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추미애 “성장보다 분배”
이낙연·정세균 “경제성장 중시” 눈길
윤석열·최재형 “‘소주성’은 국민 기만 행위”
원희룡·김두관 “지방분권으로 경제성장”
홍준표 “정부 주도 경제정책, 사실상 위법”
정세균도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동의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폐업한 상가. 일부 대선후보들은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뉴스1]
與, 분배론 강세 중 이낙연, 정세균 “성장도 신경써야”
대선후보들의 경제 구상은 크게 ‘분배 위주의 성장’과 ‘성장을 통한 국민소득 증대’로 나눌 수 있다. 여권 후보들은 대부분 전자의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공정한 분배가 성장을 견인’한다는 것.‘기본소득’의 주창자로 알려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고성장 시대에는 공정한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했다. 그러나 투자할 돈이 남아돌고, 불공정과 불평등이 저성장의 주요 원인이 된 지금은 공정한 분배가 성장을 담보하고, 성장은 다시 공정한 경제의 토대가 된다”며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밝혔다. 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후보도 있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이어받아 코로나 국면 수습 이후로 미뤄진 경제개혁 과제를 완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권 후보 중에도 분배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은 사람이 있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월 21일 ‘부산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신기술이나 친환경 산업과 관련 인력을 육성해 경제를 성장시킬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 국민의 70%가 중산층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시간당 임금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전체에서 소득주도성장은 빛을 보지 못했다”며 “사람 중심의 혁신성장을 통해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분권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색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김 의원은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지방에 과세, 입법 등 자율권을 주면 교육·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 말했다. 서울 같은 초대형 도시를 5개 만들어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실행하면 5개 도시가 경쟁·협력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
추미애 전 장관도 이와 비슷한 공약을 내놨다. 9월 7일 TBC가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TV토론에서 추 전 장관은 “대구·경북을 메가시티로 육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치분권형 개헌을 하겠다”고 밝혔다.
野 “경제 전반에 정부 개입 자체가 문제”
야권 후보들의 경제정책은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들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분배 위주의 정책이며 성장에는 실패했다”고 입을 모았다. 5년간 분배에만 신경을 썼으니, 이제는 경제성장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8월 2일 국민의힘 초선 공부 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강연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직격 비판했다. 그는 “임금을 많이 주면 소비 성향과 총수요가 늘어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근로자의 소비 수요가 늘어도 인건비 상승 때문에 기업의 투자 수요가 줄어 총수요가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소득주도성장은 분배정책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소득만 올려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국민을) 속였다”며 “사실상 정부 집권 기간 동안 경제성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주도하는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7월 초 열린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법 119조 1항에는 ‘경제자유화원칙’이, 2항에는 ‘경제민주화원칙’이 명시돼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고 경제민주화는 일종의 보칙이라는 의미다. 국가는 자유경제활동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만 개입해야 한다. 현 정부처럼 경제활동 전반에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경제전문가인 유승민 전 의원도 “정부가 경제정책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재정을 풀거나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면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경제성장의 중요성에 동감했다. 원 전 지사는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기업 유치 및 창업 독려 등의 활동을 통해 경제 생산성과 성장률을 높인다면 신산업 발전은 물론 좋은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韓 경제 최고 난맥상은 일자리 문제”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센터의 실업급여 신청 창구. 야권은 물론 여권의 대선후보들도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대신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동의한다. [뉴스1]
하지만 근로 형태를 두고서는 의견이 갈렸다. 일부 후보들은 ‘안전한 노동시장 유연화’(이하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채용과 동시에 해고도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저성과자를 해고해 그 자리에 새 인력을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해고당한 사람도 언제든 다시 취업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 일자리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권 후보들은 대부분 이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찬성한다. 윤석열 전 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지사는 매체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수차례 언급해 왔다.
최재형 전 원장은 ‘신동아’에 보낸 답변서에서 “정규직 보호제도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고용유연성이 확대될 때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윤 전 총장은 9월 7일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정책 발표회에서 “정부의 모든 정책 목표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맞춰 산업, 교육, 노동, 복지 등 제반 경제 사회 정책을 통합하고 정부 조직도 개편할 것”이라 밝혔다. 고용유연성을 막는 규제 혁파는 물론 관련 정책을 재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홍 의원은 일부 노조의 전횡을 막는 일이 고용유연성 확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 봤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경남도지사 시절 강성노조와 싸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 긴급명령이라도 발표해 강성 귀족노조의 패악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여권 후보들의 노동정책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별을 줄이는 방식이 다수를 이뤘다. 추미애 전 장관은 답변서에서 “비정규직이라도 정규직 못지않은 고용안정과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김두관 의원도 답변서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비정규직이나 파견으로 노동을 소모하는 행위는 최대한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야권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후보도 있었다. 이재명 지사는 8월 8일 MBN ‘시사스페셜’에 출연해 “노동유연성 강화, 사회 안전성 확보 등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세균 전 총리는 ‘비정규직 우대임금’을 내놨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직원에게 20%의 임금을 더 주는 방안이다. 일종의 노동유연성 강화 정책으로, 고액 임금을 원하는 사람은 고용안정성을 일부 포기하고 비정규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노동유연성 강화는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 내외 간 인력 이동을 활성화하는 방안”이라며 “이동 시 근로자의 임금이 급감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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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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