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송영길 + 초선 이재명 낳은 민주당 텃밭
이재명 ‘저격’ 원희룡 등판 + 유동규
“대권 노리는 사람들이 지역 신경 쓰기나 하겠어”
“유동규 뭐 하는 사람인지… 완전 코미디야”
“이재명 뽑으면 1~2년 내 보궐선거 할 듯”
“원희룡은 자기 몸값 높이려 온 거 아닌가”
[동아DB, Gettyimage]
기점인 계양역을 시작으로 인천지하철 1호선 노선 방향 도로를 따라 귤현역 방면으로 접어들면 주택가·상점가가 보인다. 박촌, 임학, 계산역, 경인교대입구역 쪽을 지나며 깊이 들어가면 보이는 풍경은 구축 아파트가 많아 구도심에 가깝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도시의 빛깔은 평소보다 더 회색에 가까워 보였다. 거리에 자동차와 인파가 퍽 오가지만 부산스러움보다는 조용한 느낌을 준다. 계양역 인근과 풍경은 달라도 주는 인상은 비슷하다. 뚜렷한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도시. 인천 계양구 계산1~4동, 계양1~3동으로 묶인 선거구, 인천 계양을(이하 계양을) 지역이다.
2월 6일 인천 지하철 1호선 계양역 인근 게시대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현준 기자]
이에 대해 2월 6일 만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불쾌감을 나타냈다.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지역을 무시하는 처사”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역민을 제물로 삼는 것” 등 울분 가득한 말로 출마자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중앙 정치의 회오리에 지역 현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뭔 짓을 해도 뽑아주니까 문제지”
2월 6일 인천 계양구 계양2동 계양산전통시장 모습. [지호영 기자]
계양을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계양갑·을로 나뉜 이래 2010년 보궐선거 한 번을 제외하곤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적이 없다. 민주당의 대표 ‘텃밭’으로서 국민의힘에는 ‘험지’를 넘어 ‘오지’라는 말까지 나오는 곳이다. 의원 선거뿐 아니라 20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다. <표1 참고>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에 대해 계양을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상인 최모(71) 씨는 “여기가 ‘텃밭’이라서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텃밭으로 인식되면 소중히 여기기보다 오히려 만만히 본다. 잘하든 못하든 아무나 내보내면 당선되는 곳에 굳이 왜 잘해 주려고 하겠나. 표심 변화가 심한 곳이어야 어떻게든 표를 따려 눈치도 보고, 심기를 거스를 짓을 안 할 텐데, 뭔 짓을 해도 민주당을 뽑아주니까…. 이재명 대표가 낙선하거나, 당선되더라도 겨우 이겼어야 했는데 그것도 안 됐다. 정치인도 문제지만 주민들도 좀 변해야 한다. 나도 여기 오래 살며 예전엔 정당만 보고 민주당 후보를 뽑았지만 15년 전부턴 그러지 않고 있다.”
2월 6일 인천 계양구 경인아라뱃길 전경. [지호영 기자]
이재명 vs 反이재명
이재명 대표는 22대 총선에서도 계양을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된다. 1월 17일 차담회에서 이 대표는 취재진의 “계양을에 그대로 출마하느냐”는 질문에 “지역구 의원이 (자신의 지역) 그대로 나가지 어디 가느냐”라고 반문했다. 1월 31일엔 계양을 출마 예비후보로서 공천관리위원회의 면접 심사를 받았다.국민의힘에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나서 이른바 ‘명룡 대전’을 예고했다. 원 전 장관은 2월 2일 계양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후 지역 시장을 방문하는 등 민심 다지기에 돌입했다. 15일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원 전 장관을 계양을에 단수 공천한다고 밝혔다. 원 전 장관의 목적은 명확하다. ‘이재명 저격’이다.
원 전 장관은 1월 16일 인천 계양구 국민의힘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돌덩이 하나가 자기만 살려고 길을 가로막고 있다. 내가 온몸으로 돌덩이를 치우겠다”고 밝혔다. 꼭 계양을이 아니더라도 이재명 대표가 가는 곳이라면 따라가겠다고도 했다. 원 전 장관은 이날 행사 이후 취재진과의 질의에서 “국회를 자기가 살기 위한 방탄막으로 만드는 야당의 책임자가 발을 디딘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원 전 장관과 이재명 대표는 각각 여야 대권주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4월 계양을에서 펼쳐질 둘의 대결을 ‘미니 대선’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이재명 후보가 선거사무소를 옮겼는데, 원 전 장관이 이곳과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선거사무소를 꾸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입을 모아 “달갑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계산1동 서해아파트 주민 이모(41) 씨는 “싸움 구경이 가장 재밌는 구경이라고, 외부 사람들에게야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주민으로선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며 “이재명, 원희룡 둘 다 대통령 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곳은 대권으로 향하는 발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 같다. 애초에 이 지역 발전엔 관심도 없던 사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 윤모(45) 씨도 “지역구 의원은 지역을 잘 알고 애정이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재명은 감옥 안 가려고 온 것 같고, 원희룡은 계양을과 상관없이 이재명이랑 싸우려고 나오는 것 같다. 둘 다 정이 안 가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2월 14일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이날 유 전 본부장은 입당 및 계양을 출마를 밝혔다. [뉴스1]
[영상] 유동규 출마의 변
‘반(反)명’ 기치를 들고 참전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도 두 대권주자의 대결에 변수가 되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 근무하며 대장동·위례신도시 사업을 주도했다. 한때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꼽혔지만 지난해부터 이 대표에게 불리한 대장동 게이트 관련 폭로성 발언을 이어왔다.
