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보잉 vs 에어버스

세계의 하늘 양분한 대륙 대표군단

  • 강홍구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windup@donga.com

    입력2013-02-21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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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잉 vs 에어버스

    에어버스의 대형 여객기 A380(위)과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 787.

    “올해에는 보잉을 제친다.”

    파브리스 브르지에 에어버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올해 경쟁사 보잉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럽 항공기 제작업체 에어버스의 지난해 실적은 인도(引渡) 588대, 주문 접수 833대. 경쟁사 보잉은 인도 601대, 주문 접수 1203대였다. 신형 787 기종과 개조된 747 기종 등으로 무장한 보잉이 에어버스를 압도했다.

    그러나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보잉이 ‘꿈의 비행기’로 자찬했던 차세대 항공기 보잉787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며 회사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다. 1월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서 일본항공(JAL)의 787이 이륙 직전 연료가 새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같은 달 16일에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 공항에서 전일본항공(ANA) 소속 보잉787이 출발 직후 조종실 부근에서 연기가 나 인근 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보잉, 戰場에서 날다

    마침내 항공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1월 보잉787 기종의 배터리에 화재 위험성이 있다며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운항을 중지하도록 미국 항공사들에 지시했다. 일본 국토교통성도 전일본항공과 일본항공에 배터리의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787 운항을 중단하도록 했다. ‘비장의 무기’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셈이다.



    보잉의 사고가 이어지면서 경쟁사 에어버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잉과 에어버스의 대결은 단순한 기업 간 대결에서 한걸음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항공산업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보잉은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에어버스는 프랑스 툴루즈에 본사를 두고 있다. 과연 보잉은 불명예를 씻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에어버스가 1위 등극에 성공할 것인가. 세계의 하늘을 나눠 가진 두 기업의 불꽃 튀는 경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사의 역사로만 비교하면 에어버스는 보잉의 손자뻘이다. 보잉의 역사는 설립자 윌리엄 에드워드 보잉이 시애틀대학에서 조지 콘래드 웨스터벨트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해군 엔지니어 출신인 웨스터벨트의 도움을 토대로 만든 것이 보잉의 첫 비행기인 B·W 수상비행기였다.

    이를 통해 비행기 제작에 자신감을 얻은 보잉은 1916년 7월 15일 ‘태평양항공기제작회사’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인 1917년 보잉은 자신의 이름을 따 사명(社名)을 ‘보잉’(Boeing Airplane company)으로 바꿨다. 보잉의 이름을 단 첫걸음이었다.

    보잉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보잉은 해군의 훈련용 비행기 수요를 예상하고 일찌감치 수상비행기 ‘모델 C’를 준비했다. 이 모델의 우수성이 입증되자 미 해군은 보잉에 C 50대를 주문했다. 보잉 최초의 수주(受注)였다. 이듬해인 1918년 직원이 337명으로 늘었다. 이후 보잉은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에 자사(自社) 최초의 여객기인 247 기종을 공급하며 여객사업 확장에도 공을 들였다.

    세계대전은 대공황의 피해를 최소화한 면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보잉은 더글러스, 록히드 등과 제휴해 전투기 B17, B29와 폭격기 B29 등을 생산했다. 방위산업체 보잉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다.

    1958년 출시한 707 기종은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1967년에 선보인 근거리용 제트 여객기 737은 보잉의 지위를 세계 항공산업 시장 최고의 자리로 격상시켰다. 대형 기종 707과 727을 보유해 단거리 노선에 취약했던 보잉은 단거리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더글러스 DC-9의 대항마로 737 기종을 개발했다. 737은 제주항공, 진에어 등 국내 노선 및 동남아 단거리 노선에 주로 취항하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이 활용하는 기종이기도 하다. 탑승 가능 승객 수는 140~180여 명이다.

