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초코파이’ 오리온을 제약사업 뛰어들게 한 이 기술

[바이오 인사이드] 차세대 혁신 암 치료법 ‘ADC’

  • 유수인 뉴스웨이 기자 suin@newsway.co.kr

    입력2024-08-1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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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온-리가켐 M&A 배경에 ADC 있다

    • 2028년 시장규모 41조 원, 국내 제약사 기술 확보 안간힘

    • 위탁개발 생산 수요↑ 삼성·롯데 설비 투자 확대

    • 차기 모달리티 TPD, 연평균 27% 성장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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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5일 ‘초코파이’로 잘 알려진 오리온의 바이오 벤처기업 인수 발표 소식은 바이오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이종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흔치 않은 사례인 데다가 피인수 기업인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구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하 리가켐바이오)가 매년 수백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고 있었던 만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였다.

    1월 15일 오리온은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리가켐바이오]

    1월 15일 오리온은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리가켐바이오]

    ‌실제 오리온은 리가켐바이오 인수 발표 후 주가 폭락 사태를 맞이했다. 오리온의 주가는 인수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틀 만에 11만7000원 선에서 8만9800원으로 떨어졌고, 7월 1일 기준 8만~9만 원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오리온이 위험을 무릅쓰고 리가켐바이오를 인수한 까닭은 최근 신규 모달리티(치료 접근법) 확보에 열을 올리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전의 혁신신약(퍼스트인클래스) 개발을 통해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독성↓ 효과↑ 차세대 혁신 기술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란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제품을 뜻한다. 리가켐바이오의 주력 사업 분야인 ‘항체-약물접합체(ADC)’는 블록버스터 약물이 탄생한 이력이 있어서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가 특히 주목하는 시장이다.

    업계에선 ADC 시장을 향후 몇 년 동안 글로벌 제약사들이 투자를 계속 유지할 종양학 분야 최고 인기 부문으로 꼽는다.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Evaluate)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ADC 시장은 2028년 300억 달러(약 4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ADC는 표적 약제인 항체(Antibody)와 암세포를 죽이는 역할을 하는 세포독성 약물(Drug·페이로드)을 링커를 통해 결합하는 차세대 혁신 기술이다. 기존 세포독성항암제와 단일클론항체 약물의 단점을 보완한다. 표적 약제인 단일클론항체의 암세포에 대한 선택성과 결합된 항암제의 세포독성을 이용해 항암 효과는 높고 부작용은 적은 편이다.

    ADC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는 2019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와 일본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이면서부터다. 지난해 엔허투 매출액은 25억7000만 달러(3조5000억 원)로 2022년 12억5000만 달러(1조7000억 원)보다 2배 이상 더 증가했다. 올해 1분기 AZ 실적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제품도 엔허투로,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9% 증가한 4억6100만 달러(6300억 원)를 기록했다.

    이 같은 성장세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표적 암 치료의 획기적 기술을 획득하거나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ADC에 초점을 맞춘 M&A 및 파트너십 활동은 1000억 달러(138조 원) 규모에 달한다. 이는 2022년 대비 3배 이상, 2019년 대비 9배 증가한 수치다.

    ‌ADC 관련 빅딜 사례로는 글로벌 빅파마인 화이자가 ADC 전문기업 시젠을 인수한 건이 대표적이다. 화이자는 지난해 3월 시젠을 430억 달러(59조 원)에 인수했다. 화이자는 항암제 포트폴리오 강화 계획을 공개하고 ADC 등 차세대 기술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머크(MSD)도 지난해 10월 다이이찌산쿄의 ADC 3개 지분 인수를 위해 220억 달러(30조 원)를 선불 투자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엔 리가켐바이오의 기술이전 성과가 눈에 띈다. 회사가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사들과 맺은 기술이전 계약 규모는 누적 8조7000억 원에 달한다. 회사는 2015년 중국 포순제약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다국적 제약사 얀센과의 계약까지 13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얀센과는 2조 원(17억 달러)이 넘는 규모로 계약을 체결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리가켐바이오가 자체 개발한 ‘콘쥬올(ConjuALL)’ 플랫폼은 △항체의 특정 부위에 정확하고 일정하게 약물을 연결하는 기술 △ADC에 연결된 약물이 혈중에서 방출되지 않게 해주는 안전한 링커 △약물이 정상 세포 및 혈중에서 분해됐을 경우 세포독성을 일으키지 않도록 비활성화 상태로 유지시키는 기술이 결합돼 있다. 이 세 가지 중점 기술력이 포함돼 ADC의 궁극적 난점인 혈중 세포독성 약물의 방출, 정상 세포 공격에 대한 부작용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 제약사·CDMO, 기술 확보 총력

    ADC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복제약(제네릭) 위주로 성장해 온 전통 제약사들도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네덜란드의 생명공학 기업 시나픽스로부터 ADC 플랫폼 기술 3종의 사용 권리를 도입했다. 회사는 자체 개발한 c-MET(간세포성장인자 수용체) 항체와 시나픽스로부터 도입한 기술을 바탕으로 신약 후보물질 ‘CKD-703’을 개발하고 있다. 종근당은 2019년부터 시나픽스와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기존 기술 대비 우월한 효능과 안전성을 가진 ADC를 확보해 왔다.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전문의약품 자회사 동아에스티는 ADC 전문기업 ‘앱티스’ 인수를 통해 차세대 모달리티 신약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앱티스는 항체 변형 없이 위치 선택적으로 약물을 접합할 수 있는 3세대 ADC 링커 기술 ‘앱클릭(AbClick®)’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적용해 클라우딘 18.2 타깃 위암 치료제 ADC 등 다양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앱티스는 지난 4월 프로젠과 이중항체 ADC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프로젠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찾아가는 이중항체를 개발하고, 앱티스는 이를 연결하는 링커와 치료제 역할을 하는 페이로드를 만들기로 했다.

