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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의 진단] 속속들이 감시받는 ‘판옵틱사회’ 현실화할 수 있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송호근의 진단] 속속들이 감시받는 ‘판옵틱사회’ 현실화할 수 있다

  • ● 기후재앙과 바이러스, 도망칠 곳이 없다
    ● 100년간 훈련된 한국인 ‘위기 반응성’이 코로나19 통제 원동력
    ● 비대면 트렌드, 고용 유연화와 민주주의 붕괴 야기할 수도
    ● 성장과 풍요 향한 고속 질주 멈추고 새로운 미래 찾아야 할 때
    ● ‘한국형 뉴딜’에 대한민국 앞날 달렸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은 산업혁명 이후 250년 간 이어져온 문명의 법칙이 변곡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금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구에 미래가 없을 수 있다. 문명사적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송호근(64)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절박했다. 그는 “나는 생태론자나 환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간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에 대해 경고해도 ‘먼 미래의 일이겠거니’ 여겼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반성했다”고도 말했다. 그와 마주 앉아 코로나19 위기의 성격과 이후 문명 변화의 양상, 한국의 대응 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류 문명의 변곡점

코로나19 유행 후 텅 비어 있는 서울 명동 한 백화점.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4%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뉴스1]

코로나19 유행 후 텅 비어 있는 서울 명동 한 백화점.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4%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뉴스1]

-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현대 문명의 세 가지 특징은 모빌리티, 글로벌 네트워킹, 자원극대화(Resource Maximization)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사람과 물자 이동, 생산 및 소비가 가장 활발한 시기를 살았다. 후손 몫 자원까지 갖다 쓰면서 풍요와 번영을 향해 달렸다. 그러다 코로나19를 만났다. 이 바이러스가 산업혁명 이후 이어져온 현대 문명의 질주를 멈춰 세운 상황이다. 현재는 자유로운 이동도, 국제 분업도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그동안 우리가 배양해 온 갖가지 문제점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나는 코로나19가 문명의 적일까, 아니면 문명의 영속성을 유지하게 해줄 경고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분명한 건 우리에게 문명사적 충격을 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하던 2월 25일, 포스텍 내부 통신망에 관련 글을 올린 것으로 안다. “한국이 바이러스로 침몰하기 전에, 우리 무고한 국민이 바이러스 공포로 한없이 추락하기 전에, 과학자와 지식인 중심의 위기대책반을 꾸리자”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을 것을 내다봤나. 

“위기는 초희귀성, 초불확실성, 초파괴력 등의 속성을 갖는다. 코로나19가 정확히 그랬다. 매우 드물고 알 수 없는 질병이 가공할 만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최대한 빨리,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대응해야 한다고 봤다. 



오늘을 사는 사람 가운데 1918년 스페인독감을 경험한 이는 없다. 팬데믹이 뭔지 잘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관련 문헌을 찾아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 시절 750만 명이 스페인독감에 감염돼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당시 인구의 2%가 넘는다. 14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페스트가 봉건사회 몰락과 르네상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감염병은 결코 가벼이 볼 대상이 아닌데, 코로나19 확산 초기 정부 대응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봤다. 다만 당시에 코로나19가 우리 문명 전반에 대한 고민을 이끌 것이라는 것까지 내다본 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250년

- 지금은 오히려 질병 자체보다 그로 인한 사회경제 변화에 더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그렇다. 코로나19로 인한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나는 그 단계를 넘어 인류의 대절멸(Great Dying)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 상황 인식이 매우 엄중하다. 

“코로나19를 통해 지구의 임계점이 드러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류는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줄곧 지구를 들들 볶았다. 들쑤시고 착취하면서 문명을 키웠다. 250년에 걸쳐 우리가 풍요와 번영을 이루는 동안 자연 균형은 심각하게 파괴됐다. 그 결과가 바이러스의 역습이다. 

