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병·의원 처방전 80% 이상 마약류… 간질·우울증 치료제 등 허가외 약물 무차별 처방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8-12-05 15:1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마약류 처방 중 85%가 가임기 여성에게 발급…美 FDA “복용 부적절”
    • 37%가 마약류 처방 30일 제한권고 어겨…3개월 이상 처방도 4.7%
    • 마약류 미성년자에게도 처방…임산부,수유부도 체중조절약 복용
    • 2~3가지 마약류를 허가외 약물과 섞어 매일 3번씩 최대 300일간 처방
    • 체중조절 약물 복용자 66%가 부작용 경험, 57%가 약 이름도 몰라
    • 마약류 식욕억제제 복용량 세계 2~3위, 국제마약감시기구 자제 요청
    • 한국 비만율 OECD 평균보다 10% 이상 낮아…최하위권, 제일 날씬
    • 주요 국가 중 마약류 식욕억제제 허가국은 한국, 미국, 캐나다(일부)뿐
    • 식약청이 ‘마약류 식욕억제제 허가 국가 현황’을 보고서에서 삭제한 까닭
    • 연구 주관 시민단체…“식약청이 연구보고서 공개 막았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기자의 키는 173cm, 몸무게는 97kg, 지난 10월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 비만도는 147%였다. 검진결과표에는 비만도를 현재 몸무게를 이상적 체중‘(신장-100)×0.9’으로 나눈 값이라고 정의했는데, 80% 이하면 저체중, 120% 이상이면 비만이라 했다. 기자는 비만도가 147%이니 비만에서도 고도비만에 드는 축. 검진표는 또 “뇌졸중, 심근경색, 당뇨병, 고혈압의 위험이 일반인보다 3~7배 높다”며 비만 2단계임을 경고하고 음주를 피하고 운동 할 것을 권했다.

    그런데 정작 검사결과를 자세히 보니 혈압과 혈당치는 모두 정상 범위 안에 있었고, 다만 지방간이 좀 있는 상태였다. 검진 담당 의사에게 “뭐 아직 괜찮네요”라고 말했다 심한 면박을 당한 후 “앞으로 열심히 운동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의사는 또다시 기자를 윽박질렀다.

    “당장은 운동도 하지 마세요. 살이 너무 쪄서 무릎관절 다 망가집니다. 식이요법으로 어느 정도 살을 뺀 후에 그때부터 빨리 걷든지 뛰든지 하세요. 정말 이대로 가면 죽어요. 죽는다고요.”

    멍했다. 의학담당 기자 생활을 10년 했지만 이런 파국의 상황에 이르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21세기 인류가 이뤄놓은 최첨단 의약품에 의존해 일단 살부터 빼보기로 했다. 우선 서울 시내에서 약물을 이용해 단시간에 확실하게 살을 빼준다고 소문난 병의원부터 찾기로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니 비만치료제를 이용해 살을 빼준다는 병의원 광고가 넘쳐났다.

    살 빼는 약 알고 보니 마약류



    그중에서 한 곳을 찾아가 건강검진표를 내밀었다. 살 잘 빼기로 소문난 의원이 가정의학과나 내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인 게 좀 의아했지만, 일단 처방전을 받아보기로 했다. 의사는 거두절미하고 “얼마나 처방해줄까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자주 못 오니까 많이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그럼 한 달 먹을 거 드릴게요. 살이 적게는 7kg, 많게는 15kg까지 빠질 겁니다. 그때 또 오세요”라고 했다. 운동을 하라거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라는 말도 없었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기자가 병의원에서 받은 비만치료 처방전과 약들. 마약류 범벅이다.

    처방전을 받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약품명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에 먹어야 할 약이 6알. 그중에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먹는 항우울제와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과 위험성이 큰 마약류 의약품, 즉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약품)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뇨제도 보였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딱 이럴 때 쓰는 말. 처방전의 일부 약 이름은 보는 순간 어떤 약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근처 PC방에 들러 대한약사회 홈페이지의 의약품 검색 코너에 들어가 약 이름을 차례로 쳐 넣었더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6알의 약품 중에 마약류인 향정약품이 2알(각성제, 항불안제)에 항우울제, 이뇨제, 종합감기약, 심지어 간질 치료제까지 들어 있었다.