    최근에는 온코빅스와 ADC 기반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앱티스가 링커를, 온코빅스가 페이로드 개발을 담당한다. 온코빅스는 인공지능(AI) 약물 도출 플랫폼 기술인 토프오믹스(TOFPOMICS)를 활용해 신규 페이로드를 개발할 예정이다.

    동아에스티는 앱티스의 플랫폼 기술, 파이프라인 등을 인수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에스티팜, 에스티젠바이오 등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 창출에도 주력하며 중장기적으로 동아에스티만의 독창적 ADC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항체 신약 개발 플랫폼 기업 와이바이오로직스, 유엔에스바이오 등과 신규 ADC 항암제 개발을 목적으로 4월 3자 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3사는 각 기업의 혁신 기술과 전문성을 결합, 차세대 항암 신약 개발에 대한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하기로 했다.

    유나이티드제약은 ADC에 최적화된 독성 저분자 약물 개발을 담당하고, 회사와 서울대 기술지주가 합작으로 설립한 항암제 신약 기반의 연구소기업 유엔에스바이오가 ADC 개발 및 허가 과정을 담당할 방침이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ADC에 표적성을 부여하는 항체 개발을 맡는다.

    삼진제약은 지난해 1월 항체 신약개발 기업 ‘노벨티노빌리티’와 ADC 신약개발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새 기전의 페이로드 발굴에 나선 바 있다. 노벨티노빌리티는 삼진제약의 페이로드에 링커 기술을 활용해 ‘링커-페이로드 결합체(LP결합체)’를 개발키로 했다.

    올해 6월 3일(현지 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24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이하 바이오USA)에서 만난 이수민 삼진제약 연구센터장은 “항체 회사들이 개발한 새로운 항체와 우리 쪽의 페이로드를 결합한 차세대 ADC를 개발하고자 한다”며 “차별화를 위해선 새로운 항체와 새 페이로드의 조합으로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CDMO(위탁개발생산·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ADC 개발과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ADC 전문 CDMO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내 완공을 목표로 ADC 공장을 짓고 있다. 해당 공장에는 500ℓ 접합 반응기와 정제 1개 라인이 구축될 예정이다. 또 삼성물산과 함께 조성한 ‘삼성 라이프 사이언스 펀드’를 통해 차세대 ADC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 ‘에임드바이오’와 스위스 소재 기업 ‘아라리스 바이오텍’, 미국 소재 기업 ‘브릭바이오’ 등에 투자했다.

    CDMO 후발주자인 롯데바이오로직스도 ADC 역량 내재화에 나섰다. 지난해 4월 피노바이오와 전략적 업무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ADC 파이프라인의 항체 및 ADC 생산 우선 공급자 요건을 확보했고, 같은 해 7월엔 ADC 기술 플랫폼 내재화를 위해 국내 바이오 벤처 ‘카나프테라퓨틱스’와의 공동개발을 발표했다.

    또 미국의 비임상·임상 계약 연구기관(CRO) 전문 업체인 ‘NJ BIO(NJ바이오)’와 원스톱 ADC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NJ바이오는 링커-페이로드 및 ADC에 대한 통합 화학 및 생물학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사는 ADC 파이프라인의 핵심 구성 요소들에 대한 각 회사의 전문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신규 ADC 고객사 유치에 나설 방침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은 ADC에 국한하지 않는다.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넥스트 모달리티’ 발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유망 모달리티로 꼽히는 기술 가운데 하나가 표적단백질 분해제(TPD)다. TPD는 질병과 관련된 표적단백질(targeted protein)을 직접 분해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세포 내 표적에 대한 특이성이 높고 단백질 발현 감소를 유도한다.



    ‘넥스트 스텝’, TPD

    TPD에도 여러 모달리티가 있다. 아직까진 1세대인 프로탁(PROTAC)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엔 2세대 기술인 분자접착제(molecular glues)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분자접착제는 기존 단백질 분해 플랫폼 기술인 프로탁보다 분자량이 작은 물질로, 모든 단백질을 타깃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기술로는 접근이 어려웠던 표적에 대해서도 단백질을 분해해 적용 질환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TPD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루츠애널리시스에 따르면 글로벌 TPD 시장은 2021년 4억5200만 달러(6264억 원)에서 연평균 27% 성장해 2030년 33억 달러(약 4조57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기업 중에선 HK이노엔이 지난해 동아에스티와 비소세포폐암을 치료하는 TPD 신약 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유한양행도 TPD 기술을 보유한 사이러스테라퓨틱스와 MOU를 맺고 신약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미국 TPD 전문기업 프로테오반트 사이언스(현재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 지분을 인수하고 TPD 기술을 활용한 혁신 의약품 발굴 및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연내 파이프라인과 개발 일정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제넥신은 6월 26일 TPD 바이오프로탁(BioPROTAC) 플랫폼 기술 전문기업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이피디바이오)와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합병 세부 절차는 오는 10월 중 완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피디바이오 창업자인 최재현 대표와 회사의 핵심 연구진은 합병 후 제넥신 R&D 총괄임원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제넥신은 추후 주주총회를 거쳐 최재현, 홍성준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회사의 전체 R&D와 임상 개발을, 홍 대표는 사업 개발 및 경영관리 전반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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