2월 3일 유 전 본부장은 언론에 “나는 전과도 없고 받고 있는 재판도 이재명보다 적다. 이재명이 선거에 나갈 수 있다면 나도 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재명이 하는 행태를 보며 출마를 고심했다. 그와 붙어서 이길 것”이라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어 14일엔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중앙당사에서 입당식을 열고 “계양을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국회의원의 방탄용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 나는 계양 주민들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며 출마를 알렸다. 자유통일당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창당한 정당이다.
이에 대한 주민 반응은 역시 싸늘했다. 계산4동 주민 이정은(58) 씨는 “유동규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완전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이곳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단지 이재명 잡겠다고 온다는데, 아무리 지역민을 위한다고 좋은 말을 늘어놓아도 진정성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인교대입구역에서 만난 박성주(47) 씨는 “이재명, 원희룡 둘이 여기에서 선거를 치러 괜히 들쑤시고 있는 느낌인데, 유동규까지 와서 난장판을 만드니 기분이 좋지 않다”며 “이곳도 엄연히 하나의 지역구인데, 정치인들이 ‘놀이터’로 여기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지역에 오래 있을 사람 뽑을 것”
2월 6일 인천 계양구 계산동 선거사무소에서 윤형선 국민의힘 계양을 당협위원장이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윤 위원장은 “물론 지역민 가운데 인지도가 높고, 중앙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상당수”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천시의 노후 주택 비율이 평균 20%다. 이곳은 36% 수준으로 낡은 집이 많다. 연탄, 심지어 장작불을 때서 난방을 하는 주택이 있을 정도다. 관할 지역 대부분이 계양산인데, 개발제한구역이 광범위하다.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도 많아서 기본적 교통권도 보장이 안 됐다. 지역에 오래 있던 사람이 아니면 이를 잘 알 수 없고, 온다고 해도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앙에서 사람이 오면 나와 같은 지역 정치인도 속이 상하지만 주민들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주민들을 만나다 보면 ‘낙하산 공천’을 비판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주민들은 4월 총선에서 “지역에 애정을 갖고 오래 남아줄 사람을 뽑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양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수민(37) 씨는 “매일 계양역으로 와서 출퇴근한다. 사는 곳과 거리가 멀지만 교통 인프라가 좋지 않아 통근시간이 30분은 더 걸린다”며 “지하철 연장이든 재개발·재건축이든 단기간에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지역에 남을 사람이어야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중앙에서 자꾸 ‘전략공천’이라는 말로 생뚱맞은 사람을 보내지 말고, 지역밀착형 후보를 좀 더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역사 안에서 만난 조모(46) 씨는 “둘 다 큰 호감이 가진 않지만 그래도 원희룡이 낫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은 보궐선거로 온 후 1년 반 동안 딱히 한 게 없다. 뭔가를 보여주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받고 있는 재판이 수두룩하니 지역 현안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안 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라 당선한다고 해도 불안하다. 당선 1~2년 후에 실형을 받아 선거를 다시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계양을은 여러 문제 가운데 교통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원희룡은 국토교통부 장관 출신에 여권 인사라 이를 해결해 줄 힘이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적어도 이재명보다는 여기 오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계산1동 부평초등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31) 씨는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 국회의원(정태옥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말한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이 아직 기억난다. 그 발언 이후로 보수정당은 안 뽑고 있다. 주변 인천 사람들 가운데 나와 같은 사람이 꽤 많다”며 “솔직히 이곳이 부자 동네가 아닌 건 맞지만 그렇다고 ‘망하면 가는 곳’이라느니 등 무시하는 발언은 참을 수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집단이 지역에 애정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그래도 서민을 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이곳에도 관심을 기울일 듯싶다”고 말했다. 계양2동 주민 김성훈(38) 씨는 “원희룡이 여권 대권주자라곤 하지만 이재명에 비하면 체급이 낮지 않나”며 “이재명과 붙어서 자신의 몸값을 높여보려는 심산이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스스로도 지역구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야 흠이 안 잡힐 거라 생각할 것 같다. 지역에 애정이 딱히 없다 해도,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곳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동아 3월호 표지.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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