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고영구씨의 국가정보원장 임명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2002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Q씨를 비롯한 노무현 당시 당선자 측근들이 고영구씨를 국가정보원장으로 천거하자 노 당선자는 즉석에서 “나와는 껄끄러운 사이인데…”라고 답했다는 것. Q씨는 “그러나 대통령 당선자는 개인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참모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고씨가 그대로 국정원장에 발탁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고 원장은 1990년대 초 민주당에 함께 몸담은 적이 있는데 그때 당내 문제로 의견충돌을 빚어 관계가 소원했다고 한다. 1997년 대선 때는 고 원장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지원했는데, 이 또한 노 대통령과는 다른 길이었다. 고영구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의 진보적 변호사여서 그의 국정원장 임명에 대해 일부 언론과 야당에선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적어도 임명 초기에 노 대통령은 고 원장과 그리 코드가 잘 통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극상’이냐, ‘정실인사’냐
서동만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경질은 그 이유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였다. Q씨는 “서 실장의 경질도 노 대통령-고 원장의 소원한 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동만 실장은 고 원장이 노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국정원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원 간부 인사에서 개혁적인 인물의 과감한 기용을 주장하는 서 실장과 온건한 노선을 택한 고 원장이 갈등을 빚었으며, 급기야 회의석상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Q씨는 “청와대 한 수석비서관이 이를 ‘하극상’이라고 판단했으며, 서동만 실장의 경질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결국 경질 요청을 수락했는데, 서 실장은 이런 청와대의 움직임을 미리 알았으며 자신의 경질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청와대측과 상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Q씨의 이런 주장은 서 실장이 밝힌 본인의 경질 배경과 사실관계에서 거의 일치한다(82쪽 서동만 인터뷰 기사 참조). 다만 서 실장은 고 원장의 인사 스타일을 ‘정실인사’라고 주장한 반면 Q씨는 “고 원장의 인사 스타일엔 문제가 없는데 서 실장이 하극상을 일으켰다”며 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강철, 정무수석은 낙점 못 받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대검 중수부의 여야 대선자금 수사 등 노무현 대통령과 검찰의 관계도 특별했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검찰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자신의 주변을 너무 심하게 뒤진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노 대통령과 검찰은 긴장 관계로 비쳐져 왔는데, 이런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는 검찰 간부가 있다고 한다.
Q씨는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장관 인선은 직접 챙겼다. 차관 인선은 대부분 참모들의 뜻에 따랐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대통령이 차관에 임명하라고 직접 지시해 그렇게 된 경우가 있다. 정상명 당시 법무부 차관(현 대구고검장)이 바로 그다”고 말했다.
Q씨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법무부 차관 인선만큼은 내 뜻대로 했으면 합니다. 정상명씨를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했으면 합니다”라고까지 했다는 것. 정상명씨의 성품과 자질에 대해 단순한 사시 동기(17회) 이상의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최근 검찰총장 인선에선 사시 15, 16, 17회가 모두 물망에 올랐으나 15회인 김종빈씨가 내정됐다.
‘무관의 실세’로 통하던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은 2004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추천을 받기도 했으나, 노 대통령은 적임이 아니라고 봤다고 한다.
Q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에서 특정지역 차별, 편가르기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경북 출신인 허준영씨의 경찰청장 임명이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는 것. 인수위 시절 이광재 현 의원, 신계륜 현 의원 등 당선자 측근 4명이 청와대 치안비서관 후보 명단을 당선자에게 올렸다. 그런데 네 그룹 중 세 그룹이 허준영 당시 강원지방경찰청장을 천거해 그가 치안비서관이 됐다고 한다. 허씨는 이후 단기간에 서울경찰청장을 거쳐 경찰청장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