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경영학은 ‘공동체적 삶’을 다루는 학문”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입력2008-12-08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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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확실성이 높고 풀어야 할 문제의 범위와 성격이 복잡해지는 요즘 같은 때 부분해법만 가진 경영자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1세기 경영자는 한정된 자기 분야를 초월해서 관련 영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적(知的) 시야를 필요로 한다. 21세기 경영자는 인간의 필요, 아픔,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감수성으로 고객의 수요를 예측해야 하며, 과학과 기술도 예측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이해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경영학은 ‘공동체적 삶’을      다루는 학문”

    <B>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B><BR> 윤석철 지음 위즈덤하우스

    윤석철 교수를 아십니까? 혹시 그분의 저서를 읽어보셨습니까?”이 질문에 반색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를 예사롭게 보지 마시길…. 경영학이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아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대에 재직하다 퇴임한 윤 교수는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대중적으로 유명한 경영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내공이 무척 깊은 학자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또 ‘경영학의 진리 체계’ 등 그의 저서들은 마니아 독자층을 갖고 있다.

    그의 새로운 저서인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엔 경영과 삶에 관한 지혜가 그득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강조하는 옛날식이 아니라 물적, 정신적 성공을 함께 이루게 하는 현대식 삶의 지혜를 알려준다. 이 책의 장점은 내용이 유익하고 심오한데도 매우 쉬운 문장으로 설명돼 있다는 점이다. 술술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는 부분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깨달음의 연속이다. 저자의 머리말만 읽어도 책 내용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리라. 일부를 옮겨본다.

    “150억년 우주의 역사와 5억 3000만년 약육강식의 자연사(自然史) 속에서 생존의 지혜를 찾아보려고 고민했습니다(이것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 속에서 몸부림 친 선구자들의 노력, 특히 철학자와 자연과학자들의 노력, 이런 노력의 결과 인간이 알게 된 진리의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고민했습니다. 이 책은 한국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약소국의 정서 속에서 쓰여졌습니다. (중략)

    경쟁은 일(work)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일의 현장이 곧 경쟁의 마당입니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곧 일을 잘해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어떻게 일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문제를 놓고 독자 여러분과 고민하고 싶습니다. 고민은 이 책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Abstract



    이 책은 제목대로 45편의 글을 담았다. 비슷한 성격의 글끼리 묶어 6개 분야로 나누었다. 각 분야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보자.

    ‘1부’ 인간의 생존양식과 경영

    지구상의 동물, 멸종하기도 번성하기도 한다. 무엇이 이를 결정하는가. 전략 여하(如何)에 달렸다. 오늘날 번성을 누리는 종은 새로운 황무지를 찾아 개척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런 프런티어 정신의 반대는 ‘나도 남들 따라 하기’다. 과거 한국 기업은 경쟁 회사가 공장을 확장하면 나도 확장하고, 신규 분야에 진출하면 나도 진출하다가 과잉투자, 과잉경쟁으로 1997년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프런티어 개척이 어렵다면 차라리 3D 산업의 길이 차선책일 수 있다. 3D 산업은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해서(dangerous) 회피 대상이다. ‘너 죽고, 나 죽고’식 과당경쟁이 없다. 그런데 의식주 등 필수품은 궁극적으로 3D 산업에서 나온다. 3D 산업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수밖에 없다.

    ‘2부’ 감수성과 상상력, 그리고 과학기술

    세종대왕은 백성을 나라의 고객으로 생각하고, 고객의 필요와 아픔이 무엇인지를 감지하는 위대한 감수성을 발휘했다. 세종은 문맹 백성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오늘날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상상력은 모차르트나 피카소 같은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상상력과 열정으로 제주도 지하수를 개발한 사례를 보자. 1971년 농림부 공무원 한규언씨는 쇠파이프 끝에 텅스텐을 붙여 모터로 회전시키며 용암 암반을 팠다. 관정(管井)이 뚫리면서 물이 콸콸 솟았다. ‘제주도에는 지하수가 없다’는 학계 의견을 뒤엎은 쾌거였다.

    “경영학은 ‘공동체적 삶’을      다루는 학문”

    일본에서 개발된 6면체 수박. 둥근 수박보다 보관하기 쉽다. 하지만 값이 비싸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3부’ 창조성과 생산성

    독일 바이마르에는 괴테와 실러가 다정히 손잡고 있는 동상이 있다. 18세기 독일 문단의 거장인 이들은 당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난형난제(難兄難弟)였다. 누군가가 괴테에게 “귀하와 실러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한 작가인가요?”라고 물었다. 괴테는 “더 위대한 어느 하나보다, 누가 더 위대한지 모르는 둘이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조성과 생산성이 필요한데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물으면 대답은 괴테의 답변과 같으리라.

