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정작 검사결과를 자세히 보니 혈압과 혈당치는 모두 정상 범위 안에 있었고, 다만 지방간이 좀 있는 상태였다. 검진 담당 의사에게 “뭐 아직 괜찮네요”라고 말했다 심한 면박을 당한 후 “앞으로 열심히 운동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의사는 또다시 기자를 윽박질렀다.
“당장은 운동도 하지 마세요. 살이 너무 쪄서 무릎관절 다 망가집니다. 식이요법으로 어느 정도 살을 뺀 후에 그때부터 빨리 걷든지 뛰든지 하세요. 정말 이대로 가면 죽어요. 죽는다고요.”
멍했다. 의학담당 기자 생활을 10년 했지만 이런 파국의 상황에 이르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21세기 인류가 이뤄놓은 최첨단 의약품에 의존해 일단 살부터 빼보기로 했다. 우선 서울 시내에서 약물을 이용해 단시간에 확실하게 살을 빼준다고 소문난 병의원부터 찾기로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니 비만치료제를 이용해 살을 빼준다는 병의원 광고가 넘쳐났다.
살 빼는 약 알고 보니 마약류
그중에서 한 곳을 찾아가 건강검진표를 내밀었다. 살 잘 빼기로 소문난 의원이 가정의학과나 내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인 게 좀 의아했지만, 일단 처방전을 받아보기로 했다. 의사는 거두절미하고 “얼마나 처방해줄까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자주 못 오니까 많이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그럼 한 달 먹을 거 드릴게요. 살이 적게는 7kg, 많게는 15kg까지 빠질 겁니다. 그때 또 오세요”라고 했다. 운동을 하라거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라는 말도 없었다.

기자가 병의원에서 받은 비만치료 처방전과 약들. 마약류 범벅이다.
처방전을 들고 의원을 찾아가 “어떻게 비만을 치료한다면서 마약류와 정신계 약물을 무더기로 처방할 수 있느냐”고 따지니 이비인후과 원장은 “먹어도 된다고 정부 허가가 난 약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처방은 의사의 고유권한인데 왜 그러느냐”고 오히려 기자를 나무랐다. 인근에 있는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밀며 “이 의원 원래 이렇게 향정을 많이 처방하느냐”고 물었더니 약사는 “한 달에 200~300건 처방이 나온다”고 귀띔해줬다.
향정약품은 중추신경계(뇌세포)에 작용해 정신 상태나 정신기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의 총칭이다. 계속 사용하면 약효가 차츰 줄어들어 용량을 늘려야 하며, 중독성과 습관성이 있어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현저한 위험이 있다고 인정된 약물이다. 1~4군이 있는데 1군과 2군은 범죄에 많이 사용되는 약물인 L.S.D와 메스암페타민, 필로폰, 각성제인 염산메칠페니데이트, 3~4군은 그보다는 조금 중독성이 약한 벤조디아제핀계 항불안제가 속한다. 이 모두 마약, 대마와 함께 마약류로 지정돼 일반인의 수집, 거래가 금지되어 있으며 오남용할 경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처벌받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