    처방전을 들고 의원을 찾아가 “어떻게 비만을 치료한다면서 마약류와 정신계 약물을 무더기로 처방할 수 있느냐”고 따지니 이비인후과 원장은 “먹어도 된다고 정부 허가가 난 약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처방은 의사의 고유권한인데 왜 그러느냐”고 오히려 기자를 나무랐다. 인근에 있는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밀며 “이 의원 원래 이렇게 향정을 많이 처방하느냐”고 물었더니 약사는 “한 달에 200~300건 처방이 나온다”고 귀띔해줬다.

    향정약품은 중추신경계(뇌세포)에 작용해 정신 상태나 정신기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의 총칭이다. 계속 사용하면 약효가 차츰 줄어들어 용량을 늘려야 하며, 중독성과 습관성이 있어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현저한 위험이 있다고 인정된 약물이다. 1~4군이 있는데 1군과 2군은 범죄에 많이 사용되는 약물인 L.S.D와 메스암페타민, 필로폰, 각성제인 염산메칠페니데이트, 3~4군은 그보다는 조금 중독성이 약한 벤조디아제핀계 항불안제가 속한다. 이 모두 마약, 대마와 함께 마약류로 지정돼 일반인의 수집, 거래가 금지되어 있으며 오남용할 경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처벌받게 돼 있다.

    기자에게 처방된 향정약품 중 각성제는 2군에, 항불안제는 3군에 속해 있다. 살 빼는 약을 달라고 했는데 왜 의사는 이런 약들을 권한 것일까. 우선 처방된 향정약품의 제품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한결같이 이상반응과 주의사항 난에 ‘때때로 구역, 구토, 식욕부진’과 같은 부작용이 설명돼 있었다. 흔히 마약중독자들이 금단증상(오한, 발열, 환각, 정신이상)에 시달리다 뼈만 앙상한 채 숨을 거두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이미 자살을 충동질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우울증 치료제를 살 빼는 약으로 처방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마약류 처방은 합법?

    현재 국내에 비만치료제로 정식 허가된 의약품은 식욕억제제인 리덕틸과 지방대사 억제제인 제니칼 두 종류뿐. 그렇다고 향정약품이나 우울증 치료제를 식욕억제제(비만치료제)로 쓰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의사들이 향정약품이나 우울증 치료제에 대해 “허가가 나 있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다. 향정약품의 고유 효능과 효과는 비만치료가 아니지만 부차적 효능에 식욕억제 효과가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각성제는 주의력결핍장애 치료제로, 항불안제는 불안과 긴장 증세 치료제 등으로 정식 허가가 나 있지만 식욕억제제로도 쓰이는 게 바로 그런 사례. 약을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구갈 구역 구토 메스꺼움 등 부작용(副作用)이 오히려 약물의 부차적 효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딱히 이들 향정약품이 비만치료제로 허가가 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식욕억제제로 사용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이들 약이 모두 임상시험과 독성시험을 통과해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시판 허가가 난 약품의 처방권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있다. 다만 다른 용도로 쓸 땐 보험급여를 신청하지 않으면 될 뿐이다. 이들이 모두 보험급여에서 제외되어 있다 보니 정부는 향정 식욕억제제가 어디서 얼마나 쓰였는지 정확한 통계를 잡을 길이 없다. 다만 식약청은 이들 향정약품의 비만치료제 사용을 한 번에 한 제품만 쓸 것과 4주 동안(대한비만학회 가이드라인)에 한정토록 권고하고, 고혈압치료제나 간질치료제, 이뇨제 등 허가외 약품과의 병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허가외 약품의 향정약품 병용 처방으로 처벌받은 병의원은 전무한 상태다.

    이처럼 이미 국내에는 향정약품과 허가외 약품을 비만치료용으로 섞어 쓰는 처방 관행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버젓이 이런 처방을 내는 병의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블로그와 게시판도 적지 않다.

