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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자’ ‘룰 메이커’ 요구받는 이재용, 비전 제시까지 침묵의 시간 길다 [+영상]

[Special Report | 이건희 新경영 30년 시점에서 대한민국 ‘미래 30년’ 보다] 같은 듯 다른 3人 경영 스타일

  •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입력2023-07-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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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리 추구’ ‘속도경영’ 이병철

    • ‘질 경영’ ‘인간·기술 중시’ 이건희

    • ‘뉴 삼성’ 미래 찾는 이재용

    지난해 5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지난해 5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영상] 반도체 전쟁 중인 지금은 '이건희' 다시 읽을 때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라는 일성으로 유명한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6월 7일로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재용 회장은 신경영 30주년을 맞은 이날 침묵했다. 이건희 회장이 2003년 ‘신경영 10주년’ 기념식에서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이류, 삼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고 말한 것과 대비된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20주년’ 행사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거듭 긴장의 고삐를 쥐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이끄는 내내 구성원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면서도 동시에 ‘비전 제시자’ 구실을 했다. 그런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후 2020년 사망할 때까지 경영 일선에 돌아오지 못했다.

    한 세대는 30년으로 볼 수 있다. 30년을 이어온 삼성의 신경영은 어떤 측면에서는 낡은 틀일 수도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역사는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자본축적과 ‘합리 추구’ 경영 시대, ‘신경영’ 선언으로 대표되는 2세대 이건희 회장의 부흥 시대, 그리고 3세대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시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세 명의 회장은 자신들이 처한 당시 시대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경영 방식을 택해 지금의 삼성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합리 추구, 속도 경영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동아DB]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동아DB]

    기업사적으로 보면 이병철 회장 시대는 시장 환경을 학습한 ‘수습기간’과 사업 다각화로 시장을 넓힌 ‘확장기’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삼성이 기업으로서 성장의 변곡점을 맞이한 시기는 일제 말 이후 우리나라 산업구조 변화 시점과 대체로 일치한다. 즉 삼성은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 발전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은 초기 자본 축적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 수준과 자체 역량을 철저히 고려해 사업을 전개했고, 그 덕에 성공률을 높였다. 이병철 회장은 국내 사업으로 자본을 충분히 쌓았고, 압축 고도성장기에는 정부 상업차관 등 유리한 경영환경을 적기에 활용했다. 이는 창업 초기부터 건설·조선·자동차 등 수출 제조업으로 기반을 닦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삼성그룹 매출 비중은 1956년 제당·모직 등 제조 부문이 대부분이었다. 1966년에는 제조(50%)-금융(33%)-무역(10%)으로 다각화됐고, 1986년에는 전자(16%)와 서비스업(9%)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합리 추구’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한 속도경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직관에 기초한 선견지명을 가진 경영자였다. ‘파괴적 혁신’을 펴낸 클레이 크리스텐슨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지도자의 선견지명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신(神)은 데이터를 오로지 과거를 분석하는 데만 유효하게 창조했다. 미래를 보는 데이터는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분석을 끝내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쯤이면 이미 세상은 변했다. 데이터 없이 의사결정을 하려면 완벽한 직관력을 가진 리더를 가지고 있든지,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직관력을 가진 리더’가 이병철 회장인 셈이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병철 회장이 추구한 삼성 기업모델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랑리 박 프랑스 소르본대학 연구원은 호암 이병철 100주년 학술포럼에서 “아시아적 가치인 신유교주의에 선진국의 경영방식을 종합한 독창적인 경영 모델”이라며 “‘삼성 시스템’은 한국의 신유교주의와 일본식 경영시스템, 그리고 독일식 생산방식과 미국의 관리 방식을 종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삼성 시스템은 선진국의 기술 장벽을 넘기 위한 인력 투자, 실용과 성과 중심의 조직관리 등이 시너지 효과를 낸 ‘한국식 성공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 산업화 초기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단시일 안에 과업 완수’를 지상과제로 삼고 ‘속도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택했다. 이를 위해 기계장비 같은 인프라 구축 못지않게 조직 구성원이 하나로 뭉쳐 일사불란 하게 움직여 속도를 높이는 경영에 힘을 쏟았다.

    속도경영의 대표적 일화가 1983년 반도체 공장 신설이다. 한국경제신문이 2011년 보도한 ‘삼성전자 40년 미공개 社史’ 보도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삼성석유화학 한 임원을 호출해 6개월 만에 기흥 반도체 공장을 완공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기술력이 뛰어난 선진국도 1년 6개월은 족히 걸리던 시절이다. 더군다나 삼성은 반도체 공장을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던 시절이다.

    이 회장이 무모하게 보이는 지시를 한 것은 당시 64K D램이 없어서 못 팔 만큼 호황기였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호황이 끝나기 전에 반도체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며 속도경영을 주문한 것이다. 실무자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이 회장은 모든 공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동기화’ 방식으로 속도경영의 모범을 보였다.

