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도 위원장은 공직자 재산신고 때 부인과 장남 명의로 되어 있는 이 땅을 모두 합쳐 6억2040만원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변에 각종 산업시설,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이 땅 쪽으로 용인개발이 확산되고 있으므로 땅의 활용가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농지의 경우엔 평당 50만원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부동산중개업소가 추정하는 시세는 최 위원장의 신고액보다 2배 정도 높았다.
“성산동 농지 사려 주소 옮겼다”
최 위원장의 해명을 들어봤다. 최 위원장은 “아내와 장남이 주소지를 옮긴 오산리 189번지는 임야를 관리해주는 현지 관리인과 관련된 번지”라고 말했다.
“부인과 장남의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 편법을 썼다”고 시인했다. “위장전입을 통한 토지 매입으로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투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투기 목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최 위원장은 “가족 묘지를 마련해두려는 차원에서 이내와 장남 명의로 사둔 것이다. 그러나 국도가 확장되고 산이 평평해지면서 묘지로 활용하려는 계획은 없었던 것이 됐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부인의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 위원장의 경우 부인은 물론, 10대 아들까지 위장전입에 동원됐다.
최 위원장 본인도 위장전입을 통해 농지를 매입하려 했다. 최 위원장은 1986년 3월 이후 2005년 3월 현재까지 20년 동안 줄곧 서울 서초구 반포동 H빌라에서만 거주해왔다. 그런데 최 위원장은 이 기간 중 단 한 차례, 주민등록상 주소를 서울 마포구 성산동으로 잠시 옮겼다 다시 원래 주소로 옮긴 적이 있다. 즉, 최 위원장은 1989년 5월5일 서초구 반포동 H빌라에서 마포구 성산2동 200번지 부근으로 주소를 옮겼으며, 한 달여 뒤인 1989년 6월17일 다시 반포동 빌라로 주소를 이전한 것이다.
이때 부인 신씨와 차남도 최 위원장과 같은 날 성산동 같은 주소지로 옮겼다가 같은 날 반포동 원래 주소지로 돌아왔다. 성산동 해당 주소지의 세대주는 차남으로 돼 있었다. 1989년 당시 차남은 20대 초반이었다.
반면 반포동 H빌라에 함께 거주하던 장남(당시 23세)은 가족이 주소지를 옮겼다 되돌아오는데 동참하지 않고 반포동 빌라에 그대로 주민등록을 두고 있었다.
주민등록상의 주소 변경만 놓고 보면 최 위원장과 부인, 장남, 차남은 반포동 빌라에 함께 거주하다가 최 위원장과 부인, 차남이 장남만 반포동 빌라에 남겨둔 채 성산동으로 이사했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반포동 빌라로 이사 온 것이 된다. 이는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나이 어린 차남이 세대주가 되고 변호사인 부모가 그 밑으로 들어간 것도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성산동사무소에 따르면 최 위원장 부부와 차남이 주소지를 옮긴 1989년 당시의 성산2동 200번지는 난지도 쓰레기 처리장에 인접한 서울의 변두리 지역으로,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택지였다.
위의 이유를 열거하며 기자가 “성산동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한 달 만에 빼내간 이유가 석연치 않다”며 구체적인 해명을 요구하자 최 위원장은 “성산동의 부동산을 하나 사려 했는데 지목이 농지였다. 차남에게 증여해서 차남 명의로 등기하기 위해 나와 아내, 차남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성산동으로 일시적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뜻대로 이 농지를 매입하지 못해 이내 반포동으로 주소를 되옮겼다. 불발탄이었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최 위원장이 성산동으로 주민등록 주소지를 옮긴 것은 농지매입 자격 취득이 실제 목적이었다. 한 달 사이에 반포동-성산동-반포동으로 주소지를 옮긴 사실을 보면 농지 취득에는 실패했지만 성산동으로의 주민등록 주소이전은 성산동에 거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농지취득용 위장전입에 해당한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부인 신씨와 장남이 용인의 농지와 임야를 취득할 때 이미 사용했던 ‘한 달 간격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 옮겼다 농지를 취득한 뒤 다시 빼기’ 방식과 흡사하다.
최영도 위원장은 본인, 부인, 장남의 재산이 총 63억63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차남 등의 재산내역은 고지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