    약물로 살을 빼준다고 인터넷과 귀동냥으로 알아낸 서울시내와 수도권 비만클리닉 4 곳을 찾아가 건강검진표를 내보이면서 살 빼는 약 처방을 부탁했다. 비록 앞서의 이비인후과만큼은 아니지만 처방전엔 1개 이상의 향정약품에 허가외 약품이 하나 둘씩 섞여 있었다. 간질 치료제, 고혈압 증상 완화제, 당뇨병 약, 제산제, 해열진통제, 종합감기약, 항우울제 중 하나는 꼭 들어갔다. 심지어 의원들 중에는 정부의 향정약품 권고치(4주)를 무시하고 두 달치를 한꺼번에 처방해주는 곳도 있었다. 병용 처방 금지 규정과 처방제한 권고를 어겼지만 의사들은 매번 기자의 항의에 “당연한 일을 했는데 뭐가 잘못됐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비만치료에 향정약품과 허가외 약품의 병용 처방을 남발하는 이런 세태는 과연 기자의 경험에 한정된 것일까.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에 이에 대해 문의했지만 정확한 통계치나 조사 결과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 수소문 끝에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실에서 식약청이 발행한 비만치료제 처방분석 연구보고서를 입수했다. 400쪽에 가까운 이 보고서의 정식 명칭은 ‘비만치료제 소비자행태조사 및 효율적 사용방안 연구’. 발행처는 식약청이고 주관 연구기관은 (사)소비자시민모임이었다. 연구기간은 2007년 7월부터 2008년 5월30일까지였으며 연구용역비는 5000만원. 시민단체가 주관연구기관이지만 식약청이 예산을 들이고 확인작업과 세미나를 거쳐 보고서를 발행했으므로 이는 정부의 공식 조사보고서로 인정된 셈이다. 보고서는 무슨 영문인지 ‘대외비’로 지정돼 있었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밀수입 단속 때 걸린 마약류 의약품. 향정신성 의약품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악용될 소지가 크다.

    마약류 범벅 황당한 처방전

    하지만 읽어 내려간 지 얼마 안 돼 기자는 그 보고서가 ‘대외비’로 지정된 이유를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의사들의 각종 이해단체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만치료를 위해 병·의원에서 약물을 처방받은 우리 국민 788명의 처방전 2633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80.4%인 2116건에 향정약품이 섞여 있었으며 788명 중 554명, 즉 71.2%가 향정약품을 처방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에는 16~20세의 미성년자도 23명(4.2%)이나 포함돼 있었다. 향정 식욕억제제의 대부분은 미성년자에 대한 처방이 금지되어 있으며 제약사는 이 같은 내용을 제품 설명서의 주의사항에 담고 있다.

    항정약품을 처방받은 554명 중 여자는 536명(96.8%)으로, 이 중 대부분(약 85%)이 가임기인 1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이었다. 향정의약품의 식욕억제제 사용을 전면 허용하고 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도 ‘동물실험에서 태아 위험성이 관찰되었으나 인간에 대한 실험이 행해지지 않은 약물로, 약물 사용으로 인한 태아의 위험성보다 이익이 크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임신시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므로 20~30대 가임기 여성들이 복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의약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비만학회 비만치료 가이드라인에는 ‘소아, 임신부, 수유부, 뇌졸중, 심근경색증, 중증 간장애, 신장애,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향정약품뿐만 아니라 모든 식욕억제제를 사용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대부분의 비만전문의는 약물요법이 근본적인 비만치료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향정약품을 처방받은 554명 중 37%가 정부의 권고사항인 30일을 초과해 향정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으며 심지어 3개월 이상 처방받은 사람도 4.7%에 달했다. 향정약품은 보통 빠른 경우 4주 이상 먹으면 중독, 즉 의존성이 발현할 수 있고, 3개월 이상 먹으면 치명적인 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약청과 대한비만학회가 내놓은 비만치료 가이드라인은 향정약품뿐만 아니라 비만 치료를 위한 모든 약물 치료에 대해 30일을 초과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식약청의 처방전 분석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먹은 사람이 6명, 심지어 300일을 처방받은 사람도 한 명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기간 내내 두 가지 향정약품을 처방받았다. 이외에도 이뇨제, 항우울제, 간질치료제, 종합 감기약 등 허가외 식욕억제제도 함께 처방됐다.

