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新지방시대 리더

“청렴하고 일 많이 한 시장으로 평가받고 싶다”

‘도지사 도전’ 권민호 경남 거제시장

  • 조성식|동아일보 출판국 디지털미디어팀장 mairso2@donga.com , 강정훈|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manman@donga.com

    입력2017-05-18 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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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 생가 특별관리하겠다
    • 해양플랜트 산단, 300만 원대 아파트…‘국내 최초’ 많아
    • “불 꺼진 도시? 과장된 언론보도가 되레 소비 위축”
    ‘불꺼진 도시’ 거제가 요즘 활기를 띤다. 1조8000억 원짜리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산단) 조성 사업이 진척되면서 경기가 살아나는 데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왕가의 터’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시내 곳곳에 문 대통령의 당선과 취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최근 조선업 불황으로 타격을 받긴 했지만 거제는 여전히 경상남도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잘사는 도시로 꼽힌다. 시·군·구 기준으로 경남 1위, 전국 8위의 도시경쟁력을 갖게 된 데는 권민호(61) 시장의 공이 크다. 지난 7년간 거제호(號)를 몰아온 권 시장은 내년에 3선을 내다본다. 하지만 그는 더는 시장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작정이다. 목표가 따로 있다. 바로 도지사다.

    거제시청에 가면 시장을 만나기가 쉽다. 청사 1층에서 직원들과 나란히 앉아 근무해서다. 그와 초면인 기자는 처음엔 몰라봤다. 한쪽 구석에서 조금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기에 국장이나 과장쯤으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시장이었다. 칸막이도 없다. 이른바 ‘열린 시장실’이다. 시장을 비롯해 모든 직원이 파란색 점퍼를 입은 것도 인상적이다.



    대선 한 달 전 탈당

    -단체복을 입은 게 특이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다. 공무원이라는 표를 내고 공무원답게 행동하자는 뜻에서 6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근무복을 입으면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파란색은 해양도시를 상징한다.”



    -거제는 문 대통령의 고향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지지표가 많이 나왔나.
    “2012년엔 (박근혜 후보에게) 큰 표차로 졌다. 그때만 해도 문 대통령과 거제의 인연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이번엔 정반대로 압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도가 올라갔다.”

    -문 대통령 생가에 대한 특별한 관리계획이 있나.
    “역사적 의미도 크지만 관광자원으로도 가치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타인 소유라서 보존을 위한 행정절차를 밟는 중이다. 대통령 당선 후 탐방객이 증가하는데, 주변 도로가 좁고 주차장과 편의시설이 없다. 시에서 적극 나서서 관광객의 불편을 해소하겠다.”

    경남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하다. 국회의원이든 자치단체장이든 옛 여당 소속이 압도적으로 많다. 권 시장은 대선을 한 달 앞둔 4월 탈당했다. “욕 좀 먹지 않았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지켜보면서 두 번의 보수정권이 국민에게 뭘 해줬는지 반추했다. 탄핵으로 국민 갈등과 분열이 심해지고 국격이 떨어졌다. 보수는 반성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빌고 사과했어야 한다. 대선후보를 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이런 당에 계속 남는 게 옳은지 수개월 고민했다. 내 고장 출신 대선후보에 대한 예의 문제도 고려했다.”

    그는 현재 무소속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경남 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탈당했다고 한다.

    -3선 도전을 안 한다고 들었다.
    “어릴 때 집안이 지독하게 가난했다. 머슴도 하고 학교 사환도 하고 고깃배도 탔다. 남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어린 시절 꿈이던 교사가 됐다. 정치라는 외도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학교로 되돌아가 아이들에게 봉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장에 재선되고 나서 도지사 꿈을 키워왔다. 두 차례 도의원과 시장을 지내면서 축적한 경험과 실력으로 도민에게 봉사하고 싶다. 시장 직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준다는 의미도 있다.”



    교사→시장→도지사로 바뀐 꿈

    -도지사 나가려면 정당이 필요하지 않겠나.
    “탈당을 했기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 무소속을 유지할지 민주당으로 갈아탈지 고민 중이다. 자칫 정치 미아가 될 수도 있겠고.”
     
    -민주당 반응은 어떤가.
    “호의적이긴 한데, 기득권을 지키려거나 경쟁관계인 사람들이 견제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제 집권당이다. 다양한 인재를 영입해 수권 능력을 키워야 한다.”

    현재 경남지사는 공석이다. 홍준표 전 지사의 ‘꼼수 사퇴’ 탓에 보궐선거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홍 전 지사의 ‘꼼수 사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보궐선거 비용을 아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역량 있는 후임 지사가 잘 이끈다면 그 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을 낼 수 있다. 지사가 없으면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홍 전 지사와의 관계는 어땠나.
    “재임 당시 무상급식 중단을 결정할 때 나를 포함한 새누리당 소속 경남 자치단체장들은 모두 동의했다. 이후 학부모들의 항의집회가 격렬해졌다. 그래서 회의 때 그에게 ‘급식 중단 비용보다 사회적 갈등 비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거제는 가장 잘사는 곳이니 알아서 하라’고 버럭 화를 내더라.”