    ‘4부’ 경영이념

    이념은 결속력의 원천이다. 인간은 상징을 필요로 한다. 연인 사이에는 꽃 한 송이를 사랑의 상징으로 주고받는다. 성공한 혁명에는 만인을 공감시킨 이념이 있다. 이념의 힘은 기업 경영에서도 발휘된다. 조직의 목표에 맞으면서도 소비자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이념을 찾아내 실현해야 한다.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됐다. 휴일 이틀을 모두 노는 데 쓰지 말고 하루는 자기 정신을 맑게 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 유대인의 안식일처럼 우리 5000년 역사 속의 수난을 반추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사색하고,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내일을 위한 자기 동기부여를 습관화하는 것이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5부’ 합리적 사유

    히틀러 만행의 하수인이었던 아이히만이 남미에서 숨어 살다가 붙들려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을 때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법정에서 그를 관찰하고 깜짝 놀랐다. 아이히만은 극악무도한 괴물이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그렇게 만든 것은 무(無)사유(thoughtlessness)였다고 판단했다. 국내외적으로 무사유가 인간성의 일부처럼 돼버린 어지러운 시대, 사유하는 국민만이 살아남는다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6부’ 21세기 리더십의 조건

    로마제국을 통치한 현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지혜, 정의감, 강인성, 절제력 네 가지를 꼽았다. 당대의 대철학자였고 군 사령관이기도 했으며 황제였던 그 자신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서로 모르는 조직이 제휴나 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면 신뢰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런 조직문화가 생산성을 좌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경영학자들은 이를 ‘사회적 자본’이라 부른다. 제3의 자본 개념이 탄생한 셈이다. 사회적 자본의 축적에 성공한 기업은 노사관계가 좋고, 소비자 및 협력업체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해 생산성을 높인다.

    ▼ About the author

    저자의 학문 역정(歷程)을 보면 이 책의 알맹이가 하루아침에 여문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대전에서 자란 그는 초·중·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58년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입학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 수준이었는데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부국이었다. 저자는 이에 자극을 받아 독일을 한국 발전의 모델로 삼겠다는 포부를 품고 독일의 문학, 철학, 역사를 공부했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한국이 후진국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과학기술이 급선무라는 점을 깨닫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시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했다.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 가서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후 과정에서 경영학, OR(Operation Research) 등을 연구했다. 서울대에 봉직하며 연구뿐 아니라 강의에도 열정을 쏟았다. 2002년 서울대 경영대 학생들이 뽑은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다.

    학문에 몰두하는 바람에 많은 것을 포기했다. 술, 담배, 노래, 골프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신경성 장염을 얻어 자장면 같은 기름진 음식은 먹지도 못한다고 한다.

    ▼ Impact of the book

    이 책은 2005년 7월에 처음 나왔다. 당시 필자는 ‘동아일보’에 ‘고승철이 뽑은 베스트 비즈북’이라는 타이틀로 2주일에 한 번씩 서평을 연재했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그해 8월6일자에 게재됐다. 서평을 읽고 책을 구매한 여러 독자가 필자에게 “훌륭한 책을 소개해주어 감사하다”고 알려왔다. 대기업 임원들은 “깊이 생각하며 경영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어서 감명 깊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책은 2008년 8월 17쇄가 나왔다.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 Impression of the book

    여느 ‘성공학’류 책과는 달리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을 해도 좋을 책이다. 저자의 학문적 시야가 넓고 인용 자료의 폭이 넓어 독자는 지적(知的) 자극을 받을 것이다. 저자의 제안대로 실천한다면 삶의 깊이가 풍부해지고 경영에서도 성공하리라.

    Tips for further study

    “경영학은 ‘공동체적 삶’을      다루는 학문”
    저자는 10년마다 핵심 저서 한 권씩을 낸다는 목표를 일찍이 밝힌 바 있다. 1981년 ‘경영학적 사고(思考)의 틀’을 내면서다. 이 첫 저서에서는 경영의 문제를 시간, 공간, 인간의 3차원으로 분해해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1991년 펴낸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Principia Managementa)에서는 생존부등식의 개념을 도입,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체계적 노력을 경영의 본질로 파악했다. 머리말에서 저자의 휴머니즘을 읽을 수 있다.

    “경영학은 ‘공동체의 삶’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점에서 경영학은 물리학과 다르다. 삶은 생명의 세계이고, 생명은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방치하거나, 미워하거나, 한탄만 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공동체의 삶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기 위한 노력의 미화(美化) 작업이 있다.”

    2001년에는 ‘경영학의 진리 체계’(경문사·사진)란 세 번째 저서를 냈다. 이 책의 내용은 무한경쟁 속 적자생존의 고통에 대한 실존주의적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 고통을 극복하고 가장 번성한 곤충과 포유류의 지혜를 탐구한다. 이들의 지혜가 ‘고객을 찾아 주고받음의 관계를 정립’한 데 있음을 확인하고 인간 사회에서 주고받음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제약조건(constraints)을 구명했다. ‘생존부등식’에 대한 설명이다.저자는 2011년에 낼 제4의 저작에서는 생존부등식에 대한 완성도를 더욱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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