머잖아 지구가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경고는 그동안에도 계속 있었다. 1960년대부터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걸로 안다. 1990년 유엔기후변화협약, 1997년 교토의정서, 2016년 파리기후협약 등 기후변화를 막아보려는 국제적 노력도 여러 번 진행됐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상당수가 무관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위기가 곧 내 앞에 올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계 경고가 사실이라 해도 아득히 먼 훗날의 일일 줄 알았다. 당장의 경제성장, 오늘의 편리와 풍요를 희생할 만한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인류 문명이 그렇게 쉽게 망하겠나’ 하는 낙관론도 팽배했다.”

성장만능주의의 함정

-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지구가 코로나19를 통해 ‘위기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준 거다. 그동안 버텨온 이 행성이 한계 상황까지 내몰렸다는 신호는 매우 크고 또렷하다. 

여러 연구를 보면 바이러스 확산은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 같은 속도로 지구 기온이 계속 오르면 머잖아 적도에 있는 수천 종의 바이러스가 인간 사는 곳으로 옮겨올 수 있다. 빙하가 녹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현재 빙하에 갇힌 바이러스가 100만 종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1%만 살아나도 1만여 종이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알래스카 빙산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유의 공포는 SF영화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제 다르다.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많은 이가 실감한다. 기후학자, 바이러스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코로나19 유행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찾아올 대재앙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런 대재앙 속에서 인류 문명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이런 거대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 

-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됐다고 보나. 

“우리가 오랫동안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달려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살아남기 위한 기업과 국가 간 경쟁이 인류에 풍요를 가져다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인류 절멸이라면, 우리가 이 레이스를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송 교수의 질문이다. 그는 저서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에서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계화는 기업들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밀어 넣는다.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의 냉혹한 법칙으로 기업들과 경제주체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강한 자는 승자로 남고, 약한 자는 도태된다. 세계화에 ‘중간’은 없다. 강익강, 약익약의 경쟁 논리에 따라 중간에 있던 이들이 양극단으로 몰리고, 세계는 ‘독식하는 소수의 강자’와 ‘쇠퇴하는 다수의 약자’로 구획된다. 시장이 인류 사회에 번영을 선사하리라는 것은 승자의 약속이자 환상이다.” 

코로나19 이전 인류가 살았던 세계 질서는 이랬다. 모두가 성장을 향해 무한 질주를 벌인 것도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승자조차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이제는 변화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송 교수가 “대변혁(Great Transformation)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가 수십 년간 이어진 것처럼 무한 경쟁과 성장 일변도 세계 질서에 대한 비판도 계속 있었다. 이번엔 좀 다를까.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문명사적 위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내 의견에 대해 ‘허황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코웃음치고 뒷짐질 여유가 사라진 시점이다. 우리가 당장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날 수 없다면, 지구 안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 규모 상위 50개국이 모여 ‘더는 이대로 갈 수 없다. 발전 속도를 늦추자’라고 합의하면 어떨까. 최소한 ‘환경 파괴 행위에는 세금을 엄청나게 물리자’라고 결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국제 협의가 아무 힘이 없는 건 역사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면 도리가 없다. 문명의 최후를 맞이할밖에. 과거 지구에는 다섯 번의 대절멸이 있었다. 이번에 여섯 번째 대절멸이 나타난다면, 지구에서 사라질 존재는 공룡이 아니라 인간이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정치사회적 격변

3월 8일 대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공기순환장치가 달린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 환자 병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3월 8일 대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공기순환장치가 달린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 환자 병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 상황이 위중한 만큼 이번에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나.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코로나19 이후 세상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풍요와 번영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줄여야 한다. 1820년 26세에 불과했던 사람 기대수명이 2020년엔 72세가 됐다. 이것을 100세, 120세까지 무한정 늘려야 하나. 그러면 지구가, 인류가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생명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100세 이상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야 변화가 시작된다. 그동안 지상 목표로 삼아왔던 ‘성장’ 앞에 ‘적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때다.” 

