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BQ 원칙의 승리</b><br>윤홍근 지음 중앙M&B
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은 기업인이 되겠다는 오랜 꿈을 이룬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기업인 외에 다른 꿈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책에는 창업 당시인 1996년 말 매출액 6억원의 BBQ를 10년 만에 매출액 5000억원 규모의 당당한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저자의 철학과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Abstract
윤홍근 회장은 첫 직장생활을 미원(현재 대상그룹)에서 시작했다. 다른 대기업 공채에도 합격했지만, 저자는 삼성의 조미료 미풍을 이긴 미원 신화에 끌려 그곳을 선택한 것이다.
윤 회장의 창업은 미원이 부도난 마니커를 인수한 데서 시작됐다. 마니커는 원래 닭고기 가공과 유통업을 하던 미원의 거래업체였으나 1993년 10월 부도가 나자 미원이 500여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윤 회장은 이때 부장으로 승진해 마니커에 합류했다.
윤 회장은 우선 대리점 사정부터 점검해보았다. 이를 통해 과거 마니커 대리점들이 의외로 튼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업정책만 잘 쓰면 이탈한 대리점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2개월 동안 업무 파악을 마친 그는 영업조직 정비를 바탕으로 3년 후 20만마리 판매를 달성해 업계 1위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제시했다.
매출은 공언한 대로 착착 올라 연말에는 12만마리 판매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5만마리 판매목표를 달성하면 영업사원에게 매달 50만원의 특별 격려금을 달라는 저자의 요청도 받아들여졌다.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올라갔다.
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마니커의 닭고기 판매량은 12만마리를 고비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찍이 그가 예상했던 일이었다. 당시 국내 닭고기 생산량은 1일 80여만마리. 이 가운데 65~70%가 소형 치킨 호프집에서 소비되고, 15~20%는 백화점, 할인점, 재래시장 등에서 유통되며, 나머지 15%는 육가공품 원료로 쓰였다. 소형 치킨점이나 호프집의 수요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구조였다.
윤 회장은 20만마리 판매목표를 달성하려면 치킨 전문점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사 측에 이를 설명했다. 돌아온 것은 반대였다. 소형 치킨점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것이 이유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만 해도 200개가 넘었다. 이들은 대부분 술을 팔면서 안주로 치킨을 파는 호프집이었다.
그러나 윤 회장이 생각한 치킨 전문점은 전혀 다른 형태로서 기존의 치킨 전문점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장을 겨냥했다. 온갖 산고를 거쳐 1995년 4월,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 첫선을 보인 것이 ‘마니커즈’ 광명점이었다. 윤 회장은 마니커즈 프랜차이즈 신규 사업본부장을 맡아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그룹의 최고위 경영진이 미원이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다. 윤 회장은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결단을 내렸다. 바로 창업이었다. 브랜드 이름은 BBQ였다. BBQ는 미국에서 숯불구이를 말하는 바비큐(barbecue)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치킨 브랜드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얼마나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도 좋은가. BBQ의 의미는 Best Believable Quality(가장 믿을 수 있는 품질), 즉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이 이름에는 맛, 정, 신뢰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각오와 자부심도 함께 담겨 있다.
마침내 윤홍근 회장은 1995년 9월1일 자본금 5억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BBQ는 미원 중앙연구소에서 1년 이상 연구 기간을 거쳐 국내 어느 치킨점보다 더 맛있고 완벽한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함박스테이크, 윙스, BBQ버거 등 약 20종류의 상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BBQ는 한국을 넘어 중국, 스페인, 일본, 미국, 그리고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최근접 국가이며, 세계의 모든 기업이 패권을 다투는 21세기 기회의 땅이라 윤 회장도 공을 들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외국 기업의 단독 진출을 허가하지 않기에 중국의 등팡시왕 그룹과 합작회사를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