    -홍 전 지사의 도정(道政) 운영을 평가한다면? 나중에 도지사가 된다면 어떤 걸 어떻게 바꾸고 싶나.
    “홍 전 지사는 부채 1조4000억 원을 갚았다고 자랑했다. 도가 사업을 해서 수익을 내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 빚을 갚았다면 마땅히 박수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시·군 발전에 필요한 사업예산을 안 써서 부채를 줄였다면 얘기가 다르다. 자칫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 부채를 갚는 게 능사가 아니다. 지역 성장과 발전에 필요하다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



    “조선업, 경영체질 바꿔야 살아남아”

    바다를 매립해 만드는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은 권 시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다. 500만㎡ 규모인 이 산단이 조성되면 2조5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1만5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권 시장의 뚝심이 없었다면 추진하기 힘든 사업이었다.

    “해양플랜트 산단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다. 고 정주영 회장이 서산 간척지를 조성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매립사업이다. 애초 정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내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일 테니 인·허가만 내달라고 요청했다. 허가해주지 않으면 머리 깎고 청와대 앞에서 거제시민들과 함께 시위하겠다고 했다. 이제 행정절차는 거의 다 밟았고,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 절차만 남았다. 7월에 최종 승인이 나면 해당 지역 주민의 어업권 등에 대한 보상 협의를 시작할 것이다.”

    권 시장은 “산단을 추진하면서 많은 오해와 음해를 받았다”며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부정을 저질렀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이 되면서 두 가지 큰 약속을 했다. 하나는 정직하고 청렴한 시장이 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산단 조성처럼 거제의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공약을 지키려 근무복을 입고 누구나 편히 만날 수 있는 열린 시장실을 만들었다. 출퇴근 때 관용차 대신 자가용 경차를 손수 운전한다. 가족 애경사에 부조금을 일절 받지 않았다.”

    -거제 경제의 동력인 조선업이 휘청거린다.
    “한국 조선업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그간 우리가 유럽이나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유지했던 건 싼 인건비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건비가 중국의 4배, 필리핀의 20배다. 고정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계속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적 차이는 거의 없다. 40년간 해오면서 나태해진 면도 있다. 경영 체질을 바꿔야 살아남는다.”  
    삼성중공업(거제조선소), 대우조선해양 두 조선소가 거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나 된다. 26만 인구의 70%도 조선소 사람들이다.

    -인구가 많이 줄지 않았나.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조선업 근로자 1만3000명이 감소했다. 하지만 전체 인구는 되레 수백 명 늘었다.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은 임시 근로자가 많은 탓이다. 이런 사람이 2만~3만 명이다. 외국인 근로자도 1만4000명쯤 되고.”

    -언론에서 ‘불 꺼진 도시’라고 표현했는데.
    “과장됐다. 거제는 지금도 도시경쟁력이 경남 기초자치단체 중 으뜸이다. 전국 기준으로는 8위이고. 임대업과 식당, 술집이 타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언론의 과도한 보도로 되레 소비가 위축되는 면도 있다.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싶다.”


    “서민에게 특혜 주는 게 잘못이냐”

    -300만 원대 서민아파트가 화제다.
    “나도 가난하게 살았기에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300만 원대 아파트에 대해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은 반대했다. 부지 매입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것만 해결되면 가능한 일이었다. 건축 제한에 묶인 땅들을 풀어주고 그 일부를 기부받는 방식으로 부지를 마련했다. 올해 3월 착공했는데 12평짜리 영구임대주택과 18평짜리 국민임대주택 두 종류다. 건축비의 85%를 국토교통부에서, 12%를 거제시에서 지원한다. 입주자는 3%만 부담하면 된다. 시의회와 시민단체에서 ‘특혜’라고 비판하기에 ‘평생 집 없이 살아온 서민에게 특혜 주는 게 잘못이냐’고 말했다.”

    -입주자 선정 기준이 뭔가.
    “최저소득자,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사회적 약자 등이 우선권을 갖는다. 서민아파트의 새로운 모델이다.”
    그 밖에 권 시장은 서울에서 거제에 이르는 남부내륙철도를 추진 중이다. 기존 KTX 경부선의 남쪽 노선 일부를 변경하는 것으로, 향후 거제시의 관광산업 육성과 관련된 사업이다.

    그는 거제 출신 대통령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선거로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격을 올려주길 바란다. 전임자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청렴한 시장, 일 많이 한 시장으로 평가받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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