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서 폭발력 보여준 ‘20대 남성’
여야 할 것 없이 이대남 구애 나섰지만
지금까지 대선 최종 승자 만들어온 이대녀
한 성별 지지만 신경 쓰다간 모든 성별 잃어
남성, 여성 아니라 2030의 문제 해결책 내놔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대 남성의 많은 지지를 받고있다. [동아DB]
20대 남성은 불과 4년 전까지 여론조사에서도 따로 집계하지 않던 집단이다. 이들이 처음 여론조사에 등장한 시점은 2018년 12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조사다. 당시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정부 지지율은 29.4%로, 전 연령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20대 여성의 정부 지지율은 63.5%로 같은 세대 남성 지지율의 2배를 훌쩍 넘겼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여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던 설훈 의원은 “지금 20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낮다”고 말했다. 청년위원장을 맡고 있던 장경태 의원도 2019년 2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대 남성들은) 젠더 감수성에 기초한 사고를 하기까지 성숙하고 발달하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말을 더했다. 20대 남성의 여당 지지율 하락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본 것이다.
그들의 분석은 2020년까지는 사실로 보였다.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은 국회의석 300석 중 171석을 획득하며 압승을 거뒀다. 20대 남성도 줄곧 여당에 낮은 지지율을 보여줬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47.7%가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을 지지한 20대 남성의 비율은 40.5%에 불과했다.
與野 할 것 없이 이대남 눈치 보는 중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 15일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동아DB]
유례를 찾기 힘든 몰표 현상에 야권 인사들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4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당이) 2030세대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성평등이라고 이름 붙인 왜곡된 남녀 갈라치기를 중단하지 않으면 민주당에 20대 남자 표가 갈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를 기점으로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이대남을 위한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군 가산점제’ 등 군필자에 대한 우대 정책 복구 및 여성할당제 폐지다. 민주당의 최연소 국회의원인 전용기 의원은 4월 15일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1999년 군 가산점제 위헌 결정 당시 헌법재판소도 남성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병역 정책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며 법 개정 이유를 밝혔다.
야당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나섰다. 이 대표는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폐지를 당대표 당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당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실력만 있으면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정함을 보이겠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유승민 전 의원의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남녀평등복무제’(여성도 군사훈련 및 군복무를 하는 제도)도 다시금 관심을 받게 됐다. 여성가족부 폐지의 경우 유 전 의원이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내용이다. 7월 8일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여가부 폐지를 다시 대선 공약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대표도 7월 7일 청년 창업자 간담회에서 “여가부가 지금까지 꾸준히 예산을 받아 활동했음에도 지난 10년간 젠더 갈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며 “(여가부가) 계속 존재해야 되는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며 여가부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여성 놓치면 대선 승리 어려워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이대남 구애가 전반적인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대 남성이라는 우군을 얻는 대신 여성 지지율을 잃을 수 있다는 것. 남성보다는 여성 지지자들이 선거 승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8월 13일 언론 기고를 통해 “여성 유권자는 남성에 비해 중도적이고 네거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유동적”이라며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잡게 된다면 중도층 득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려대로 야권의 이대남 구애 현상은 젊은 여성들의 지지 이탈로 이어졌다.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직후인 7월 9일 국민의힘의 20대 여성 지지율은 1%를 기록했다.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가 18세 이상의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정당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44.9%였는 데 반해, 20대 여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단 1%에 그친 것. 국민의힘 측은 “위 조사의 20대 여성 표본 수는 57명이다. 이때 오차범위는 13.9%가 넘는다. 즉 0~27% 사이의 지지율은 같거나 의미가 없다”며 조사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야당을 지지하는 여성은 계속 줄어들었다. 한국갤럽이 7월 27~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 연령대 여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8%로, 민주당(35%)보다 7%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정당에 대한 남성들의 지지율은 32%로 같았으나, 여성들 사이에선 국민의힘(24%)과 민주당(39%)의 격차가 비교적 컸다.
4·7 재보선 직후와 비교하면 국민의힘 여성 지지층 이탈은 더 현격하게 드러난다. 한국갤럽의 지난 4월 13~15일 조사에서 전 연령대 여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로, 민주당(31%)과 비슷했다. 당시 여성들의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은 각각 29%와 31%로 팽팽했다. 남성들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31%, 민주당은 30%로 큰 차이는 없었다.
직장인 김지은(28·여) 씨는 “이준석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은 그동안 젊은 여성들이 큰 특혜를 받고 살아온 것처럼 이야기한다”며 “젊은 세대는 남녀를 막론하고 일자리, 내 집 마련 등의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다. 여성 때문에 남성이 더 고통받았다는 식의 주장은 참기 힘들다”며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2030도 도 넘은 ‘이대남 구애’에 눈살 찌푸려
7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오른쪽)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 대변인은 7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가 ‘남혐 단어’를 사용했다며 비판했다. [뉴스1]
20대에서의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7월 1주(6월 29일~7월 1일) 24%-30%, 7월 2주(7월 6~8일) 23%-25%, 7월 3주(7월 13~15일) 19%-23%로 3주 연속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섰다. 그렇지만 7월 4주(7월 20~22일)에서 각각 21%씩 동률을 기록하더니 7월 5주(7월 27~29일)부터는 29%-19%로 역전됐다.
학원강사인 권대영(31) 씨는 “(도쿄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스트 논란을 보고 국민의힘 지지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안 선수가) 머리가 짧고 특정 단어를 사용했다며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페미니스트라며 공격하는 게시글을 본 적 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철없는 사람들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대변인이 직접 나서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선을(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7월 30일 페이스북에서 “(안 선수 페미니스트) 논란의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에 있고,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에 있다. 이걸 여성 전체에 대한 공격이나, 여혐으로 치환하는 것은 그동안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재미 봐왔던 ‘성역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안 선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매우 많은 수를 뜻하는 ‘오조오억’이나 잘 들리지 않는 한국말을 의성어로 표현한 ‘웅앵웅’ 등 여성 사용자 위주의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는 단어를 사용해 ‘페미니즘 공격’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이 젊은 세대 남성과 여성을 따로 공략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성별에 관계없이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 이슈에 분노한 게 ‘정권교체 민심’”이라며 “국민의힘이 2030세대 남성 혹은 여성 중 일부의 시각만 대변하면서 표를 잃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과 언론의 ‘이대남·이대녀’ 논의가 왜곡되고 단순화·스테레오타입화된 기존의 세대 담론에 기반한다면 잘못된 결론과 처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에게 젠더 평등 문제에서 ‘불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있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 ‘일상적으로 분노하는 문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젠더 문제의 억울함’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일자리와 빈곤의 위험,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비인격적인 대우, 거기서 오는 자기에 대한 혐오, 미래 없음에 대한 절망이나 총체적 사회경제적 비참함과 같은 어려움 등일 것이다. 이런 문제에 세대·젠더가 착종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젠더갈등 #이대남 #이대녀 #신동아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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