    이건희 회장의 ‘위기경영’론

    삼성 창업주 1세대 이병철 회장은 ‘합리 추구’와 ‘속도경영’을 바탕으로 충분한 자본을 축적했다. 이 같은 자본축적 토대 위에 ‘양(量)’이 아닌 ‘질(質)’로 승부를 내 글로벌 대기업으로 발돋움시킨 게 2세대 이건희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 경영방식은 ‘인간과 기술 중시 경영’ ‘질(質)경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부터 8월 4일까지 68일간 독일, 스위스, 영국, 일본을 오가며 1800명의 임직원과 350시간에 걸쳐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장단과는 800시간이 넘는 토론을 이어갔다. 평소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는 과묵한 이 회장이지만 이 기간에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건희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향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신경영을 선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회장이 변화를 강조한 동인은 ‘위기의식’이었다. 나부터 일류로 변해 품질과 서비스를 높여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자는 게 신경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삼성은 인재와 기술을 중심으로 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1993년 당시 자산 41조 원 수준이던 삼성전자는 2022년에 자산 448조 원 규모의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도 사상 처음으로 300조 원을 넘어섰다. “삼성이 흔들리면 대한민국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은 한국 경제의 대들보 구실을 하고 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동아DB]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동아DB]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1993년 신경영 선언 전까지 삼성 회장으로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이건희 에세이’에서 삼성 회장에 막 올랐을 때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1979년 부회장이 된 이후 경영에 부분적으로 관여해 왔지만 그때는 ‘선친’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삼성회장 취임 이후 5년이 지난 1993년 6월 7일 51세의 이건희 회장은 작심한 듯 신경영 선포를 시작으로 엄청난 발언을 쏟아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병철 선대 회장 작품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기여한 바도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 생전에 이건희 회장은 선대 회장의 조력자 구실에 충실했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 2월 기흥에 반도체 3라인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해 12월 별세했다. 당시는 1985년부터 진행된 일본 업체의 저가 공세에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고, 1986년에는 불황까지 닥쳤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더 박차를 가했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산업의 ‘업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즉 반도체는 전형적인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하는 쪽이 이기게 돼 있는 일종의 치킨게임이란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경기침체기에 투자를 줄였다. 이건희 회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경기회복기를 대비해 오히려 공격적 투자에 나섰다. 설비 가격이 싸지는 경기침체기를 투자 확대 기회로 적극 활용한 것이다. 경기회복기에 투자를 늘린 일본 업체들은 제품이 생산될 쯤에는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져 채산성이 악화됐다. 삼성 반도체의 고수익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변화와 혁신의 동인으로 ‘위기의식’을 끊임없이 임직원에게 고취시켜 경영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03년 신경영 10주년 기념식에서 “지금 잘나가기 때문에 과거와 단절하기 어렵고 자만해 변신의 기회를 놓칠까 두렵다”고 말했다. 2004년 삼성이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리자 이 회장은 2005년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오르기는 어려우나 떨어지기는 쉬운 정상의 발치에 있다. 이 순간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하고 힘을 모으면 정상을 밟을 수 있지만, 자칫 방심하면 순식간에 산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늘 경고했다.

    그의 위기경영론은 삼성전자 40주년이던 2009년에도 계속됐다.

    “산업의 주도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미국에서 시작한 반도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고 머지않아 다른 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도전은 멈춰서는 안 된다. 자만과 안일에 빠지면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010년 3월 회장직에 복귀한 그는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다시 한번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2013년 신경영 20주년 행사장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위기 경영은 자기반성의 기초가 돼 끊임없는 혁신을 일으키며 현재의 ‘초격차’ 삼성을 만든 기초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길어지는 침묵의 시간

    2022년 10월 이재용 회장은 조용히 회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은 취임 소회에서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대안과 새로운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부터 삼성은 매해 신경영에 대한 별도의 기념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신경영 30주년이 되는 6월 7일에 삼성 안팎에서는 회장에 취임한 이재용 회장이 ‘제2의 신경영’ 선언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특별한 메시지 없이 지나갔다.

    현재 국제사회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주 먹거리인 반도체 사업은 위기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 실적은 지난해 4분기 96.9% 급감하며 적자를 겨우 면했다. 올 1분기 영업이익도 지난해 동기 대비 95.5% 급감한 6402억 원에 그쳤다. 특히 반도체 부문은 4조5800억 원의 적자를 내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212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49% 줄어든 수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 이후 최악의 분기 성적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95.45% 줄어든 1분기 실적(6402억 원)보다도 더 부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영업 적자를 기록한 지난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최저 실적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지난해 3분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점유율은 대만 TSMC가 56.1%로 압도적 1위로, 삼성전자는 2위(15.5%)에 머물렀다. 삼성전자는 고객사 확보 경쟁에서 TSMC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사용해 3나노 공정 양산을 TSMC보다 6개월 먼저이자 세계 최초로 시작했지만, 3나노에서도 굵직한 고객사를 확보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올해 1분기 동안 점유율 1위를 기록했지만 프리미엄 폰에서는 시장에서 밀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 기준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500달러 이상 고가폰 시장 비중은 31%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아이폰14 프로맥스’로 조사됐다. 2위는 ‘아이폰14 프로’가 차지했고, ‘아이폰14’ ‘아이폰13’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가 올 초 출시한 ‘갤럭시S23 울트라’와 ‘갤럭시S23’는 각각 5위, 7위에 머물렀다. 판매 상위 10개 제품 중 6개가 애플 제품이다.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대형 인수·합병도 없다. 삼성은 미래 전략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평가가 많다. 글로벌 시장 다변화에 따라 삼성이 복합적인 도전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회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경영론이 요구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 네 번째)이 5월 1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오른쪽 네 번째)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 네 번째)이 5월 1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오른쪽 네 번째)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 30년 이끌 비전 제시할 때

    이재용 회장은 새로운 시대상에 걸맞은 ‘뉴 삼성’ 비전 찾기에 고심하는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침묵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해내며 글로벌 대기업으로 삼성을 성장시켰다. 이재용 회장도 현재 삼성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 비전을 제시할 때다.

    시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삼성이 혁신보다는 관리의 기업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미래보다 현재에 대응하기 급급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30년 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할 때와 지금은 경영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바뀌었고 ‘굿 플레이어’에서 ‘룰 메이커’로 역할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최고의 경영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강점을 지키며 환경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새로운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이재용 회장이 어떤 리더십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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