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영화로 읽는 세상

< 특별시민 > 한국의 선거와 당선인에 대한 냉소

  • 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7-05-19 10: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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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시기에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르 중 하나는 사회 고발 메시지를 담은 정치 스릴러 영화였다. 물론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 성공작들은 여름방학 때 개봉되는 거대 예산 영화였지만, 정치 스릴러 영화들은 봄·가을 비수기에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화제가 됐다. 이 영화들은 재벌, 정치계, 언론의 이면을 파헤치면서 관객의 공분을 자아냈다. ‘더 테러 라이브’(김병우, 2013), ‘제보자’(임순례, 2014), ‘내부자들’(우민호, 2015), ‘비밀은 없다’(이경미, 2016), ‘더 킹(한재림, 2016)’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별시민’(박인제, 2017)은 이런 정치 스릴러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조작된 대중 친화적 이미지

    ‘특별시민’은 선거를 소재로 삼았다. 앞서 개봉한 ‘비밀은 없다’도 국회의원 보궐선거 상황에서 한 후보의 아내가 딸의 실종과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을 다룬다. ‘비밀은 없다’는 선거 그 자체보다는 선거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소외와 억압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면 ‘특별시민’은 선거 그 자체를 다룬다. 선거 과정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와 이미지 메이킹을 조명한다. 

    5·9 대통령선거는 지난가을부터 이어진 촛불집회와 탄핵 사태의 부산물이지만,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초대형 사건인 선거는 영화의 좋은 소재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정치 풍자영화인 ‘잘 돼 갑니다’(조긍하 연출)는 대통령선거가 있던 1968년에 개봉됐다. 한국 최초의 정치 스릴러인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강우석, 1991)는 1988년 총선 결과 빚어진 여소야대라는 유화 국면과 연관된다. tvN의 주말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의 한 꼭지인 ‘여의도 텔레토비’와 이번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도 대통령선거 상황을 풍자해왔다. 2012년 대선 상황에서 개표기 작동 방식에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더 플랜’(김어준 제작, 최진성 연출, 2017)도 유튜브와 극장에서 개봉됐다.

    미국에서도 1970년대 초반부터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런 작품의 원조 격이 되는 영화로 ‘후보’(The Candidate, 마이클 리치, 1972)가 있다. 196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의 연설문 담당자인 제레미 라너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선거를 생생하게 묘사해 극찬을 받았고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선 대통령 후보 TV토론이 방영되기 시작해 미디어를 통한 선거전 양상이 본격화했다. 1970년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야와 같은 정치적 스캔들은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에 따라 이 시기에 일련의 정치 스릴러 영화와 음모론을 다룬 영화들이 자주 만들어졌다.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 알란 J. 파큘라, 1976), ‘대화’(The Conversation, 프랜시스 코폴라, 1974), ‘노 웨이 아웃’(로저 도날드슨, 1987), ‘파워’(시드니 루멧, 1986), ‘밥 로버츠’(팀 로빈스, 1992)가 대표적 작품이다.

    ‘특별시민’은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변종구 후보(최민식)와 상대 정당의 양진주 후보(라미란)의 선거 캠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변종구는 다이나믹 듀오의 랩 공연에 나와 랩을 한다. 이어 그 자리에서 토크쇼를 한다. 여기서 젊은 광고 전문가 박경(심은경)은 변종구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지만 변종구는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잘 모면한다. 변종구에 대항하는 양진주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남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다. 이때 바람에 흩날린 원고를 줍느라 살짝 노출된 자신의 가슴에 미디어가 주목하게 한다. 이후 변종구의 선거운동본부 본부장인 국회의원 심혁수(곽도원)는 박경을 스카우트한다. 박경은 심혁수가 제공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인터넷 검색어 1위에 변종구를 올림으로써 능력을 입증한다. 이후에 이야기는 심혁수가 작전을 짜고 박경이 실행하는 구도로 진행된다.

    변종구 캠프는 ‘변종구는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애쓴다. 이들은 또 변종구가 자신이 저지른 일탈을 은폐하려고 한다. 변종구의 아내(서이숙)가 값비싼 서예 작품을 구입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자 변종구는 아내를 구타하고 술에 취한 채 딸(이수경)의 차를 몰고 나간다. 변종구는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기 위해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단속 경찰들을 철수시킨다. 그러나 비 오는 산길에서 차로 군인을 치고 만다. 이 사건을 덮기 위해 변종구는 자기 비서를 동원한다. 그럼에도 비밀이 밝혀지자 딸로 하여금 대신 죄를 뒤집어쓰도록 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진실은 은폐되고 불의는 승리한다

    영화에선 변종구에 대항하는 양진주 진영의 모습도 간간이 비친다. 여기서는 변종구 진영의 박경에 대비되는 인물로 이상주의적 광고 전문가인 임민선(류혜영)이 등장한다. 박경과 임민선은 처지가 다르지만 전문적 식견, 실력, 양심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이 둘은 후보자들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즉, 이 두 인물은 변종구와 양진주의 반칙과 무리수를 바라보는 눈이 된다. 또한 이들은 변종구와 양진주의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짠다.

    그러나 영화가 변종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임민선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박경은 심혁수의 지시로 방송국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른다. 임민선은 선거 중반 양진주 캠프에서 나오며, 박경은 선거가 끝난 후 변종구 측을 떠난다.

    영화는 최종 승리를 거둔 변종구가 자신의 추문을 처리해준 길수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끝까지 가자”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전에 변종구는 심혁수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고 변종구의 약점을 쥔 심혁수는 사고로 죽었다. 따라서 관객은 변종구의 “끝까지 가자”는 말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담아낸다. 영화는 이렇게 부패한 한국 정치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유지한다. 그나마 양심 때문에 고민한 이들은 중간에 정계를 떠난다.



    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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