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6월18일 평양 안과병원 준공식.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태섭 전 장관, 맨 오른쪽이 우기정 회장이다.
“이 전 장관이 제2부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북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각오랄까, 다짐이랄까. 제2부회장에 당선되면 자동적으로 2년 후 국제회장이 되니까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죠. 한국인이 국제라이온스협회에 기부한 돈이 수천만달러인데, 중국과 인도에 100여 개씩 병원을 세우면서 북한엔 왜 우리 손이 미치지 못할까 고민하다가 ‘우리 한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거죠. 한국 회원들에게 5000원씩 의무적으로 내도록 했는데, 7만5000여 회원 전원이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섰어요.”
국제라이온스협회는 1925년 제9차 국제대회에 초청된 헬렌 켈러가 “라이온이여! 어두운 암흑의 문을 여는 십자군의 기사가 되어다오”라는 명연설을 한 뒤로, 맹인을 돕고 눈을 보호하는 ‘시력우선(Sight First)’ 사업을 전개해왔다. 전세계 시각장애인 수는 3700여만명, 저시력자 수는 약 1억2400만명인데, 세계 인구가 80억으로 늘어날 2020년에는 그 규모가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급속한 노령화와 당뇨병 등에 의한 합병증으로 말미암아 실명의 위협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제라이온스협회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제1차 시력우선사업을 전개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제2차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 전 장관은 평양안과병원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의 시력 장애인이 16만명인데, 그중 3000명은 심각한 백내장과 녹내장 환자예요. 처음엔 국제라이온스협회에서 북한에 들어가길 꺼렸어요. 한국라이온스협회의 노력으로 성사됐죠. 특히 우 회장이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평양안과병원은 사업비 총 650만달러 중 480만달러를 국제라이온스협회 재단에서 지원받고, 170만달러는 국내에서 모금해 충당했다. 그 결실이 평양 낙랑구역에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3층에 l76병상을 갖춘 최첨단 안과병원이다.
그러나 2002년 기공식 후 2005년 6월에 준공식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비가 워낙 많이 드는데다, 왕래가 자유롭지도 않아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2004년 7월부터 11월30일까지 사업이 중단됐을 때는 이 전 장관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우 회장은 “이 전 장관의 리더십과 한국라이온스협회 회원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학 전공한 휴머니스트
우 회장은 지난해 ‘제1회 스페셜올림픽 동아시아 골프대회’를 대구컨트리클럽에서 개최했다.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연합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개안수술을 해주는 ‘오프닝 아이즈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그는 2005년 나가노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을 참관하면서 지적발달장애인들의 골프대회를 구상했다. 동·하계 올림픽, 장애인올림픽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인정하는 3대 올림픽에 속하는 스페셜올림픽은 정신지체장애우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을 제고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도와주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나가노에서 돌아온 우 회장은 곧장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력우선 사업차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한국에 있는 날이 거의 없어요. 그때도 역시 외국에 있었는데, 우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가 철학을 전공한 휴머스니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또 한번 놀라게 하더군요. 스페셜올림픽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면서요. 두말이 필요 없죠. 적극 격려했어요.”
우 회장은 마침내 골프대회를 유치하기로 결정했고, 지난해 한국 중국 대만 홍콩의 장애인 66명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회를 치렀다.
라이온스협회의 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인 우 회장은 가업인 골프장 경영을 통해서도 휴머니즘을 실천해왔다. 1994년, 골프에 대한 선친의 남다른 애정을 기리기 위해 선친의 호를 딴 송암골프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송암배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매년 대구CC에서 열리는 송암배 골프대회는 명실공히 스타플레이어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박세리, 김미현, 강수연, 장정, 한희원, 안시현 등이 이 대회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어린 선수들을 볼 때처럼 보람을 느낀 적은 없어요. 송암배는 후진 양성의 틀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죠. 세계 곳곳을 투어할 때 친분이 있는 선수들에게서 전화가 와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골프는 특히 정신력이 중요하죠. 어느 선수가 스코어가 좋지 않아 SOS 전화를 하면 전 어디든 달려갑니다. 김미현 선수는 경기가 잘 풀릴 때보다는 잘 안 풀릴 때 연락해요. 김미현 선수의 ‘땅콩’이라는 별명도 제가 지어준 거예요. 김미현 선수는 대구CC에서 실력을 키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