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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자’ 정혜신의 ‘코로나 트라우마’ 다스리기

“‘힘들어도 괜찮아’ 수긍하라, 자신을 그냥 그대로 두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치유자’ 정혜신의 ‘코로나 트라우마’ 다스리기

  • ● 죽음이 일상화된 지금은 트라우마 상황
    ● 지속된 불안이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분노로 폭발할 수 있어
    ● 알 수 없는 고통 피하고자 스스로를 공격하는 사람들
    ● 성급한 일상 복귀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 자신과 주위 사람에게 “괜찮아, 네 탓 아니야” 말해 줘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지난 겨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낯선 질병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그것이 이렇게까지 큰 규모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초기엔 계절성 독감 정도로 여겼고,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갈 때도 ‘봄이면 괜찮아질 거야’ ‘적어도 여름이면 상황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괴로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이가 적잖았다. 

그러나 7월이 다가오는 지금, ‘코로나19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이 질병으로 인한 일상 파괴와 정신적, 경제적 고통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사회 전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정혜신(57) 박사를 만난 건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는 것과 같다. [GettyImage]

트라우마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는 것과 같다. [GettyImage]

그는 정신과전문의로 오랫동안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다. 그러다 2003년 심리분석연구소를 세우며 ‘사람’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 연예인, 정치인 등 이른바 성공한 명사들이 연이어 그를 찾았다. 정씨가 의사를 상징하는 흰색 가운을 벗자, 사람들은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떨치고 기꺼이 그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씨는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등 삶 전체가 바닥에 ‘패대기쳐져’ 신음하는 이들과도 두루 만났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에 눈을 맞추며 ‘거리의 치유자’ ‘트라우마 전문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씨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지금 우리가 겪는 아픔을 ‘트라우마’라고 진단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트라우마란 뭔가. 

“일반적으로 외상(外傷)을 뜻한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영구적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또 트라우마로 인해 생기는 질병, 이른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줄여 트라우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심인성 질환은 사람 내면의 심리 문제 때문에 생긴다. 트라우마는 다르다. 내 안의 갈등이 아니라 외부 사건이 원인이 된다.” 

-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을 트라우마 상황이라고 하지 않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트라우마를 유발하기도 한다. 트라우마의 핵심은 특정 사건이라기보다 ‘죽음 각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죽음에 대해 깊이 실감하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내 삶 안으로 훅 들어오는 경험을 하면 큰 충격을 받는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이 바로 그렇다.” 

- 코로나19 이후 끝없이 이어지는 관련 보도와 하루에도 몇 통씩 도착하는 ‘안전 안내 문자’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분이 많다. 

“그것이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그동안 무심코 해온 행동이 나 또는 주위 사람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를 받게 됐다. 불안이 극도로 치솟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 극심할 때 흔히 나타나는 게 혐오 감정이다. 불안의 원인을 찾거나 만들어 그쪽으로 감정을 쏟아내 심리적 불편을 해소하려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중국인, 성소수자, 생각 없이 노는 청년, 외국인 유학생 등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아 분노를 쏟아낼 수 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이도 적잖다.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직장 잘 다니고 돈 잘 버는데 나는 왜 이럴까’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봤어야 했는데 그때 공부 안 한 내 탓이지’….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불안하고 무기력한 상황에 처하면 남을 미워하거나, 자기 자신을 잡는다.”


사람이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

- 그게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나. 

“트라우마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게 바로 트라우마의 속성이다. 길을 가다 갑자기 벼락을 맞는 것과 같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초자연적인 힘, 감당하기는커녕 가늠할 수조차 없는 외력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덮친다.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해 보려 애쓴다. 그런데 어디 그게 되나.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간첩으로 내몰려 고문을 받는데. 혹은 어제까지 멀쩡히 내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말이다. 

사람은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일에서조차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으려 애를 쓴다. ‘타당한 이유 없이 극단적인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이란 사람이 정상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게 틀림 없어’ ‘그동안 잘못 살아온 벌을 지금 받는 거지’ ‘내가 원래 재수 없는 인간이야’…. 이렇게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유 없이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가 자기 혐오로 연결되는 것이다.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의 속내도 다르지 않다. ‘생각 없는 젊은 것들 때문에 코로나19가 안 끝나잖아!’라는 등 고통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이해하고 감정을 표출한다. 트라우마 상황에 처하면 많은 사람이 자기혐오와 남탓 둘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어느 쪽도 건강한 방식은 아니다.” 

- 그렇다면 불안과 공포를 다스릴 다른 방법이 있나. 

