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친일 논란’ 작가가 그린 춘향영정이 민족의식 키운 矛盾

[노정태의 뷰파인더] 화가는 몰라도 그림은 죄가 없다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6-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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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자료에 나타난 어떤 불만

    • ‘1대 춘향’에서 ‘3대 춘향’까지

    • 탁월한 인물화가·체제 순응자

    • ‘청산’하면 속 후련할지 몰라도

    • 2대 춘향 복권도 하나의 방법

    김은호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1939·왼쪽)과 김현철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2023). [남원시]

    김은호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1939·왼쪽)과 김현철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2023). [남원시]

    “새 그림 속 춘향은 도저히 10대라고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이다.”

    6월 14일 전북 남원지역 일부 시민단체로 이뤄진 남원시민사회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서 발송한 보도자료의 한 문장이다. 5월 25일 제93회 춘향제에 앞서 남원 광한루 춘향사당에 새로운 춘향영정이 봉안됐는데, 그 영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논란의 내용은 인용한 문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안 예쁘다’는 불만이다. 판소리 ‘춘향전’의 주인공 성춘향은 꽃다운 이팔청춘 방년 16세.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보자마자 사랑에 빠질 만큼 어여쁜 소녀다. 새로운 춘향영정에는 그 미모가 제대로 묘사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춘향영정을 그린 이는 동양화가이자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인 김현철 화백이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6월 16일 한 방송사와의 통화를 통해 본인의 심경을 밝혔다. “새 영정 제작에 앞서 남원 소재 여고에서 추천받은 여고생 7명을 참고”하여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는 이 시대의 여성상을 그리고자 했다”는 것이 김현철의 입장이다.

    그가 5월 28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춘향영정(春香影幀) 제작기’를 통해 그의 제작 취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930년대 김은호 화백이 춘향영정을 제작할 때, 젊고 예쁜 춘향상을 그려주기를 원했다 한다. 금번 새롭게 춘향영정을 제작하며 예쁜 춘향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춘향상을 그리려 했다.” 1930년대의 춘향영정의 테마가 ‘젊음과 예쁨’이었다면 2023년에는 ‘시대에 맞는 아름다움’, 구체적으로 “당당하며 주체적 삶을 영위한 춘향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춘향영정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친일 청산’이라는 명분하에 허용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미성년자의 성적 재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은 무엇인지, 차분히 따져보도록 하자.

    ‘외모 논란’과 ‘친일 논란’

    영정이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용하는 초상화를 뜻한다. 춘향영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성춘향이라는 구전소설 및 판소리의 주인공을 제사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대체 누굴까. 정답은 춘향전의 무대인 남원의 시민들이다. 1931년부터 지금까지 춘향전을 주제로 지역 축제를 하며, 그 일환으로 영정을 모셨다.

    지금껏 남원 시민을 비롯한 온 국민에게 익숙한 춘향의 모습은 김현철의 표현에 따르면 ‘2대 춘향’이다. ‘1대 춘향’은 1931년작으로 누가 작가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2대 춘향’은 1939년 김은호 화백이 그렸고 한국전쟁 당시 유실됐지만 1961년 화가 본인이 다시 복원한 작품이다. 2020년 10월까지 쓰이다가 철거된 후 햇수로 3년이 흘렀고, 2023년 5월에 이르러 새로운 춘향, ‘3대 춘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춘향이 실존했던 인물도 아니거니와, 설령 실존인물이라 해도 영정을 다시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여기에는 각각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1931년작 1대 춘향영정은 모 은행의 일본인과 한국인 은행장이 “못생겼으니 다시 그려라”라고 지시하여, 당시 실력을 인정받던 김은호가 붓을 잡았다고 한다.

    김은호의 춘향영정은 오래도록 사랑받았다. 1936년 이래 2020년까지 사용됐고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으니, 대한민국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좋은’ 그림이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은 미적 이유보다는 사회적 이유 때문이었다. 2008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 705명을 발표했는데 김은호의 이름이 그 속에 끼어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친일파가 그린 춘향영정 용납할 수 없다’며 교체를 주장해왔다.

    결국 2020년 10월 2대 춘향은 남원 광한루 내에 있는 춘향 사당인 ‘열녀춘향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1대에서 2대, 2대에서 3대로 넘어간 교체의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첫 번째는 ‘외모 논란’, 두 번째는 ‘친일 논란’ 때문이었던 것이다.

    춘향이와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남원 광한루(廣寒樓). [동아DB]

    춘향이와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남원 광한루(廣寒樓). [동아DB]

    1892년생 김은호

    순서를 바꿔 ‘친일 논란’을 먼저 따져보자. 김은호는 1892년 태어났다.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에 의한 조선 병합을 지켜봤고, 3·1 운동 당시 시위에 참여한 기록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일제의 조선 지배가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그는 저항보다 체제 순응을 택했다. ‘친일파’로 지목될만한 행보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이 처음 출간될 때부터 그 이름이 등재됐다.