    향정약품을 한 번에 몇 가지씩 먹도록 처방하는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이 보고서는 향정약품의 중복처방 사례를 소개해 놓았는데 기자가 경험한 것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다음 처방전들은 82년생 여성이 2007년 1월부터 5월까지 처방받은 내역으로 처방전 구성상 체중 조절 목적으로 처방된 것들인데 한 제품만 처방하도록 권고되어 있는 향정신성식욕억제제가 중복 투약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중 조절을 목적으로 처방한 경우 보험급여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급여청구가 되어 있는 개선이 필요한 대표적인 예임.’

    실제 처방전을 살펴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4개월의 비만치료제 처방 기간 동안 처방이 10번이나 바뀌었는데 10회 모두 한 번에 2가지 이상 향정약품을 먹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14일 동안은 매번 향정약품이 3가지나 들어가 있었다. 2가지로 된 처방에는 정신신경용제인 항우울제가 꼭 들어가 있다. 이 정도면 중독과 심각한 부작용이 의심되지만 식약청은 이 환자에 대한 추적 조사는 하지 않았다. 거기다 보고서엔 건강보험 2중 청구로 국민 혈세까지 축낸 병원과 의사에 대해 어떻게 처벌조치했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향정약품의 오남용만큼 심각한 것이 함께 처방되는 허가외 품목, 즉 무허가 식욕억제제의 병용 처방이다. 향정 식욕억제제의 용법 설명서를 보면 사용상 주의사항에 ‘이 약은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생약제제를 포함해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해선 안 된다. 병용 투여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명문화 되어 있다.

    허가외 약품 무차별 사용

    그러나 실제 기자의 취재에서도 드러났듯이, 보고서의 처방전 분석에서도 향정약품을 사용해 비만을 치료하는 병의원 대부분이 식약청이나 제약사의 병용금지 원칙을 무시한 채 검증되지 않은 감기약과 간질약, 항우울제, 고혈압약, 이뇨제 등 허가외 식욕억제제를 향정약품과 함께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식약청의 향정약품 처방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중조절용 의약품의 처방전당 품목 수는 3.9개. 향정약품 외에 최소 3개는 허가외 의약품이 처방됐다는 뜻이다. 4가지가 사용된 경우가 48.7%, 7가지 이상이 사용된 사례도 5.5%(144건)나 됐다. 향정약품과 함께 처방되는 약들 중 가장 많이 들어간 허가외 약품이 방풍통성상 계열(1017건)로, 이 약은 원래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의 어깨 결림이나 비만증 부종 변비 해소에 쓰인다. 일반인이 약국에 가서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지만 약 자체에 마황 성분이 일부 들어가 있어 향정약품과 병용 처방은 절대 금지된 허가외 품목.

    그 다음으로 향정약품과 함께 많이 사용된 허가외 약물은 종합감기약인 에페드린염산염 계열(691건). 체온을 높여 칼로리 소비를 촉진시킨다는 의도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해선 의약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오히려 중추신경계 흥분작용과 빈맥 등의 부작용이 보고 돼 있을 뿐 아니라, 일부 마황이 섞인 제품은 일부 복용자들의 사망사례가 보고되면서 FDA가 2006년 4월 판매 금지조치한 바 있다. 콧물 치료제인 슈도에페드린(항히스타민제) 계열 약물도 병용처방 건수(557건)가 많았다. 이 약품의 대표적 부작용이 바로 소화기계의 구갈 구역 구토. 부작용을 치료 명목으로 쓰는 셈이다. 일반의약품으로 먹으면 잠이 와 운전시 복용이 금지돼 있다. 향정약품은 물론, 혈압강하제나 항우울제와도 병용이 절대 금지돼 있지만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외에 간질약과 항우울제도 적지 않은 수(463건)가 병용 처방됐다. 간질약은 체중감량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일부 있지만 FDA의 비만치료제 승인이 아직 나지 않았고 감각이상, 졸림, 기억장애, 집중력 장애와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항우울제는 자살충동 발현의 우려 외에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체중이 다시 증가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도 있다. 또 이들과 함께 자주 처방되는 이뇨제는 체내 수분만 뺄 뿐 체중 감량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한 가지 떨쳐버릴 수 없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우리처럼 향정약품을 식욕억제제로 쓰고 있는가’ 또는 ‘다른 나라 정부도 우리만큼 향정 식욕억제제에 대해 관대한가’라는 의문이다. 하지만 향정 식욕억제제 사용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보고서는 이상하게도 다른 나라의 향정 식욕억제제 허가 부분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서 기자는 이 연구의 주관기관인 시민단체의 담당자를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담당자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마약류 처방 세계 2~3위

