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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판 실미도 부대’ 요원, 11차례 휴전선 넘어 특수임무 수행했다”

미군, 휴전 후 대북침투부대 운용했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나는 ‘미국판 실미도 부대’ 요원, 11차례 휴전선 넘어 특수임무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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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이 1953년 6·25전쟁 휴전 후에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를 중심으로 대북 첩보부대를 운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57년 창설된 이 부대 요원들은 이후 2년간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대부분 전사했다는 것.
  • ‘신동아’는 당시 한미 양국군 관계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미군이 종전 이후에도 한국인으로 구성된 대북 침투부대를 가동한 적이 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미국판 실미도 부대’ 요원, 11차례 휴전선 넘어 특수임무 수행했다”

반세기의 시간이 흐르고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 이제교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담배를 태웠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바람결에 스쳐가는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1957년, 그러니까 휴전이 성립되고 4년이 지난 뒤 미군이 대북작전부대를 가동했다는 내용이었다.

1949년부터 6·25전쟁 기간에 미8군이 관리한 KLO 등 대북 첩보부대의 한국군 요원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이와 함께 한국군이 운용한 HID 등 대북 첩보부대 이야기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6·25전쟁 후에 미군이 운영한 첩보부대, 그것도 일본에 거점을 둔 당시 극동사령부(Far East Command·FEC) 정보참모부(G2)의 직할부대가 한국군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군사(軍史)에 밝은 군 관계자 몇몇에게 전화를 걸었다. “개연성은 있지만 들어본 적은 없다”는 게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 국방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만약 사실이라면 기존에 알려진 부대들과는 사뭇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겠죠. KLO 부대 등은 1953년 여름에 모두 해체된 것으로 돼 있거든요. 특히 그 작전에 한국군 병사들이 차출되어 목숨을 잃었다면 지휘체계와 관련해 복잡한 측면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생존자를 만나는 것이 가장 급했다. 벌써 48년 전의 일, 우여곡절 끝에 한 제보자로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설득이 문제였다. 전화번호를 누르자 컬컬한 목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유가 뭐요? 다 잊고 사는 중인데….”

“올 필요 없다”는 노인을 겨우 졸라 주소를 확인했다. 사흘 뒤 눈이 많이 내린 1월 말 어느 날, 경인고속도로를 달려 인천으로 향했다. 주소만 들고 찾아간 자그마한 스포츠장비 가게에서 혼자 작업하고 있던 이제교(가명·69)씨를 만났다. 나이답지 않게 균형 잡힌 체격, 굵은 손마디,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간단치 않은 삶의 이력을 말해줬다.

인터뷰는 장시간 진행됐지만 당시의 이야기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잊고 살았던 기억,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파편처럼 흘려 보이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1957년 4월 한국군에 입대한 뒤 그해 가을 미군에 의해 차출되어 1957년 11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모두 열한 차례 휴전선을 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과정에서 42명의 부대원 대부분이 사망했고 3명만이 생존했다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기사 후반부 참조).

“195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어렵사리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가 말하는 부대의 존재를 공식 기록이나 문서로 확인하는 작업은 난공불락이었다. 우선 병력차출 등과 관련해 기록이 있다면 이를 보관하고 있을 국방부와 국군정보사령부는 대북 첩보부대 및 작전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언론의 확인 요청은 물론 국방부 산하 연구소의 접근도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 공식·비공식적인 타진은 모두 좌절됐다.

이는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대북첩보부대 운영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2월1일 미 국방부에 질의를 등록하고 수차례에 걸쳐 체크했지만, 3월15일 현재까지 ‘Unresolved(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다못해 이씨의 파견근무기록이라도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992년 이전의 군 복무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인사기록센터(National Personnel Records Center·NPRC)에 공식 양식을 작성해 제출했지만, “이씨는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이 매우 어렵고, 확인한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성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생존해 있는, 1950년대 후반 한국군의 장성급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뜻밖에도 이들은 대부분 종전 이후에도 한국군에서 차출된 병력으로 구성된 첩보부대가 미군의 지휘통제를 받아 대북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일반부대 병력을 차출했느냐 정보부대 소속 병력을 차출했느냐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상당수 인원이 휴전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된 사례는 듣거나 접한 적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당시 사단장을 지낸 한 퇴역 장성의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전쟁 당시부터 상당기간 많은 한국군 요원이 차출되어 미군 공군기로 북한에 침투해 정보수집이나 거점확보 임무를 수행했고, 주로 해상을 통해 귀환했습니다. 살아 돌아온 이들도 있었지만 사망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동해상에서 구명정에 의지해 표류하고 있는 요원들을 직접 구한 경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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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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