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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5覇’ 제나라 환공의 탁월한 통치철학

“먹고살 걱정이 없어야 개혁도 한다”

‘춘추 5覇’ 제나라 환공의 탁월한 통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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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전무쌍한 난세의 정국 추이는 주마등과 같았다. 결정적 시각의 도래가 의외로 빨랐고, 상상 이상으로 더욱 첨예화했다.

폭군으로 악명을 날리던 양공이 시해되자 사촌 아우인 공손무기가 등극했으나 반년도 못 되어 역시 이승을 하직했다. 그동안 공자 규는 노나라로, 공자 소백은 이웃 거나라로 도피 중이었다. 공석인 군주의 자리를 메우고자 급거 소집된 중신회의의 다수 의견에 따라 거나라의 소백에게 영접의 사신이 파견됐다.

영국의 처칠은 “난세에는 중앙무대 가까이 위치해야 유리하다”고 갈파한 바 있다. 공자 소백으로 말하면, 가까이 있을뿐더러 의젓한 생김새에 기량이 크다고 알려져 있었으니 조건이 매우 유리했다.

한편 그러한 정보를 접한 노나라도 가만있지 않았다. 나이로 보아도 공자 규의 즉위가 당연할뿐더러, 무엇보다 이 기회에 제나라에 친노(親魯)정권을 수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나라 장공(莊公)은 군대를 풀어 공자 규의 귀국을 서두르기로 결심했다. 이때 관중이 계산해보니, 거나라가 제나라 수도에 더 가까우므로 소백이 먼저 귀국해 즉위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관중이 직접 수십량의 병차로 쾌속 선발대를 편성했다. 서둘러 인솔하면서 본대에 앞서 출발했다. 그래야만 공자 소백의 귀국 행렬을 중도에서 차단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관중의 선발대가 급행하여 즉묵에 도착해보니 벌써 공자 소백 일행이 통과중이었다. 관중이 달려가 장유(長幼)의 순서와 현재의 병력 대비 등을 이유로 귀국 중지를 호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설득 실패를 자인하듯 관중은 고개를 떨구고 자기 진영으로 되돌아가는 듯했으나, 갑자기 돌아서더니 공자 소백을 향해 활을 쏘았다. 소백은 크게 소리지르며 차중에서 뒤로 쓰러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측근들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한참 지켜보던 관중은 암살 성공을 확신하며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뒤따라오던 본대에 경위를 보고하고, 여유 있게 천천히 제나라 수도를 향했다.



한편 공자 소백은 관중이 멀어지자 멀쩡하게 상반신을 일으킴으로써 주위를 놀라게 했고, 또한 기뻐 어쩔 줄 모르게 했다. 관중이 쏜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장신구를 맞히고 옆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공자 소백의 그런 계략은 ‘임기응변 죽음 꾸미기’라고 불린다. 한자로는 ‘수기응변 양장중전지계(隨機應變 佯裝中箭之計)’다. 하여튼 임기응변의 순간적인 연극과 슬기로운 연출은 공자 소백의 신속하고 탁월한 두뇌회전을 말해준다. 후세의 일이지만 삼국시대의 제갈공명도 ‘죽음 꾸미기(裝死)’를 역용했다. ‘삶 꾸미기(裝生)’ 계략을 유언하여 자신의 사후에 적군을 격퇴한 것이다.

공자 소백 일행은 연극에 성공한 후 발길을 재촉해 제나라 수도에 입성했다. 그러고는 백관만민의 축복 속에 즉위했는데, 이것이 곧 제나라 환공(桓公)의 등장이다. 기원전 685년의 일이다.

한편 노나라의 방대한 병력은 공자 규를 호송하며 천천히 위의를 갖추면서 뒤늦게 국경을 넘어서야 비로소 즉위 사실을 알게 됐다. 후회막급이었으나 자기 딴에는 대의명분이 있었고 병사들에 대한 체면도 세워야 했다. 억지로 공자 규를 내세워 일전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노군의 대참패였다. 제군은 거꾸로 노군을 추격하며 국경을 넘어섰는데 사령관 포숙 명의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공자 규는 당신들 노나라의 육친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노군측에서 처분하시오. 그러나 관중과 소홀은 제나라 출신의 원수이니 우리측이 인도받아서 처단하겠소(春秋左氏傳, 莊公 10年).”

결국 공자 규는 자살했고 소홀은 순사(殉死)했다. 살아남은 관중의 신병은 포숙이 인수해 당부라는 곳에 이르러서는 결박을 풀었다. 그러곤 귀국하자마자 환공에게 보고하고 건의했다.

“관중은 저와 비교도 안 되게 우수하며, 천하에 둘도 없는 정치적 재능을 가졌습니다. 그를 대담하게 등용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를 활로 쏜 적이 아닌가.”

“그럴수록 거룩하고 폭넓은 기량을 천하에 보이셔야 합니다. 과거에 구애하면 소인에 불과합니다. 관중을 보좌역으로 기용하시기 바랍니다.”

환공이 끄덕이며 포숙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환공은 관중을 일거에 상국(相國)으로 임명하여 국정을 맡겼다. 이를 전해들은 국민은 환공을 우러러보았고 또한 포숙을 존경했다. 환공은 오늘날까지도 기량이 더없이 큰 위대한 군주로 숭앙된다. 그리고 포숙은 티끌만한 질투심도 없이 자기보다 나은 인재를 공정하게 천거했다는 데서 훌륭한 참모장으로 존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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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동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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