    “사실 식약청에 올린 보고서 원안에는 세계 주요국가의 향정 식욕억제제 허가 현황이 들어가 있었는데 식약청의 요청으로 삭제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아서 판단하세요. 그리고 이 보고서도 당초 시작할 땐 공개용으로, 대국민 홍보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식약청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외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어떻게 이 보고서가 기자의 손에 들어가 있는지 그게 의문일 따름입니다.”

    기자는 식약청이 보고서에서 삭제했다는 ‘세계 주요국가의 향정 식욕억제제 허가 현황’을 국회 보건복지위 원희목 의원(한나라당)으로부터 받아냈다. 내용을 확인한 결과, 영국·프랑스·일본·독일·호주·EU연합은 약물이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과 위험성 때문에 향정 식욕억제제의 사용을 일절 금지하고 있었고, 주요 국가 중 사용을 허가한 나라는 오직 한국과 미국, 캐나다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든 향정약품에 대해 식욕억제제 사용을 허가한 곳은 미국과 한국뿐, 캐나다는 국내에서 식욕억제제로 쓰이는 펜디메트라진, 펜터민, 디에칠프로피온 등 3개 성분 향정약품 중 디에칠프로피온 제제만 제한적으로 사용을 허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는 마약류 처방전을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는 등 각종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향정 식욕억 제제의 오 남용을 막고 있다. 더욱이 마약류 의약품 소비 세계 1위인 브라질의 경우는 향정약품의 처방전 색깔을 다른 의약품과 달리하는 등 소비자가 향정약품이 비만치료제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살을 빼기 위해 향정약품을 먹을지 말지 최종 판단을 의료 소비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한 것.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는 처방전만 보면 향정약품이 실제 쓰였는지 전혀 알 수가 없고 국가도 이에 대해 통계조차 잡을 수 없는 구조다.

    이 때문일까. 우리나라 향정 식욕억제제의 생산액은 2003년 110억원에서 2005년 353억원, 2007년 446억원으로 증가했다. 유엔 산하 국제마약감시기구(INCB)의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향정 식욕억제제 복용량은 마약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계 3위, 그 다음이 미국이었다. 실제 향정약품 중 펜디메트라진 계열 식욕억제제 사용량은 세계 2위(2005년 기준)였다. 이런 상황을 주시하던 INCB는 지난 2005년 한국 정부에 향정 식욕억제제 사용을 자제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식약청이 한 일은 향정 식욕억제제 허가사항에 ‘4주 이내 사용과 다른 식욕억제제 병용 투여 금지’ 조항을 삽입한 게 전부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토록 많은 향정약물을 써야 할 정도로 세계의 주요 국가보다 비만 정도가 심각한가. 지난해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20대 성인남녀의 비만율은 31.8%로, 1998년 26.3%보다 크게 늘었다. 그런데 식약청의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헬스 데이터를 이용해 ‘한국인의 비만율은 3.5%에 그치며 이는 OECD 국가 평균 비만율 14.6%보다 크게 낮다’라고 쓰여 있다. 실제 OECD 자료만으로 보면 소속 국가들 중 우리나라는 비만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멕시코(30.2%)이고, 영국(23%), 캐나다(17%)…이탈리아 9.9% 순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일본뿐이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어!내 배. 과연 이 남자를 비만이라 할 수 있을까?