송 교수는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이 급변하는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과 지배적 정치경제체제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어떤 변화에 주목하고 있나.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사회부터 얘기해 보자. 코로나19는 1200년 무렵부터 이어져온 현행 대학 체계, 즉 대규모 캠퍼스를 두고 면대면 강의를 기본으로 하는 시스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머잖아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미네르바 스쿨’ 같은 형태의 대학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기업들도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시험해 본 회사가 많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 업무를 처리하는 현행 방식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앞으로 비대면 업무 분야를 넓히면 필연적으로 조직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일단 중간급 매니저의 할 일이 사라진다. 전자통신(IT) 기술 발전으로 회사 경영진이 수백, 수천 명의 구성원을 직접 관리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 결과 고용이 유연해지고, 사회안전망(safety net)에 대한 수요가 커질 거다.” 

- 코로나19 이후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력 또한 커졌다는 분석이 있다. 

“이번에 세계를 놀라게 한 K방역은 4T, 즉 시험(Test), 추적(Trace), 치료(Treat), 투명성(Transparency)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특히 방역 당국이 확진자와 주변 사람 동선을 빈틈없이 추적해 바이러스 확산을 강력하게 차단하는 것에 많은 이가 혀를 내둘렀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자연인이다’ 하고 살아도 모든 활동이 금세 파악된다. 게다가 IT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고,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 및 관리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게 분명하다.” 

- 이런 변화가 정치경제체제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나. 

“나는 코로나19 이후 ‘판옵틱 소사이어티(Panoptic Society)’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형 감옥(판옵티콘)에서 망루에 앉은 간수 한 명이 360도 반경의 죄수 모두를 감시하듯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 기업이 개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의 미래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 코로나19가 민주주의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효율적인 정치체제가 아니다. 현재 세계 200개 국가 가운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는 70~80개에 불과하다. 제도를 잘 운영하는 곳은 그중에서도 40개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체제로 운영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정치체제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코로나19로 문명 패러다임이 바뀌고 전자정부와 판옵틱 소사이어티가 일반화하는 상황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권력이 몇 사람, 몇 개 초점에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진다.” 

- 최근 홍콩에서 중국 간섭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식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 

“최근 정부 권력의 과도한 비대화를 경고하는 지식인의 목소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저항과 비판은 계속될 것이고, 계속돼야 한다. 다만 현실적 관점에서,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새로운 정치경제체제가 지배적 위상을 가진 세계에서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시민사회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더욱 중요해지겠다. 

“자발적 시민운동은 권력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운동조차 상당 부분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된 게 현실이다.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강력한 지도자가 주도적으로 운동을 끌고 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한다. 이것은 시민운동 지도자의 개별적인 정치화라 할 수 있지만, 달리 말하면 정치적인 매수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정치권이 시민단체 지도자에게 자리를 주고, 그들을 우군으로 삼으면 시민운동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항성과 비판의식을 잃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정부 독주에 제동을 거는 구실은 거의 못하고 있다.” 

- 최근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성공과 총선 승리로 국정 운영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실력 이상으로 들떠 있는 것 같아 다소 걱정스럽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대 국회의원들과 만난 첫 의원총회에서 ‘그간 잘못된 현대사의 왜곡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과중한 책무가 여러분에게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역사는 정치인이 쓰는 게 아니다. 역사 안에 정치가 들어 있고 역사의 바다에 정치가 놀고 있는 거다. 얼마나 오만한 말인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관(官)이 잘한 것은 사실이다. 초기 대응에 문제점이 많았지만, 이후 전면적 방역체계를 가동해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그러나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의료진과 시민의 헌신적 노력이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급속도로 확산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의료진이 자진해 대구행을 택했나. 일반 국민 또한 일상을 희생하며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동안 몸에 밴 위기대응성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정부가 방향을 정하면 마라도에 사는 주민까지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그게 바로 K방역 성공의 원동력이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송 교수는 이 대목에서 “나는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서구 사회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했다. 우리가 그동안 이룩해 온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말도 했다. 