    에어버스, ‘유럽 서바이벌’ 기수

    보잉737을 최초로 활용한 항공사는 독일의 루프트한자. 루프트한자 그룹은 1965년 2월 보잉으로부터 21대의 737기를 주문했다. 보잉 역사상 미국 이외 국가의 기업으로부터 신형 항공기를 주문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보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737의 누적 주문량은 7367대. 지난 한 해 실적만 보면 전체 주문량(1338대) 중 737의 비중이 85%(1184대)에 달한다. 보잉에 737은 최고의 효자 모델이다. 보잉은 737이라는 날개를 달고 세계 민간항공기 시장은 물론 군용항공기 시장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에어버스는 유럽 항공기 제작업체들의 경쟁력 확보 과정에서 세워졌다. 1960년대에 보잉 등 미국 대형 기업들과 경쟁하던 유럽 회사들은 상호 협조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물꼬가 트인 것은 1967년 7월. 프랑스, 독일, 영국은 ‘항공산업 기술에서 유럽 업체들의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적·기술적 발전을 높이기 위해’ 에어버스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1967년은 경쟁사 보잉의 베스트셀링 모델 737이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1969년 프랑스 르부르제에서 열린 에어쇼는 2년 전의 약속이 이행되는 자리였다. 프랑스 교통장관 장 샤망과 독일 경제장관 카를 쉴러는 그해 5월 29일 세계 최초의 쌍발 엔진 여객기 A300 출시에 공식적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에어버스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하지만 영국은 정부와 영국항공기사업(BAC·British Aircraft Corporation) 간의 이견으로 컨소시엄 참여를 유예했다. 그러다 1978년 자국 항공기 제조회사 호커 시들리와 BAC가 합병한 영국항공기우주산업이 에어버스의 주식 20%를 사들이면서 컨소시엄에 참가하게 됐다.

    여러 국가가 모여 모두를 위한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어버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로저 베텔리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 엔지니어인 그는 1967년 최초의 협상과정에서 A300 프로그램의 기술 총괄 담당으로 선임돼 각 구성원을 연결하는 가교 노릇을 했다.

    에어버스가 공식 출범한 이후 베텔리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졌다. 각 업체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던 베텔리는 협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업체별로 임무를 부여했다. 가령 조종석 관련 기술에 강점을 가진 프랑스 업체에는 조종석을, 영국 업체에는 날개를, 독일 업체에는 기체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출범 초기 미흡했던 생산 시스템의 기본을 갖추게 됐고 업체 간의 역할 조정이 원활해졌다. 베텔리는 “우리 모두가 국기의 색깔이나 언어의 차이에 대한 두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에어버스에 쏟아 붓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A300을 통해 기초를 닦은 에어버스는 중거리용 항공기 A320으로 날개를 활짝 폈다. A320이 개발된 1984년은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서서히 회복되던 시기. 이에 따라 신형 항공기 수요가 늘어난 항공사들은 신형 항공기 A320을 경쟁적으로 주문했다. A320이 에어버스의 대표적 베스트셀링 모델이 된 것이다. 1988년 에어버스가 받은 주문은 900건이 넘었다. 불과 4년 전인 1984년의 주문이 411건이었음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성장이었다. 이후 에어버스는 A330, A340 등을 잇달아 출시해 모델의 일체감을 강조하며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애썼다.

    1990년대 들어 에어버스의 위상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1991년 걸프전이 계기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다국적군과 이라크 간의 전쟁이 터지면서 항공사들은 신형 항공기 주문을 취소하고, 기존 항공기의 지속성 강화에 힘쓰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고객사 사정이 이러하니 항공기 제작업체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어버스는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는 항공기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확신한 에어버스는 A320 확대 기조를 놓치지 않았다. 에어버스의 과감한 결정은 결국 큰 보상을 안겨줬다. 에어버스의 사업 확장 의지를 확인한 항공사들이 잇따라 주문을 넣으면서 1990년대 중반 에어버스는 보잉과 함께 세계 항공기 제작 시장을 양분하게 됐다.

    ‘하늘 위 호텔’ vs ‘꿈의 비행기’

    이후 20년 경쟁구도를 지속해온 두 회사의 접근 방식은 최근 들어 대형화 또는 첨단화로 다소 엇갈리는 양상이다. 양사가 주력 기종으로 밀고 있는 A380과 787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에어버스는 2005년 500석 규모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을 선보였다. 초대형 항공기 제작은 에어버스의 숙원사업 중 하나. 흔히 ‘점보 여객기’로 불리는 보잉747에 밀려 에어버스는 대형 여객기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400석의 보잉747보다 큰 A380을 개발해 점유율 제고를 꾀한 것이다.

    A380은 2층으로 된 기내 구조에 실내 공간도 넉넉해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린다. 운항 거리는 약 1만5700㎞, 기체 길이는 72.72m, 높이는 24.09m다. A380 기본형의 경우, 3단계 클래스 기준 최대 525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보잉 vs 에어버스

    2011년 미국 시애틀 에버렛 공장에서 보잉이 공개한 신형 점보 여객기 ‘747-8 인터컨티넨털’.