    OECD 기준 한국이 제일 날씬

    어떻게 국내 조사와 OECD 데이터 간에 이런 차이가 생길 수 있을까. 이는 우리나라와 OECD 간에 비만을 정의하는 체질량지수(BMI 지수·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OECD는 비만인의 기준을 BMI 30(kg/㎡)을 초과한 사람으로 잡은 반면, 우리는 25를 넘으면 무조건 비만인으로 규정한다. 사실 건강검진을 여러번 받아본 사람이라면 체감했겠지만 주변의 성인 남자와 여자치고 BMI 지수가 25미만인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사람의 눈에 날씬해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 과체중이란 진단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비만학회의 공식 입장은 아시아태평양권 나라들은 서양인과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BMI 지수 25이상이면 비만으로 봐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선 일부 의학자를 중심으로 반박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 논거는 우리 식습관이 서양화된 지도 벌써 30년 이상 됐고, 실제 평균 키가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비만의 정도를 키와 몸무게로 따지는 게 의학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실제 의학상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몸무게가 아니라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지방의 총량이다. 예를 들어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몸의 대부분이 근육질인데 몸무게가 많이 나가다 보니 BMI 지수로 따지면 그들 대부분이 과체중이나 비만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복부 허리 둘레도 일반인보다 훨씬 굵지만 그들을 가리켜 비만 환자라고 하는 의사는 없다.

    문제는 이런 애매한 기준이 향정 식욕억제제의 투약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비만학회는 ‘한국인을 위한 비만 가이드라인’을 통해 ‘서양인은 BMI 지수 30 이상에서, 한국인은 25 이상이면 식용억제제 투여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놓았다. 다만 학회는 ‘이런 기준들은 충분한 자료들이 확보되면 수정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단서 조항을 달아놓았다.

    비만 공포 조장하는 나라

    하지만 식약청의 용역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회의 기준은 우리 국민의 비만 인식과 비만치료제 복용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청은 이번 용역연구를 통해 일반소비자 1000명과 체중조절 경험자 112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일반 소비자는 55.8%가, 체중조절 경험자는 74.5%가 자신의 체형이 비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중 일반 소비자 65.1%와 체중조절 경험자 63.1%의 실제 BMI지수는 18.5~24.9로 대한비만학회 기준으로 봐도 정상 체중 범위 안에 있었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식약청 조사 결과 체중조절 약물을 먹고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이 66.4%에 달했다.

    더욱이 BMI 지수 검사 결과가 비만으로 나왔기 때문에 자신을 비만환자라고 생각하는 383명의 체중조절 경험자 중 133명(34.7%)의 실제 BMI 지수는 18.5~ 24 사이의 정상체중이었고, OECD 기준(BMI지수 30이상 비만)을 적용하면 85.4%인 293명이 정상체중 범위에 들었다. 실제 BMI지수가 30이상인 응답자는 13.6%인 48명에 불과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약물을 먹은 사람들이 자신이 먹는 약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또 약물에 대한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이다. 총 조사 대상자 1125명 중 체중조절 약물을 먹은 사람은 1066명으로 이 중 57.5%인 613명이 자신이 복용한 약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이 중 708명(66.4%)이 부작용을 경험했다. 이들이 경험한 부작용 중 가장 큰 것은 ‘요요현상’이며 그 외에 어지러움, 목마름, 메스꺼움, 구토, 손발 떨림, 피로감, 변비 등이었다. 그중 극소수이지만 심혈관계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이 향정 의약품을 먹었을 때 있을 수 있는 부작용. 하지만 조사대상 1066명 중 60%는 향정약품이 식욕억제제로 쓰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향정 식욕억제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은 자신의 처방에 대해 “지금껏 큰 인명피해는 없었고 식약청이 허가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한비만학회의 한 회원 의사는 취재원 보호를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몇 년 전에 향정 식욕억제제인 각성제와 항우울제를 과용한 한 여성이 환각 상태에 빠져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이 약물도 당시 FDA의 인증을 받은 것이었지만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미국에서 판매가 중단됐습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