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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팬택 박병엽 부회장이 넥타이 풀고 털어 놓은 야전 인생 44년

“돈보다 情, 甲보다 乙, 인재보다 사람”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팬택 박병엽 부회장이 넥타이 풀고 털어 놓은 야전 인생 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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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들어가지요. 박 부회장의 놀라운 성공기는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장 과정은 크게 알려진 바 없는데요. 고향이 전라북도 정읍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정읍군 감곡면 유정리입니다. 6남매 중 막내고요. 누나가 셋, 형이 둘. 양조장집이라 제법 잘 살았어요. 누나들을 다 서울의 대학으로 유학 보냈고, 저도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가죽 가방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보자기 둘러메고 다녔어요. 쪽 팔려서.”

-다른 친구들이랑 다른 게 창피했나요.

“가방만 그런 게 아니라 신발도 운동화 대신 고무신 신고 다녔어요. 어색하잖아. 친구들은 그런 거 하나도 없는데. 폼 잡는 것 같고 잘난 체하는 것 같고, 동료의식도 없는 놈 같지 않아요?”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이 뭔가요.



“뭐 그런 거라기보다 생각나는 게, 전 등하교 때 내 가방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애들이 다 해줬거든. 주먹이 센 편이었지만 인심을 잃지는 않았고. 급장을 했는데, 건빵 같은 걸 직접 나눠주잖아요. 그러면 한 반 50, 60명한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했어요. 친구들도 잘 도와주는 편이었지요.”

-서울로 이사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무엇보다 막내인 절 빼곤 자식 전부가 서울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상경 후 아버지께선 자동차 폐차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은 그저 그랬나봐요.”

-가세가 기운 건 언제부터였나요.

“이사 와 처음에는 은평구 녹번동 보일러 있는 2층집에 살았어요. 그런데 처음 사단이 난 게, 저 6학년 때 세 살 많은 둘째형님이 백혈병에 걸렸거든요. 6개월 살면 다행이라 그랬는데 1년 8개월을 투병하다 죽었어.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가 죽은 형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많이 울었어요. 형제 중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거든. 형 뒷바라지하느라 돈 엄청 날렸죠. 또 아버지가 보증 서길 좋아하셔서 온 집안에 빨간 딱지 붙는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결국 중학교 때 정릉 산동네로 이사를 갔죠.”

“청와대 경호실장 하는 우리 매형…”

-마침 사춘기였을 텐데…. 외로웠겠네요.

“쓸쓸했죠. 얘기할 상대도 없고. 그래도 단칸방 아닌 단독 전세를 살았는데, 난 사실 그게 더 불편하고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갈등이 인 것이, 부모님 입장에선 살던 가락이 있으니 독채를 고집하고 싶으셨겠지만 어쨌거나 돈이 없어 정릉 3동에서만 네 번씩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였잖아요. 요금을 못 내 전화 끊긴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꼭 독채를 고집해야 하나….”

-가난해서 많이 힘들었나요.

“일단 용돈이 부족했죠. 명절 때도 남들이 기름덩이라고 내다버리는 싼 고기만 사다 먹고. 그나마 매형들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

-공부에 몰두하기 어려웠겠군요.

“그냥 가난한 게 아니라, 뭐 다 말하기 힘든 이유로 집안이 늘 소란스러웠거든요. 부모님께선 그래도 제 학원비만큼은 어떻게든 챙겨주셨는데…. 그저 그런 실력이었지만 좋아하는 과목, 예를 들어 정치경제, 사회 같은 것들은 곧잘 만점도 받고 그랬어요.”

여기서 그는 불쑥 ‘청와대 있는 매형’ 얘기를 꺼냈다. 김세옥 청와대 경호실장을 말하는 거다. 안 그래도 언제쯤 물어볼까 싶었는데, 냉큼 앞질러 확실하게 김을 빼버렸다. 역시, 감이 빨랐다.

“제가 고등학생 때 경장이었는데 한 달에 2만~3만원씩 용돈 보태주시며 격려도 많이 해줬어요. 아주 시계처럼 정확한 인사거든. 그분 보며 바르게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지요.”

-어떤 학생이었나요.

“중학교 2학년 땐가, 새마을 지도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처럼 제게 “이 화단 좀 가꿔보라” 하시는 거예요. 두말없이 아침 저녁으로 그 일을 했죠. 한 7개월쯤 지나니 비로소 선생님께서 인정해 주시데요. 그래서 각 학년 수석만 가는 새마을운동 모범지역 탐방단에도 끼고 그랬어요.

친구들 사이에선 리더십 있는 애로 통했어요. 신선한 발상이랄까 새로운 사고랄까, 나한테 그런 면이 좀 있었거든. 대학 때도 한 달에 한 번씩 고려대, 서강대 다니는 친구들이랑 모여 세미나를 하고 그랬어요. 경영이나 리더십, 그런 분야 책은 많이 읽었으니까.”

-친구들한테 인정받은 또 다른 뭔가가 있었나요.

“좀 자신 있는 게, 안 되는 일을 곧잘 되게 했거든요. 여행 가서도 굶겠다 싶으면 미리 대책을 세워놓고. 위기 때 리더십을 발휘한달까.”

-주먹질도 제법 한 편인가요.

“안 그랬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땐가 어떤 덩치 큰 친구가 절 위협하데요. 굉장한 두려움을 느껴 두말할 것 없이 “내가 졌다, 잘못했다” 그랬지요. 그래놓곤 잘 다독여 내 똘마니로 만들어버렸어요. 물론 언젠가 저랑 엇비슷한 놈이 한참 까불 때는 아주 쌍코피가 나도록 두들겨 패준 적도 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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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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