“일단은 지금 자기가 화를 내는 이유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내가 왜 이렇게 스스로를 미워하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견딜 수 없게 혐오스러운지 알면, 지금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불같은 분노에서 한발 떨어질 수 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이 인터뷰를 하는 이유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자기를 ‘때려잡는’ 사람이든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든, 혐오의 이유가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안이 극심한 상황에서 내 마음을 보호하려는 나의 안간힘이기도 하다는 것, 그것을 스스로 알아주는 게 타인의 위로나 충고보다 때론 더 중요하다. 친구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갑자기 내가 덜 미워지는 것도 아니고 ‘왜 아무 죄 없는 사람들한테 화를 내. 그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만든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듣는다고 혐오 감정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기 불안의 근원에 대해 스스로 실감하고 인정하게 되면 ‘아, 지금 내가 지나치게 화가 나는 건 내 불안 때문이구나. 나는 지금 스스로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내 불안을 풀고 있는 거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줄어든다. 불안이 일시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감정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은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 한계에 직면하는 일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GettyImage]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GettyImage]

- 코로나19 유행 후 우울감에 시달린다는 사람도 많다. 한 50대 지인은 “50대부터 코로나19 사망률이 상승하는 걸 보면서 ‘나도 이제 다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다”고 하더라. 

“그럴 수 있다. 그럴 거다. 인간이 자기 한계를 직면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몇 년 전 남편이 심정지를 겪었다. 다행히 건강하게 회복했지만, 이번에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보다 덜컥 놀랐다. ‘기저질환자가 특히 위험하다’는 내용을 듣고서다. 나는 그동안 남편을 기저질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 눈에는 전과 다름없는 그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그가 질병에 더 취약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남편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편 또한 여러 소식을 접하며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로 인해 우울과 무기력을 겪었다 해도 그건 병적인 게 아니다. 인간이 자기 한계를 느꼈을 때 갖게 되는 정상적인 감정이다.” 

- 굳이 털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한 단계 성숙한 존재가 될 수 있다. 70대가 ‘나는 20대와 다를 바 없어. 내 친구들보다 20대와 얘기할 때 훨씬 잘 통해’라고 얘기한다면 어떨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분은 긍정적이기보다 미성숙한 사람일 개연성이 크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줬다. ‘이제 내가 삶의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구나’라는 걸 깨닫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모두 겪어야 하는 일이다.” 

- 그러니 다소 우울해도 괜찮다? 

“그렇다. 우울은 당연한 삶의 일부다. 우울은 성찰의 결과일 수 있다. 오히려 우울 없는 삶은 미성숙할 수 있고, 그것은 현실을 부정할 때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일 수 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기억이 떠오르면 충분히 기억하고, 그리워지면 충분히 그리워하고, 울고 싶을 때는 충분히 울어라.’ 그러고 나면 누군가가 ‘그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어. 우울증 환자가 돼’라고 말해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반대로 트라우마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러지?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려는 거야. 내가 충격으로 비정상이 됐구나’ 생각하기 시작하면 고통이 더 커질 수 있다.” 

- “트라우마 상황에서 분노나 우울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걱정하지 마라.” 지금까지 말씀을 정리하면 이런 내용인 것 같다. 

“사람이 가장 큰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을 때다. 지금 내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놓여 있는 걸 알면 피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걸음 내디뎠을 때 내 발이 닿을 곳이 독충이 우글거리는 정글인지 아름다운 꽃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는 어떤가.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감정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를 때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없다. ‘지금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구나. 나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는 확인을 받으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 그 바탕에서 트라우마로 인한 극심한 혼돈에서 빠져나올 힘을 낼 수 있을 거다.”


어느 날 오지에 떨어진 경험

- 코로나19로 인해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자신을 믿는 것이 앞날을 헤쳐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뭔가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날 갑자기 지도 한 장 없이 오지에 떨어진 거다. 주위는 안개에 덮여 있다. 어디로 가야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 일단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늘 게으르면 안 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지 못하면 자책하고, 낙오됐다고 느끼고, 세상의 비난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서 잘못 움직이면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앞날을 알 수 없을 때는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게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이것이 안개가 걷힐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결정적인 일이기도 하다.” 

