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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환단고기의 진실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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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이름을 ‘추모’로 밝히고 있는 광개토태왕릉비.

지금 전해지는 삼국사기는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바로 그 책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삼국사기는 조선 태조 3년인 서기 1394년 김거두란 사람이 그때까지 전해진 삼국사기를 토대로 새로 목판을 만들어 찍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 삼국사기는 빠진 글자가 있어 완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조선 중종 때인 1512년 이계복이 김거두의 삼국사기를 개판(改版)해서 새로 찍어냈으며 이것이 오늘날 한글로 번역되고 있는 삼국사기다.

1512년에 인쇄된 삼국사기가 고구려의 사실을 더 많이 담고 있을까, 고구려 당대에 세운 광개토태왕릉비가 사실에 가까운 진실을 더 많이 담고 있을까. ‘사실(史實)’은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조작될 수 있지만, 사람의 이름을 조작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더구나 광개토태왕릉비는 아들이 아버지를 자랑하기 위해 세운 것인만큼 시조의 이름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시조 이름을 ‘추모’로 부르는 것이 옳은데, 현대에 나온 모든 사서는 동명성왕을 주몽으로 부르고 있다. TV 드라마까지 주몽으로 불러, ‘고구려 시조는 주몽’이란 인식이 고착화된 상태다.

한글의 뿌리를 연구해야

추모 이야기를 거론한 것은 첫째, ‘고구려 시조 이름을 당대 이름에 가깝게 바로잡자’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고대 우리 민족이 쓰던 말을 한자로 옮기다 보면 다르게 적힐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삼국사기에 ‘북부여 속담은 활을 잘 쏘는 아이를 주몽이라고 하였다’는 대목이 있으므로 추모와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아이를 뜻하는 고구려 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고구려 말 발음을 한자로 옮길 때 추모로 적을 수 있고 주몽, 중해로도 적을 수도 있다. 추모와 주몽, 중해가 발음이 비슷하듯 원시 한글을 뜻하는 ‘가림토’와 ‘가림다’도 발음이 흡사하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고려 말의 이암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고려 말 우리 민족은 가림토와 발음이 비슷한 원시 한글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자가 조선 세종조의 집현전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쳐 훈민정음이 탄생했을 수도 있다.

위서 시비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가 주목받는 것은 정확성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기록을 남기지 못한 옛날의 사실(史實)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추적해볼 수 있는데, 요즘 실시된 고고학적 발굴로 새로이 밝혀지는 사실 중에 환단고기의 내용과 일치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렇다면 가림토와 가림다 문자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집현전의 학자들이 아무리 위대해도 사람이 입과 목을 이용해 발음하는 것을 보고 수년 사이에 훈민정음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자는 쉽게 창안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대한 학자들도 무엇인가로부터 힌트를 얻어야 역사적인 창조를 할 수 있다. 한글을 사랑하는 학자라면 한번쯤 환단고기의 진위부터 한글의 시원(始原)까지 모든 것을 연구해봐야 하지 않을까. 집현전 학자들이 환단고기에 제시된 가림토(가림다) 문자를 발굴해 그것을 토대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이 옳은지를 추적해보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치우 등장시킨 환단고기

사실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축구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는 치우천왕이 그려진 엠블럼을 들고 나왔다.

언제부터 우리는 치우를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게 됐는가. 치우를 단군보다 앞선 우리의 조상으로 인식하게 해준 것은 바로 환단고기다.

물론 1911년에 편찬된 환단고기에 앞서 치우를 우리 선조로 규정한 책이 있었다. 1675년(조선 숙종 1년) ‘북애노인’이라는 호를 쓴 사람이 펴낸 ‘규원사화(揆園史話)’가 그것이다. 그런데 규원사화는 사서(史書)가 아닌 사화, 즉 ‘역사 이야기책’이란 이유로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규원사화에 담긴 내용이 100% 허구일 가능성은 매우 작다. 일부는 분명 진실일 텐데 우리의 사학자들은 이를 위서로 단정짓고 아예 연구조차 하지 않았다.

규원사화가 살려내지 못한 치우를 환단고기가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그것도 단군에 앞선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치우는 중국인의 조상?

그런데 치우가 우리 조상이 아니라 중국인의 선조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사실이 중국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다면 치우를 앞세우며 좋아했던 한국인은 정말 우스운 존재가 된다. 문제는 치우를 중국의 선조로 만들려는 작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황제, 염제와 더불어 치우를 중국인의 3대 시조로 꾸미고 있다.

중국인을 가리켜 자칭, 타칭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한족은 진시황에 이어 한(漢)고조 유방이 두 번째로 중원을 통일하고 난 다음에 생겨난 이름이다. 한나라가 등장하기 전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은 ‘하화족(夏華族)’이었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하화족은 중국을 이룬 전설상의 인물인 3황5제 가운데 5제의 첫 번째 인물인 황제를 시조로 여긴다. 한민족 하면 단군의 후예를 지칭하듯, 하화족은 황제의 후손을 의미한다. 하나라는 5제 중 한 명인 우(禹)가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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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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