스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2020년 3월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노바스체나 국립극장(617석)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다.  체코, 헝가리, 독일, 오스트리아 등으로도 진출할 예정이어서 그 행보가 기대된다. 아직 공연을 보지 못했다면 온라인 무료 공연을 감상해 봐도 좋을 듯하다. DIMF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는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전막(2019년 제13회 DIMF 특별공연 당시 버전)으로 공연을 상영한다.

    9월 중순 이후 국립오페라단 등 국내 클래식 공연 단체들이 잇따라 온라인 콘텐츠를 유료 공연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투란도트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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