- 그러니 자기를 재촉하지 마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자기를 돌보는 것이다. 스스로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으면 좋겠다. 지인 가운데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강의하는 걸로 생계를 꾸려온 분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이 다 끊기고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그분이 ‘요즘 그동안 미비했다고 느낀 자료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 ‘코로나19가 정리되면 바로 스타트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해놓아야지요’라고 얘기하는 걸 들으며 안타까웠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가진 채 겨울을 겪고, 봄을 보내고, 이제 여름 앞에 서게 된 게 아닌가. 여전히 세상은 우리가 과거 살았던 그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분이 애써 고친 자료는 또다시 손봐야 할 처지가 됐다. 미래에 맞이할 세상에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갈 에너지

- 뭐라도 해야 불안이 가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괜찮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축내는 일이 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가 나쁜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부터 매일 하루에 책 10페이지씩을 읽는 아이가 있다. 그러면 엄마가 나을 거라고 믿으면서 하는 행동이다. 언젠가 엄마가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그 기억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거다. ‘지금이라도 책을 읽으면 엄마가 낫겠지.’ 이게 아이 마음이다. 

우리 상당수는 어른이 돼서도 마음 깊은 곳에 이러한 원시적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이제는 내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엄마 병이 낫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내가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는 것과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사이에 아무 연관 관계가 없다는 것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뭐라도 열심히 하면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 또한 버리지 못한다. 

‘내가 전생에 잘못해서 벼락을 맞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본질은 다르지 않다. 문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돌파할 책임 또한 스스로에게 지우는 것이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것, 그 때문에 정신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 개인 잘못이 아니다.” 

- 오늘 여러 번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또 주위 사람에게 해줘야 하는 얘기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내가 신뢰를 갖고 지켜본 감염병 전문가가 있다. 방송에 나와 코로나19에 대해 말씀하는 분들 가운데 가장 논리적이고, 풍부한 근거 자료를 가진 분으로 보였다. 그분이 한때는 ‘4월이면 코로나19 문제가 확실히 정리된다’고 말씀했다. 그런데 조금씩조금씩 말이 바뀌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렇다. 전문가조차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그 앞날에 대처하지 못한 게 왜 우리 책임인가. 

지금 우리는 지도 없이 오지에 떨어진 상태다. 이제 할 일은 동이 트고 안개가 걷혀 저 먼 곳을 볼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길은 그때 찾으면 된다. 과거 기준에 비춰보면 굉장히 수동적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아니다. 가만히 주저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 그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다. 불안한 마음에 옛날 동네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섰다가는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강의로 생계를 꾸리던 지인에게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때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면 지금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해 둬야 한다. 여태까지 익숙했던 사고의 틀에 맞춰 미래를 준비하려 하지 마라. 그 과정에서 지쳐버리면 정작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제대로 뛰어들지 못할 수 있다.”


“지금은 힘들어도 괜찮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가까운 사람과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지금의 어려움을 함께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해냄출판사 제공]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가까운 사람과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지금의 어려움을 함께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해냄출판사 제공]

- 나의 ‘가만히 있음’을 주위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뭐라도 하라’고 재촉하며 상처를 주면 어쩌나. 

“일단은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가까운 사람과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지금의 어려움을 같이 벗어날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당분간 관계를 끊어야 한다. 트라우마를 겪을 때 감정적으로 약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쓰는 방어기제가 있다. 감정 마비다. 자신의 고통을 직면할 수 없으니 차라리 셔터를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19가 창궐한 상황인데 너무 희망찬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히려 위태롭게 보일 것 같다. 그런 분에게 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개별적인 스펙트럼이 있으니까. 다만 이럴 때 나타나는 무기력 우울 두려움은 병적인 게 아니고 당연한 것임을 받아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그러니 억지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지 말라. 

“그렇다. 그건 유가족이 일상에 대한 의욕을 막 내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다.” 

- 언젠가 다시 기운 차릴 수 있는 날이 올까. 

“이제 안개가 걷히면서 주변 지형이 보이고 뭐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다. 그다음부터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나를 갉아먹지 말고, 잠식하지 말고, 잘 지키고 보호하면서 동터서 주변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자. 그래도 된다. 지금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해야 새로운 질서에서 새로운 게 요구될 때 움직일 수 있다. 나한테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코로나19를 통해 우리 모두 갖게 된 ‘죽음에 대한 자각’을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유가족 등을 만나면서 죽음이 삶과 유리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 남편의 심정지를 겪으며 죽음을 한층 더 가깝게 느끼게 됐다. 그 실감은 내 삶을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삶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내일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하루하루가 무척 소중해진다. 암울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사랑이 넘치고 자유롭다. 

코로나19 이전 세상에서 많은 사람은 두려울 것 없이 살았다. 이제는 미생물을 비롯한 자연 속 다른 존재를 의식하고 고려하고 두려워하게 됐다. 죽음 또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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