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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 기행

핏빛 동백꽃 내려앉은 소설 ‘남부군’의 무대

용암마을

  • 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핏빛 동백꽃 내려앉은 소설 ‘남부군’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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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동백꽃 내려앉은 소설 ‘남부군’의 무대

용암골 저수지 옆길.

누구에게나 정든 곳이 한두 군데 있다. 대상은 다양하다.

가수 최백호에게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이나 ‘밤늦은 연락선 선창가’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술집도 되고 밥집도 되고, 어느 특정 지역도 된다.

누군가 나에게 전라도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사아고오옹의 밴노래 가아물거리는’ 유서 깊은 목포도 아니고, 청춘의 한 시절 살벌한 현실에 쫓겨 서너 달 숨어 지냈던 순천 송광사도 아니다. 하기야 보조국사 지눌이 꽂은 지팡이가 지금의 나무가 됐다는 곱향나무와 눈빛이 형형한 날선 행자승들이 도를 닦던 공양간 옆 구석방은 지금도 가끔 그립다.

그뿐인가. 한나절 절 뒤편으로 올라가면 법정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던 불일암도 눈에 아련하다. 암자 지붕을 훌쩍 넘기며 커다랗게 자란 지금의 파초는 그 시절 묘목에 불과했지만 감나무만큼은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징한’ 전라도 사투리

그럼에도 전라도에서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곳은 영광 땅이다. 영광 땅에 처음 틈입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시골에서 올라온 초년생 시절 나의 하숙집 룸메이트는 영광 출신이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징한’ 전라도 사투리, 가끔은 다른 문화에 불편해하기도 했지만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그해 여름방학 전라도 영광 땅을 밟았다. 요즈음 세대에게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난한 1970년대 끝자락, 도 간 경계를 건너뛰어 여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의 금호고속으로 이름을 갈아치운 광주고속 버스를 타고 광주시 학동 광주고속 전용 터미널에 내려 시외버스를 시간 반 타고 가다 보면 영광에 진입하게 된다. 전라도 호남평야, 탁 트인 벌판이었지만 하루 꼬빡 차멀미에 질린 나에게는 멀고 먼 오지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날 차창으로 보았던 넓은 호남벌은 성장기 산간벽지에서 자란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친구 찾아 강남 간다’는 말처럼 들뜬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초록빛 영광 벌판은 지금도 내 마음에 뚜렷이 남아 있다. 내 나이 막 스물을 넘긴 시절이었다.

핏빛 동백꽃 내려앉은 소설 ‘남부군’의 무대

연안 김씨 종택 내 조상을 모신 방.

그리고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30년 만에 영광으로 오지기행을 떠나는 날도 여전히 설다. 갈래갈래 잘 닦인 고속도로 덕분에 이제는 불과 네댓 시간 만에 영광에 닿는다. 찾은 곳은 영광군 군남면의 용암골 인근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을 단순히 영광스럽다는 의미의 영광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 신령할 령(靈)자에 빛 광(光)이다. 그래서 군이 내건 슬로건도 ‘천년의 빛’이다.

읍내를 벗어나 서남향으로 달리다 보면 목적지인 용암골에 앞서 동간리 입구에 위치한 연안 김씨 종가가 나타난다. 고종 때 지어진 반가의 고택으로 바깥 대문채부터가 범상치 않다. 하지만 대문은 커다란 복고풍 자물쇠로 잠겨 있고 인적은 간 데 없다. 특기할 것은 네 귀에 높은 기둥을 올리고 위쪽에 ‘삼효문’을 올린 독특한 형태의 2층 구조라는 것. 삼효문은 연안 김씨의 6대손과 11대손, 12대손의 효성이 지극해 조정에서 내린 것이라고 전한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다해 지방의 토호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던 때 지어진 연유로 여느 반가와는 달리 아흔아홉 칸을 훨씬 넘긴 145칸이나 되는 거대한 종택이다. 궁궐이 아니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용머리 문양을 삼효문에 새기기도 했고, 안채에는 무엄하게도(?) 왕실에서만 허락되던 다섯 계단을 놓았다.

더구나 종택 한편 제사를 모시는 컴컴한 별실에는 영정과 함께 망자의 신발, 모자, 담배 곰방대까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어 다소 기괴한 느낌을 준다. 한 세기를 넘긴 영정과 망자의 물건들을 보다 보니 봄날이 당최 봄날 같지 않은 음산한 기분이 든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마당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다. 죽은 지 서너 해 된다는 느티나무의 위용이 대단하다. 나무를 옮기는 와중에 뿌리를 흙으로 덮어 질식해 죽었다고 뒤늦게 나타난 종택 관리인 이광춘 씨가 전한다. 그래서 남녘 마을을 지키는 수많은 느티나무가 오로지 숨 쉬기 위해 뿌리를 민망하게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비올레타와 미당의 동백꽃

핏빛 동백꽃 내려앉은 소설 ‘남부군’의 무대

아낙네들이 양파 재배로 분주하다.

연안 김씨 종택을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이번 목적지인 군남면 용암마을이다. 빨치산을 소재로 한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 등장하는 바로 그곳, 영광벌 서남, 서해 방향 호남벌 중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외진 곳이다. 미처 북으로 달아나지 못한 빨치산들은 바로 이곳 용암골 뒷산을 이용해 백두대간으로 향하는 고달픈 걸음을 옮겼고 그 와중에 마을은 국군과 빨치산에 의해 두 번이나 불타는 아픔을 겪었다.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영광벌 인근에서는 숲이 검고 깊어 빨치산들이 접선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는 게 이 마을 배명환(69) 이장님의 설명이다. 그런 그는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빨치산에 관한 얘기는 손사래를 치며 화제를 돌린다. 애써 말을 접는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고난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용암골 뒤 골짜기에 연흥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대처 사람들에게 영광 하면 인근 불갑면에 위치한 불갑사가 유명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연흥사를 더 사랑한다고 한다. 불갑(佛甲)이란 불교(佛)가 맨 처음(甲) 도래했다는 의미. 모악리 불갑사는 한국 불교의 첫 전래지로 유명한 고찰인데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에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백제 문주왕 때 행은이 창건했다는 설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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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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