    문제는 김은호가 걸어온 화가로서의 경력과 그의 ‘체제 친화성’을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앞서 말했듯 김은호는 구한말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워낙 그림 재주가 빼어났다. 조선은 망했지만 이씨 왕가는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일을 전담하던 기구인 이왕직은 여전히 임금의 초상, 즉 어진(御眞)을 그리는 화사(畵史)를 육성했다. 김은호가 얻은 직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이력과 전공 분야 등을 놓고 볼 때, 탁월한 인물화가이자 체제 순응자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권력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용화가였다. 그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순응했고, 창씨개명을 하고, 후학을 양성하거나 일본 유학을 후원한 것 등의 행적 역시 자연스럽다.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독립투사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는 현실을 너무도 쉽게 간과해버리곤 한다.

    필자에게는 전통시대의 화법으로 그려낸 인물화를 평가할 감식안이 없다. 하지만 김은호의 춘향영정이 걸작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실의 문제다. 심지어 해방 이전의 남원과 한반도에 살았던 시민들 역시 김은호의 춘향영정을 사랑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자 시민들이 다시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사정이 생겨 그 돈을 받지는 못했지만 남원 읍민과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위촉해왔다”는 것이 김은호의 회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호의 춘향영정을 쫓아내는 것은 ‘친일파의 흔적은 그 무엇도 용납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청산’해버리면 당장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더 큰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친일파 김은호’가 그린 춘향영정을 보며 식민지 조선인들은 민족의식을 키웠고, 해방된 조국에서 살아가던 이들마저 그 춘향을 그리워하여 소실된 영정을 다시 그리게 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지워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화가 한 사람의 정치적 행적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식민지 조선인과 대한민국 사람들의 그 오랜 사랑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속이 시원할까.

    “아름다운 춘향상 그리려 했다”

    2대 영정을 치워버리고 3대 영정을 새롭게 그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다시 그린 춘향은 과거와 달리 무턱대고 ‘예쁨’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춘향이 몽룡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그의 나이 16세 되던 단오날이었다. 춘향전이 판소리로 정착된 19세기만 해도 16세의 여성은 미성년자로 취급되지 않았다. 김은호가 처음 영정을 그렸던 1936년, 심지어 다시 그렸던 1961년까지만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판소리 춘향전 원본에 질펀하고 에로틱한 성애의 묘사가 가득한 것은 작품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2023년이라는 것이다. 이제 16세의 여성은 ‘꽃다운 처녀’가 아니다.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자다. 16세 소녀를 에로틱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있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길거리나 대중문화에서는 그 나이대 소녀들이 스스로 야하게 입고 다니기도 하고, 선정적인 춤을 추며 자신의 모습을 SNS에 업로드하고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춘향영정은 어디까지나 남원시가 남원문화원에 제작을 위탁해 만들어진, 세금으로 나온 작품이다. 다소 위선적으로 느껴질지언정 우리 사회가 공적으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를 지켜야 한다. ‘춘향전이 에로틱한 이야기인 것을 누가 모르냐, 옛날 소설인데 뭐 어쩌라는 거냐’는 항변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금번 새롭게 춘향영정을 제작하며 예쁜 춘향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춘향상을 그리려 했다.” 새 춘향영정의 작가인 김현철의 말은 바로 그런 맥락 하에서 이해돼야 한다. 21세기의 우리가 새로운 춘향영정에 기존과 같은 선정적, 탐미적, 육체적 시선을 투영하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한다면, 그것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보호하고 건전한 성인으로 육성한다는 현대적 가치관을 부정하는 일이다.

    단지 그 배경이 전통 사회라는 이유로, 혹은 전통 문화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 용납될 수 있을까. 오늘날까지도 그런 기준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나라가 있다. 우리를 식민 지배했던 일본이 바로 그렇다. 배우 이지은(아이유)을 캐스팅한 영화 ‘브로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공개한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은 일본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의 관객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10대 소녀가 요정에서 무희가 되는 대신 식당에서 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전히 그런 소재가 ‘메이저’하게 제작될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이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 춘향영정은 세금이 투입된 공공의 자산이다. 10대 소녀의 영정에 ‘예쁨’을, ‘매력’을 담아내는 것은 21세기에 맞지 않는 일일 수밖에 없다.

    구시대의 유능한 이들

    ‘친일 논란’으로 춘향영정을 대체하자 ‘예쁨 논란’이 벌어지는 모습이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희극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예쁜 춘향’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준에서나 통용될 수 있던 구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구시대의 유능한 이들은 적잖은 경우 그 시대 속에서 출세했고, 후대인에게 친일파로 분류될 수 있는 행적을 쌓은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친일파 춘향이’를 쫓아내고 나면 새로운 시대의 춘향이를 그려야 하는데, 오늘날의 초상화가는 오늘날의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과거처럼 ‘예쁜 춘향’을 그려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변화된 가치관에 맞게 새로 그려진 3대 춘향영정을 사용하는 것이 정답이긴 하다. 하지만 ‘예쁜 춘향’을 포기할 수 없다면,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그림을 즐겨왔던 수많은 이들의 추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2대 춘향을 복권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옛말에 구관이 명관이라 하지 않았던가. 화가는 몰라도 그림은 죄가 없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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