- 미국,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내부에 이질적 집단을 나누고 차별하는 제도적 칸막이가 무수히 쳐져 있다는 점이다. 이민, 계급, 인종, 종교 등으로 나뉜 각각의 집단이 고립돼 있다. 그렇다 보니 의료나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시민 모두가 사회적 혜택을 골고루 나누는 공존, 공생의 세계가 아니다. 코로나19는 그 틈을 비집고 급속도로 확산했다.” 

반면 한국은 이번에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는 게 송 교수 생각이다. 그는 “정부가 이 힘과 역량을 새로운 사회 설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성취를 자화자찬할 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형 뉴딜의 도전

코로나19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비접촉 소비문화 확산으로 택배 배달 등에 쓰이는 포장재 소비는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다. 5월 4일 서울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쓰레기선별업체 노동자가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비접촉 소비문화 확산으로 택배 배달 등에 쓰이는 포장재 소비는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다. 5월 4일 서울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쓰레기선별업체 노동자가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뉴스1]

-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대응 전략으로 ‘한국형 뉴딜’ 추진 계획을 밝혔다. 

“한국형 뉴딜이라는 말은 잘 만들었다. 코로나19 이후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정부 자세도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그 방식에 아쉬운 면이 있다. 한국형 뉴딜은 문재인 정부를 넘어 대한민국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그렇다면 이 논의에 누가 참여하는지, 그들이 현재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 사회 각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지금 이런 과정이 생략돼 있다. 

아는 사람끼리 모여 정책을 다 만든 뒤 멋들어지게 발표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탈원전 정책의 재판이 될까 걱정된다.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겠다’고 한 후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이 생겼나. 이번엔 그러면 안 된다. 보름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대국민 대화 등 가능한 방식으로 논의 과정을 공개하면 좋겠다. 현재가 문명사적 전환기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이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 3주년 기념 연설에서 ‘포스트 코로나’ 경제 대책 중 하나로 ‘리쇼어링(Reshoring•기업 본국 귀환)’을 통한 제조업 부활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코로나19로 인해 국제 분업 시스템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를 계기로 리쇼어링을 추진하겠다는 방향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기업이 돌아오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계속 오르고, 노동경직성이 높다. 막대한 법인세와 증여세, 상속세에 각종 규제가 있다. 이 공간으로 기업이 자진해 돌아올까? 대한민국을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만들려면, 국내 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형 뉴딜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제 ‘뉴노멀’은 △비대면 문화 확산 및 디지털화 △탈(脫)세계화에 따른 리쇼어링 △대량생산·소비에 대한 생태론적 반성 등이라고 본다. 이처럼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보고 방향을 정해야 한다. 우리는 정보기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인터넷교육, 화상경영, 화상예배, IT행정, 원격진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더불어 변화하는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들이 생계 불안 등에 시달리지 않도록 새로운 형태의 고용보험을 만드는 등 노동유연화 시대에 대비할 전략도 세워야 할 것이다. 또 △재생에너지 사용을 30%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30% 높이고 △석탄에너지 사용을 30% 줄이는 ‘30-30-30 그린 뉴딜 프로젝트’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일반 시민에게도 한 말씀 해달라. 

“우리가 거대한 전환기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활 주변과 내 삶의 방식부터 바꿔가길 권한다. 평소 하루에 물을 얼마나 쓰는지, 쓰레기는 얼마나 생산하는지, 지구 환경을 괴롭히는 행동을 얼마나 하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면 어떨까. 인간 행동의 15%가 탄소 배출과 관련 있다고 한다. 이것을 줄이려는 노력이 일상화되면, 거기서부터 진정한 시민운동이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풍요와 번영을 향한 욕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아파트 한 채를 사려고 평생을 바치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에 대해 돌아볼 수 있다. 

수많은 학자가 지구 문명이 이대로 이어질 경우 2100년이 오기 전 인류가 절멸한다고 말한다. 나 또한 수십억 인구가 탄소를 대기권에 거침없이 배출하고 오폐수를 하천에 마구 방류하는 삶이 계속 이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에는 땅만 있는 게 아니라 대기와 지하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공간들을 외면한 채 오직 지표만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다. 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



신동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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