    에어버스는 항공사 간 인수·합병(M·A) 붐에 따라 초대형 항공사가 등장하면서 항공사들이 대륙별로 허브 공항을 두고 초대형 여객기로 한꺼번에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를 것으로 예상했다. 대형 여객기가 향후 항공기 시장을 관통할 키워드라고 판단한 것이다.

    에어버스가 크기를 강조했다면 보잉은 ‘꿈의 비행기’ 787을 통해 기술의 우수성을 부각하고자 했다. 2002년 12월 개발 계획을 발표한 보잉은 2004년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해 2011년부터 787을 인도했다.

    787의 가장 큰 특징은 탄소복합재의 비중을 50%로 높였다는 점. 강도는 기존 소재보다 10배 정도 높지만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한 탄소복합재를 많이 사용해 연료 효율이 높아졌다. 787의 개발 당시 애칭은 ‘7E7’. ‘E’는 효율을 뜻하는 단어 ‘efficiency’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높은 연료 효율은 항공사의 수익성 개선과 직결된다. 제프 스미섹 유나이티드항공 회장은 지난해 “보잉787로 고유가 파도를 넘겠다”고 밝혔다.

    대형항공기 부문에서 A380의 공세가 거세지자 보잉은 747의 부활이라는 히든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2011년 2월 신형 기종 747-8을 선보인 것. 1988년 747 개량 기종인 747-400을 발표한 지 23년 만의 일이다.

    미국 vs 非미국

    “에어버스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고 우리가 고객을 잃는 일은 없다.”

    보잉의 상용기 부문 대표 레이먼드 코너는 지난해 에어버스가 미국 내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이렇게 대응했다. 에어버스는 미국 앨라배마 주에 6억 달러를 투자해 중형 여객기 A320 조립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보잉은 “조립공장일 뿐”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실제론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잉의 처지에선 경쟁사가 자기 텃밭에 무단 침입한 꼴이기 때문이다.

    에어버스는 일찍이 보잉 등 미국 항공기 제작업체와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회사. 따라서 에어버스와 보잉의 대결은 태생적으로 불가피하다. 유럽과 미국을 대표하는 제작 업체답게 항공사들의 주문 현황도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에어버스가 수주한 A380은 262대. 아랍에미리트(UAE)의 에미리트항공이 90대, 싱가포르항공이 24대, 호주 콴타스 항공이 20대를 주문했다.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 등 유럽 항공사 외에도 중동과 아·태지역을 기반으로 한 항공사들이 주로 A380을 주문했다. 반면 미국 기반 항공사는 한 곳도 없다.

    이미지 실추 우려

    보잉 787의 경우 미국 업체들의 주문이 집중됐다. 세계 최대의 항공기 리스 업체인 인터내셔널 리스파이낸스 코퍼레이션(ILFC)이 74대, 유나이티드항공이 50대를 주문했다. 둘 다 A380 주문 내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회사들이다. 한편 이번에 사고로 홍역을 치른 일본 ANA는 지난해 12월까지 66대의 787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 상황은 어떨까. 에어버스와 보잉의 대결은 국내 시장에서도 백중세를 보였다. 전체 주문 대수에서는 보잉이, 최근 실적에서는 에어버스가 한발씩 앞선 양상이다. 보잉의 높은 점유율은 업계 1위 대한항공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152대의 항공기 중 보잉 모델은 115대, 에어버스 모델은 32대다. 아시아나항공은 80대의 항공기 중 에어버스가 44대, 보잉이 36대로 엇비슷하다. 또한 제주항공과 진에어는 100% 보잉의 737을, 에어부산은 에어버스 3대, 보잉 5대를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7대 3의 비율로 보잉 항공기의 점유율이 높다.

    하지만 차세대 항공기 주문 현황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한항공은 인천-뉴욕, 인천-LA 노선 등에 A380 6대를 투입하고 있다. 올해에만 A380을 2대 더 도입할 예정. 아시아나항공은 2011년 에어버스와 A380 6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항공기들은 2014~2017년 순차적으로 들여올 예정이다.

    반면 보잉787은 아직 실적이 미미하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로선 787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대한항공은 2018년까지 787 항공기 10대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아직 인도받은 비행기는 없다. 787은 잇따른 사고로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보잉사를 전적으로 믿는다”며 논란 잠재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으나 업계에선 사고로 형성된 이미지가 고객들의 항공기 선택에 직접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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